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특허받은 삼계탕이여
2016. 1. 14. 11:40
바야흐로 우리나라 농식품 수출 56억 달러 시대가 도래했다. 김 수출은 올해 3억 달러 달성을 앞두고 있는가 하면, 한식 열풍과 함께 갈비, 불고기 양념과 같은 양념장은 1억50만 달러(2014년 기준)의 수출액을 달성했다.
‘한·중FTA’ 발효로 올해 본격적인 중국 수출을 앞둔 삼계탕과 김치의 인기도 급상승하고 있다. 농림축산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11월에 열린 중국과 한국 업체들간 수출상담회에서 삼계탕은 중국 바이어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유통기한이 1년 6개월로 장기보관이 가능하고 중국인들이 한국 방문시 먹고 싶어 하는 한국 전통식품 중 하나로 인지도가 높아 수출 가능성이 높다는 게 그 이유다.
|
한·중FTA발효와 함께 삼계탕 인기도 높아졌다. 사진은 특허 등록된 ‘연잎말이 영양밥을 포함하는 삼계탕’.(출처=특허청 특허등록공보) |
또한 중국 수입업체는 김치 수출에 대해 “중국의 통관 및 유통흐름을 볼 때 6개월 이상의 유통기한 보장이 필요하고, 중국 소비자는 80g 등 소포장 김치를 선호하므로 이러한 상품개발이 필요하다.”면서 “소비자가 김치의 맛 변화를 상한 것으로 오해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이에 대한 정보 전달과 함께 신김치를 활용한 요리방법도 적극 홍보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이처럼 한식이 세계인의 식탁으로 뻗어나가며 사랑을 받고 있는 가운데, 우리 음식의 독창성과 한식 마케팅 전략을 확보하기 위한 국내외 움직임들도 더불어 바빠지고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음식 및 음식 레시피(조리법)의 특허 등록이다.
|
한식 개발과 수출이 활발해지면서 이에 대한 특허 등록 및 활용도 활발해지고 있다.(출처=특허청) |
일례로 김치에 관한 특허 출원 동향은 매년 꾸준히 늘고 있다. 특허청에 따르면, 김치 관련 특허는 최근 10년간 매해 평균 50건씩 꾸준하게 출원되고 있는데 기술 분야별로 보면, 김치의 풍미를 증진시키는 기술(39%)이 가장 많고, 질병 예방이나 치료를 목적으로 특정한 재료나 성분을 첨가하여 기능성을 강화한 것(30%)이 다음을 차지한다.
최근에는 자극적인 맛을 줄인 외국인 맞춤형 김치, 나트륨 함량을 낮춘 저염 김치, 다이어트 김치, 숙성·저장 기간을 획기적으로 늘린 김치 등 해외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다양한 기술들이 개발되고 있다. 필자 역시도 미국 방문 시 어느 한식당에서 유자 고추장과 바나나, 사과로 담근 김치를 맛본 적이 있었는데, 이 김치는 매운맛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들은 물론, 산뜻한 맛으로 한국 교포들의 입맛까지 사로잡았다.
|
미국 캘리포니아주 알바니에 있는 어느 한식당 메뉴판. 외국인 취향에 맞게 비빔밥 재료와 조리법을 선택해 주문할 수 있다. |
하지만 김치가 세계화됨에 따라 김치의 주도권을 둘러싸고 주변국들의 도전도 이어지고 있다. 김치의 국제적 명칭을 ‘기무치’로 하려는 일본의 시도와, 김치가 중국의 ‘파오차이’에서 유래했다는 중국의 주장 등이 그 예다. 그런가하면 스위스 네슬레사는 김치의 제조법과 유사한 식품제조방법을 특허출원해 한국을 제외한 14개 국가에 특허권을 획득한 바 있다.
이러한 주장에 맞서 우리나라는 김치 종주국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전통김치에 대한 깊이있는 연구는 물론 김치의 국제특허와 인증을 확보하는데도 신경을 기울였다. 2001년, ‘김치’는 일본 ‘기무치’와 치열한 경쟁 끝에 국제식품규위원회(CODEX) 인증을 획득했으며 2005년엔 우리의 전통식품인 김치의 영문 표기인 ‘kimchi’가 각국의 상표 등록에 있어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니스국제상품분류목록’ 등재가 확정됐다.
하지만 상표 등록과 같은 저작권 보호만으론 음식의 레시피까지 보호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레시피 보유자 측이 마케팅 차원에서 음식명이나 식당명을 상표 등록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저작권은 인간의 사상이나 감정을 표현한 저작물에 대한 권리기 때문에, ‘원조’ 주장과 같이 좀 더 본질적인 권리 주장을 하거나 음식에 대한 신뢰를 확보하려면 음식이나 레시피를 특허 등록해야 한다.
|
2011년 김치특허출원동향.(출처=특허청) |
특허청 민원 상담에 따르면 음식물·기호물 자체에 대한 발명은 1990년 9월부터 특허법상 등록이 가능해졌다.특허 신청인이 특허 등록을 위해 발명 내용을 담은 서류, 비용을 제출하는 것을 특허 ‘출원’이라고 하며, 심사를 거쳐 특허성을 인정받아 등록되는 것을 특허 ‘등록’이라고 한다. 또한 음식 및 레시피 특허 등록은 발명과 마찬가지로, 특허를 받기 위해 신규성, 진보성, 산업상 이용가능성 등의 특허등록요건을 갖추어야 한다.
특허등록요건 중 ‘발명의 신규성’은 발명이 사회일반에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기술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반면, 특허 출원 전에 국내에서 공지됐거나 실시된 발명, 또는 국내외 간행물에 게재되거나 정보통신회선을 통해 공중이 이용 가능하게 된 발명은 신규성이 없다.
‘발명의 진보성’은 해당분야에서 통상의 지식을 가진 사람이 종래의 공지기술(선행기술)에 의해 용이하게 발명할 수 없는 정도로 고도의 창작성이 있는 발명을 말한다. ‘산업상 이용가능성’이란 그 발명이 실제 산업에 이용되고 실시되는 것을 의미하는데 지금 당장 이용되고 있지 않거나 경제성이 없어도 향후 이용될 가능성이 있으면 충분하다.
|
특허청 특허정보검색사이트 ‘키프리스’에서 찾아본 삼계탕 특허·실용신안 조회 결과. |
이와 같은 요건에 따라, 음식 조리법의 경우는 기존의 음식과는 달리 일정한 제조공정에 따라 독특한 제조방식으로 처음 개발한 새로운 음식물, 제조방법 등에 대해 특허 등록이 인정된다. 기존에 있는 음식 부류라도, 새로운 물질이나 제조법을 적용해 독창성을 인정받은 음식이라면 특허 등록을 받을 수 있다. 새로운 한방 추출물을 넣은 기법의 삼계탕 제조법, 안주형 건조김치, 과일로 만든 과자, 저지방 국물요리 특허 등이 이에 해당한다.
유사 경쟁자들로부터 권리 보호는 물론, 영업 이익을 보호하는데 있어 식품 특허 등록의 중요성을 일깨워준 국내 사례 중 하나가 바로 ‘지팡이 아이스크림’이다. ‘지팡이 아이스크림’은 서울 인사동 쌈지길의 명물로, 지팡이 형태의 뻥튀기 콘에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넣어 만든 식품이다. 바삭하면서도 부드러운 ‘뻥튀기 아이스크림’의 맛뿐만 아니라 재밌는 모양으로 남녀노소 모든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지팡이 아이스크림’의 인기와 함께, 지방에서 유사 제품이 제조 판매되어 특허권자와 권리 분쟁이 발생했다. 법원은 이와 같은 행위가 ‘상품형태 모방행위’에 해당한다고 보아 모방업자 측에 부정경쟁행위금지가처분 결정을 내렸다.
|
서울 인사동의 명물 ‘지팡이 아이스크림’.(출처=특허청) |
그러나 특허청 발표 사례에 따르면, 모방행위를 제지한 법원의 결정과는 별개로 ‘지팡이 아이스크림’ 고유의 특허는 인정받지 못했다. 특허 출원 전 소비자들에 의해 인터넷상에 제품 사진이 퍼졌고 그 분야의 통상적 기술자가 해당 물건만 보고도 그 물건을 제조하는 방법을 쉽게 예상할 수 있다는 이유로 제조방법 특허 등록에 실패했다.
이와 같은 사례는 일반 대중에게 판매되는 스낵과자 등의 음식물은 그 기술내용이 쉽게 파악되고 판매와 동시에 소비자에 의해 인터넷 등 공중매체에 바로 소개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시판에 앞서 먼저 특허 출원을 서두를 필요가 있다는 교훈을 남겼다.
|
지팡이 아이스크림의 특허 출원 도면.(출처=특허청) |
대내적으론 쿡방 열풍, 대외적으론 한식의 세계화. 우리나라 음식과 조리법 전파가 이만큼 활발한 적도 없었던 듯하다.
이젠 요리도 하나의 ‘발명’으로 보고, 제조자의 자부심이 담긴 지식재산으로 존중해야할 필요가 있다. 또한 국내 식품 시장에서부터 ‘맛있게 만드는 법’ 뿐만 아니라 ‘올바르게 맛을 사용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고민해나갈 때 비로소 우리 한식의 맛 역시도 더 깊어질 수 있다.
정책기자단|김연수siren715@gmail.com
‘좋은 리더가 되려면 먼저 좋은 팔로워(follower)가 되어라’
사람들간의 이해와 공감을 소중히 여기는 서울 토박이.
뮤지컬, 미술을 좋아하며 지식재산권 분야에 관심이 많다.
사람들간의 이해와 공감을 소중히 여기는 서울 토박이.
뮤지컬, 미술을 좋아하며 지식재산권 분야에 관심이 많다.
Copyright © 정책브리핑.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