영·호남 화합의 장터인 경남 하동군 화개장터에 더는 호남지역 상인들을 찾아볼 수 없게 됐다. 하동군이 호남지역에 거주하는 상인들의 화개장터 점포의 재계약을 제한해 입점을 불허했기 때문이다.
하동군은 화개장터 점포 입점자들의 3년 임대기간 만료와 난전 정비사업 완료로 재입점자 공고 과정을 거쳐 지난 20일 장옥 82칸의 새 입점자를 선정했다고 21일 밝혔다. 이 과정에서 전남 광양시지역 5명과 구례군지역 1명 등 호남 상인 6명이 입점자 재선정 추첨에도 참여하지 못했다.
호남 상인들은 2007년부터 난전에서 약재, 농산물 등을 팔았다. 이후 하동군은 2013년 관광시설지구였던 화개장터를 전통시장으로 등록했다. 이후 빈터에 파라솔을 치고 장사하는 난전 55곳을 없애고 점포 44곳을 마련하는 정비사업을 벌였다.

2014년 11월 불에 타 복원한 경남 하동군 화개면 화개장터를 관광객들이 둘러보고 있다. |하동군 제공
정비사업을 벌이던 군은 당시 초가지붕을 얹어 마련한 점포에 이들이 장사를 계속할 수 있도록 했다. 군은 광양시와 구례군 의회와 지역 인사들이 화합을 강조하며 호남 상인들이 영업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부탁해 점포를 줬다. 호남 상인들은 각각 연간 30만원의 임대료도 군에다 냈다.
당시 하동지역 난전 상인들은 “하동 상인은 쫓아내면서 호남 상인을 왜 내버려 두느냐”라며 반발했다. 이를 의식한 듯 호남 상인들은 하동군에 주소를 옮겼지만 실제로는 광양과 구례의 집에서 출퇴근을 하면서 장사를 해왔다.
호남 상인들은 이번 재선정에서 모두 탈락함에 따라 이달 말까지 점포를 비워줘야 한다. 군이 ‘하동군에 3년 이상 실제 거주하는 상인’으로 입점자 자격을 제한한 ‘화개장터 운영 규정’을 들었다. 2008년부터 세운 규정을 이번엔 엄격히 적용한 것이다.
화개장터에서 쫓겨난 것이 기정사실화되자 해당 상인들이 반발해 지난 18일 하동군청을 방문해 항의를 했다. 광양시·구례군도 우려를 표시했다.
화개장터에서 10년동안 장사를 해온 호남 상인 이모씨(71)는 “모두가 영세한 상인들로 화개장터를 삶의 터전 삼아 생계를 이어 가는데 하동군이 지역을 가려 탈락시키는 것은 속 좁은 처사”며 “어떠한 방식으로든 계속 장사를 하게 해 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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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양시와 구례군 관계자는 “화개장터가 2014년 11월 불이 났을 때도 호남 공무원들이 수백만원의 성금을 전달하고 하동군과 자매결연을 하는 등 영·호남 화합의 각별한 장소이다”며 “하동군을 방문해 이러한 의미를 전달했지만 완고했다”고 말했다.
하동군 관계자는 “재선정이 마무리된 마당에 되돌릴 수 없다. 다만 광양시와 구례군의 몫으로 각 1개 점포를 마련해 놓고 관광안내소나 점포를 사용하도록 했다”며 “영호남 화합 차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5일장 부활과 길거리 장터 개장 등의 대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