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에서 한송이 꽃을 피우기까지

이인숙 기자 2016. 1. 1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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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우주 공간에서 처음으로 백일홍 한송이가 피었다.

국제우주정거장(ISS)의 45번째 임무지휘관을 맡고 있는 미국 우주인 스콧 켈리(51)가 16일 트위터에 우주공간에서 사상 처음으로 핀 꽃의 사진을 올렸다. 켈리는 트윗에 “우주에서 처음으로 자라 데뷔한 꽃!” “우주에 또 다른 생명체가 있다”며 감격을 숨기지 못했다.

미국 우주인 스콧 켈리가 16일 트위터에 국제우주정거장에서 핀 꽃의 백일홍 사진을 올렸다. /스콧 켈리 트위터 캡처

우주에서 한송이 꽃이 피기까지 과정은 수많은 시행착오과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미 항공우주국(NASA)은 17일 ISS 임무를 소개하는 웹페이지에서 ‘우주 식물 재배 프로젝트’를 상세히 소개했다. 이 프로젝트는 화성 유인탐사까지 계획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주에서 식물이 어떻게 자라는지 알아내기 위해 시작됐다. 화성의 생명체 탐사에 한발짝 더 접근해보려는 작업이다.

NASA 식물재배팀의 지오이아 마사는 “설사 실패를 거듭하더라도 과학자들에게는 무중력 상태에서 식물이 어떻게 자라는지 더 잘 이해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실제 꽃이 피느냐 마느냐에 관계없이 우리는 (이 프로젝트로) 정말 많은 것을 얻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식물 재배시설은 지난해 5월 초 ISS 내 실험실에 설치됐다. 시설 안에는 식물이 자라는 데 필요한 빛을 위해 파란색, 녹색, 붉은색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장치가 달렸다. 첫 작물은 로메인 상추였다. 재배팀은 첫 시도에서 건조함에 스트레스를 받은 로메인 상추 2개를 잃었다. 7월 초 다시 재배한 로메인 상추는 물주기를 조정하고 식물이 자라는 모습을 영상으로 면밀히 관찰했다. 작은 잎이 나기 시작했고 한달 쯤 뒤 수확한 로메인 상추를 맛볼 수 있었다.

우주인 스콧 켈리(오른쪽)와 셸 린드그렌이 수확한 로메인 상추를 맛보고 있다. /출처: 나사(NASA)

로메인 상추 재배에 성공한 연구팀은 다음 작물로 백일홍을 골랐다. 중력이 거의 없는 공간에서 식물이 어떻게 자라 꽃을 피우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NASA에서 식물재배 프로젝트를 총괄하는 트렌트 스미스는 “백일홍은 환경의 변화와 빛의 특성에 매우 민감하고 자라는 기간이 60일~80일로 길어 잎을 틔우고 꽃을 피우게 하는 일이 더 어렵다”며 “백일홍 재배는 토마토 재배가 가능한지 알아보는 훌륭한 전단계”라고 설명했다.

열흘쯤 지나자 백일홍 잎에 물방울이 맺히고 잎이 배배 꼬이기 시작했다. 재배 시설 안 공기는 잘 순환되지 않는 데 반해 수분 공급이 과도해지자 내부 압력이 높아지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백일홍이 우주환경에서 스트레스를 받아 잎에 물이 맺히고 잎이 배배 꼬이는 현상이 일어났다. /출처: 나사(NASA)

연구팀은 재배시설 내 환기장치와 물의 양을 조절하면서 변화를 관찰하려고 했지만 지난해 12월 갑자기 잡힌 우주유영으로 연기됐다. 이쯤 백일홍 몇 개에 곰팡이가 피면서 죽어가기 시작했다. 재배팀은 급히 지구 지원팀에 SOS를 쳤다. 스미스는 새벽 4시에 일어나 전화를 받아야 했다. 스미스는 몇 시간 동안 머리를 짜내 켈리에게 새로운 방법을 알려줬다. 켈리는 방진 마스크를 쓰고 곰팡이가 핀 부분을 잘라냈다. 곰팡이가 핀 백일홍은 연구를 위해 -8℃ 냉동고에 보관돼 지구로 보내졌다. 잎의 표면은 세정용 천으로 소독하고 곰팡이가 더 피지 않도록 환기 팬을 쉼 없이 돌렸다.

크리스마스 이브인 지난달 24일 지상 지원팀에 또 전화가 걸려왔다. 이번에는 환기 팬을 너무 세게 돌려 백일홍이 마를 것 같아 보인다는 거였다. 켈리는 물을 더 줘야 하지 않느냐고 물었지만 지상에서는 다음 물을 줘야 하는 27일까지 기다려보자고 했다. 그러나 백일홍의 상태를 직접 눈으로 보고 있는 켈리는 “그때까지 기다리면 때가 늦을 것 같다”고 밀어붙였다. 켈리의 ‘감’이 맞아떨어졌다.

크리스마스 휴가마저 식물 재배에 반납한 켈리의 정성 덕분인지 백일홍 4개 중 2개는 끝까지 살아남아 새로운 줄기가 올라왔다. 마침내 지난 12일 작은 꽃잎이 모습을 드러냈다. 5일이 지난 17일 오랜 인고가 결실을 맺어 주홍빛의 백일홍이 활짝 만개했다.

‘최초의 우주 정원사’가 된 켈리는 지난해 3월 ISS로 와 17일까지 295일을 우주에 머물렀다. 예정대로 내년 3월 3일에 지구에 복귀한다면 켈리는 생애 중 522일을 우주에서 보내게 된다.

<이인숙 기자 sook9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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