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 '고용률 중심' 발언이 미덥지 못한 이유
[한겨레]
[현장에서]
“저는 성장률보다 더 중요한 것이 고용률이라고 생각한다. 성장률이 높다고 해도 고용률이 높지 않으면 국민이 체감을 못한다. 고용률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춰서 국민이 (경제 성과를) 체감할 수 있는 한 해를 만들려고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13일 새해 기자회견에서 “국내외 여러 기관들이 거의 비슷비슷하게 올해 한국의 성장률을 3.0~3.2%로 전망하고 있다”며 한 말이다. 경제정책의 중심을 고용률 높이기에 두겠다는 얘기다. 앞서 3일에는 안종범 대통령 경제수석이 “앞으로 일자리 창출과 고용률 제고에 경제정책의 최대 중점을 두어 추진하도록 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고용률은 취업자 수를 15살 이상 생산가능 인구 수로 나눈 것으로 실업률에 따라붙는 과소 집계 등의 빈틈을 메워줄 수 있는 중요한 지표다.
정책을 펼 때 중심이 되는 지표를 이렇게 바꾸는 것은 상당히 큰 의미가 있다. 정부는 그동안 줄곧 성장률을 높임으로써 고용률 등을 높이겠다는 방침을 취해왔다. 한마디로 성장 우선주의인데 이제는 고용 우선주의로 갈음하겠다는 얘기다. 조금 과장하면 정책 기조의 패러다임 전환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고용의 중요성은 실업의 부작용을 되돌려 생각해보면 잘 알 수 있다. 빈곤과 불평등 등의 분야에서 남다른 연구 업적을 내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아마르티아 센이 이를 뭉뚱그려 말해준다. “실업은 당자자의 소득 결핍으로 이어질 뿐 아니라 자유와 진취성, 기량을 크게 해치는 요인이 된다. 또한 ‘사회적 배제’에 한몫을 하고 자립심과 자신감, 심리적·육체적 건강의 상실로 이어지게 한다.”
박 대통령은 전에도 고용률과 관련해 비슷한 얘기를 한 바 있다. 대선 후보가 되기 전인 2011년 11월에 “이제는 거시지표(성장률)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행복이 더 중요하고, 국민 개개인이 꿈을 이루고, 자아실현을 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줘야 국가 경쟁력도 더 높아질 수 있다”며 “저는 앞으로 고용률을 우리 경제의 중심 지표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후보 시절 임기 내 고용률 70% 달성 공약을 내걸었다. 이어 당선인 시절 “일자리 창출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과제이고, 그래서 고용률을 국정 운영의 중심에 놓겠다”고 한 뒤 “과거처럼 단순하게 일자리 몇 개 만들었다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질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게 중요하다”는 말까지 했다. 이런 기조는 내용이 미흡하긴 해도 2013년 6월 정부의 ‘고용률 70% 로드맵’ 발표로 이어졌다.
하지만 그 뒤로는 규제개혁 등에 힘이 실리며 정부의 ‘고용률 중심’ 운용 기조는 뒷전으로 밀리고 말았다. 대통령을 비롯해 정책 책임자 중에 이를 입에 올리는 사람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 가운데 나온 박 대통령의 이번 발언은 취임 전후의 구상을 되살리겠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어서 반갑게 들린다.
그럼에도 미덥지 못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 또한 사실이다. 무엇보다 발언을 뒷받침할 대책이 눈에 띄지 않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노사정 합의안대로 근로시간이 단축되면 5년 간 최대 15만개의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것으로 전망된다”며 노동시장 등의 구조개혁만 강조하고 있다. 물론, 구조개혁을 추진하면 중장기적으로 이런 효과를 낼지 모른다. 하지만 단기적으로는 고용 불안을 짙게 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기업 구조조정이 본격화할 경우 일자리 창출에 악영향을 줄 수 있는데도 이렇다할 대응책이 없다.
게다가 거시정책의 지원을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올해 정부의 예산 증가율이 3.0%로 경상성장률 전망치(4.5%)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재정 지출이 크게 확대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일자리 창출이 제약될 수밖에 없다.
한국은행이 맡고 있는 통화정책도 ‘고용률 중심’을 떠받치는 데 한계가 있다. 한은의 주된 임무가 물가 안정이어서 고용 안정에 무게를 실을 수 없는 것이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의 설립 목적이 물가 안정과 고용 최대화인 것과 대비가 된다. 연준은 세계 금융위기 이후 고용 증대에 큰 구실을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혹시라도 박 대통령이 이런 문제점을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으면서 실효성있는 대책을 내놓기를 바란다. 고용률 70%가 요원해 보여 더 그렇다.
이경 선임기자jae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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