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육-사교육비 감당 못해".. '무자식 상팔자' 택한 젊은층

2016. 1. 18.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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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새해 특집] [탈출 인구절벽/1부]<2> 사회 환경이 만드는 딩크족
[동아일보]
“우리, 아무래도 아이를 갖는 건 좀 그렇겠지?”

경기 성남시의 한 중소기업에 다니는 M 씨(43)는 9년 전 남편을 만나 ‘골드미스’ 생활을 청산했다. M 씨는 평소 아이와 동물을 좋아하는 스타일. 하지만 신혼 초 ‘무자녀 인생’을 결정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임신을 하기에는 다소 늦은 나이여서 건강한 아이를 낳을 수 있을지도 걱정이었지만 무엇보다 ‘낳아도 키워줄 사람이 없다’는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혔다. 친정 부모와 다른 가족이 모두 외국에서 살고 있어 육아 지원이 불가능했다.

“아이를 키우면서 회사생활도 계속 잘 해낼 자신이 없었어요. 주변을 둘러보면 친구들은 ‘애 키우면서 회사 다니는 게 지옥 같다’면서 다들 눈 밑이 시커멓게 변해 있고, ‘맞벌이해도 남는 게 없다’며 하소연하고…. 저렇게까지 해야 할까 싶었죠.”

가난한 부모 밑에서 힘든 어린 시절을 보낸 남편이 자녀 양육에 느끼는 부담감은 더욱 컸다. 결국 딩크족이 된 부부는 요즘 애완견 두 마리를 키우고 있다. 노후에는 고급 실버타운에 들어갈 계획을 세워놓고 여러 개의 노후연금과 보험에 돈을 붓는 중이다.

○ 자의 반 타의 반 ‘딩크’족

M 씨처럼 아이 없는 맞벌이 부부들은 이른바 ‘딩크(DINK·Double Income No Kids)족’으로 불린다. 맞벌이가 아닌 외벌이 부부가 아이를 갖지 않는 ‘싱크족(SINK·Single Income No Kids)’, 딩크족이 아이 대신 애완견을 키우는 ‘딩펫(딩크족과 애완동물 펫·pet의 합성어)족’ 등 각종 신조어도 잇따라 만들어지고 있다.

딩크족은 초기 ‘경제적으로 여유롭고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기 위해 자녀를 갖지 않기로 결정한 커플’로 정의됐다. 그러나 최근에는 아이를 낳아 키우는 고비용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딩크족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동아일보가 서울과 수도권의 딩크족 10쌍을 심층 대면 및 전화 인터뷰 한 결과 이 중 4가정은 “보육과 교육 환경을 고려한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화려하고 여유로운 삶을 원해서라기보다는 경제적인 부담, 아이를 잘 돌볼 수 없는 환경에서 오는 두려움 등이 출산 거부의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5년 전 38세였던 남편과 결혼한 C 씨(37)가 아이를 갖지 않기로 한 직접적인 이유는 만혼(晩婚)이다. 대기업에 다니는 남편이 “사교육비가 한창 늘어날 시기에 나는 정년퇴직을 하게 될 것”이라며 반대했다. 노후대책이 없는 양가 부모의 뒷바라지도 중요한 원인이 됐다. C 씨는 “고령인 양가 부모 네 분의 병원비와 생활비를 앞으로 우리가 전부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휴가철 해외여행을 다니는 지금의 여유는 내 인생에서 잠깐의 황금기”라고 말했다.

J 씨(41)의 경우 해외 유학을 준비하는 아내와 이직(移職)을 통한 자신의 인생 전환 등 미래의 꿈을 위해 자녀를 포기했다. 2009년 결혼해 인생의 ‘대차대조표’를 그려볼 당시 부부의 재산은 1억8000만 원의 전세금이 전부. 직업을 바꾼 뒤 경제적으로 성공했지만 J 씨의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주변을 보면 애 낳고 행복하다는 가정이 없다”며 “예뻐 죽겠다’는 자식은 막상 부모님 집에 맡겨놓은 채 며칠씩 얼굴 못 보는 경우가 주변에 허다하지 않으냐”고 반문했다.

○ “배려와 지원 충분했으면 낳았을 것”

딩크족은 인구학적으로 정확히 통계가 잡히지는 않는다. 결혼 후 자녀를 갖기까지 기간 편차가 큰 데다 난임이나 불임 부부 등 딩크족으로 정의하기 쉽지 않은 사례들이 상당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출산에 관한 젊은이들의 인식, 무자녀 가구의 추세 등을 종합해 보면 딩크족이 점차 많아지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2인 가구의 비중은 1990년 10.4%에서 2012년 29%로 급증했다. 결혼한 자녀와 따로 사는 노인 부부가 증가한 탓도 있지만 아이를 낳지 않는 젊은 부부의 증가세도 원인으로 꼽힌다. ‘아동이 없는 가구’로 따지면 같은 기간 32%에서 59.5%로 2배 가까이로 늘었다.

미혼 남녀(20∼44세)를 상대로 한 출산 인식 조사에서는 ‘자녀를 가질 생각이 전혀 없거나 별로 원하지 않는다’고 답변한 여성의 비율이 2009년 9%에서 2012년 10.2%로 늘어났다. ‘출산으로 인한 직장 내 차별과 사회활동 지장’ 때문이라는 응답이 33.3%로 ‘부부만의 즐거운 생활 및 여가’(24.1%)보다 훨씬 높다.

딩크족 K 씨는 “한국은 부모에게 너무 많은 희생을 강요하는 사회”라며 “출산이 가능했던 시절 자녀 양육에 대한 충분한 지원과 사회적 배려가 있었다면 당연히 아이를 가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2020년까지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을 수립해 △청년 일자리 확충 △신혼부부의 주거 지원 △임신과 출산에 대한 의료지원 확대 △맞춤형 돌봄 확대 등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해놓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제도적 지원과 함께 자녀 양육에 대한 우리 사회의 문화와 인식 또한 바꿔갈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육아정책연구소의 양미선 연구위원은 “한국은 유행 속도가 빠르고 동조 심리가 강하다 보니 일부 부모의 과한 양육비 지출이 일반적인 현상인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다”며 “눈높이가 맞지 않는 데서 오는 여성들의 좌절감이나 상대적인 빈곤감, 양육의 두려움 등도 출산에 대한 거부감을 키우는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이삼식 저출산고령화대책기획단장은 “비중이 크지는 않지만 일부 젊은 세대가 아이를 거부하는 세태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며 “사회구조적인 문제의 해결과 함께 장기적으로 출산, 육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바꾸는 ‘투트랙’ 정책으로 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 中, 자녀 1명 키우는데 소득보다 많은 돈 들어… ‘출산 장려’ 약발 안먹혀 ▼

아시아 국가, 저출산 고민 확산

‘딩크족’의 증가는 한국만이 아닌 저출산 문제에 직면한 전 세계의 문제다. 특히 고성장을 지속해 왔던 아시아 국가들에서 눈에 띄게 증가하는 현상이다.

인구대국인 중국은 저출산 고령화 현상이 급속히 진행되면서 인구절벽 문제에 직면하게 되자 올해 1월부터 ‘1자녀 정책’을 폐지했다. 자녀를 1명 이상 낳으면 처벌하던 법을 35년 만에 바꾸면서 다둥이 가정을 다시 허용한 것. 하지만 ‘역사적인 인구정책 변화’라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실제 중국 정부가 기대하는 만큼의 출산 증가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는 중국 역시 한국처럼 치열한 입시 및 취업 경쟁 때문에 자녀 양육에 들어가는 비용이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상하이사회과학원(SASS)의 조사(2011년 기준)에 따르면 중국 가정이 자녀 1명을 키우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연간 3만2000위안(590여만 원)으로, 가구당 평균 가처분소득(3만1800위안)을 넘어선다. 중국의 부모들이 소득보다 많은 돈을 자녀의 보유 및 교육에 쏟아붓고 있는 셈이다.

워싱턴포스트는 지난해 말 중국의 이런 현상을 보도하며 “자녀를 갖지 않는 것은 가족 중심의 유교적 사상이 강한 동양적 문화에서 죄를 짓는 것처럼 받아들여지던 것”이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갖지 않기로 결정하는 중국의 젊은 딩크족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일본의 딩크족 가구 수는 1980년대 후반에 비해 1.7배 증가한 360만 가구에 달한다. 가부장적인 남성이 많은 일본 사회에서 여성들이 출산을 거부하는 사례가 많아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이 때문에 2035년 일본에서 딩크족이 차지하는 비중은 총가구의 21%까지 치솟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싱가포르는 결혼을 했는데도 아이가 없는 40대 여성의 수가 20년간 3배로 늘었다. 통계청의 조사 결과 1994년 4.2%였던 비율이 2014년 11.2%까지 치솟았다. 일간 스트레이츠 타임스는 “결혼과 출산의 디커플링(decoupling) 현상”이라며 “교육 수준, 삶의 질에 대한 기대수준이 높아지고 생활비 부담이 커지면서 아이 없이 사는 인생이 용납되는 사회로 가고 있다”고 전했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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