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에선 '종이호랑이'..저가에 멍드는 韓 철강시장

박일경 2016. 1. 12.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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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철강재 비중 40%.."수입비율 40% 내외 철강國, 한곳도 없어"지난해 철강생산 세계 5위·수출 3위에도 '유동성위험' 全업종 3번째
한국철강협회는 지난 11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소재 포스코센터 서관 18층 스틸클럽에서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권오준 회장 등 철강업계 대표 및 임원, 학계·연구소, 철강수요업계 등 철강관련 인사 2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2016년 철강업계 신년인사회’를 개최했다. 권오준 회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한국철강협회

“국내 철강산업은 중국 등 후발국의 추격을 뿌리치고 동시에 선진 철강사를 따라잡아야 하는 ‘넛 크래커(Nut Cracker)’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산·학·연·관과의 협력체제를 강화해 고부가가치 강재의 개발 등 혁신기술 개발에 매진해야 한다.”

한국철강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권오준 포스코 회장은 전날 서울 강남구 대치동 소재 포스코센터 서관 18층 스틸클럽에서 열린 ‘2016 철강업계 신년 인사회’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넛 크래커’는 원래 호도를 양쪽으로 눌러 까는 도구를 지칭하는데, 한국경제가 선진국에 비해서는 기술과 품질 경쟁에서, 후발 개발도상국과 비교하면 가격 경쟁력에서 각각 밀리는 현상을 의미한다. 중국과 일본 사이에 끼여 힘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우리나라의 신세를 일컫기도 한다.

이 자리에서 권 회장은 국내 철강업계가 글로벌 무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과감한 구조개혁 ▲수요업체와 상생을 통한 산업생태계 강건화 ▲핵심기술과 고부가가치 제품 개발에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내 철강회사들이 저렴한 가격으로 무장한 중국산 철강제품에 시장을 잠식당하면서 위기에 빠지고 있다. 여기에 엔저(円低)를 등에 업고 가격 경쟁력을 갖춘 일본산마저 가세하며 한국 철강산업이 한 마디로 ‘엎친 데 덮친 격’의 시련을 겪고 있다.

한국 산업화의 시작이자 근간산업인 철강산업은 세계시장에서 중국과 일본과의 치열한 경쟁으로 인해 글로벌 시장을 점차 내주고 있다. 이제는 국내시장조차 장담할 수 없는 처지로 몰리고 있다.

지난 한해 우리 철강산업은 세계 5위의 생산능력과 수출 3위의 위상을 국내외 경영환경의 어려움 속에서도 굳건히 지켜냈지만, 국내 철강시장이 저가에 멍들며 안방에서는 ‘종이호랑이’로 전락하고 있다.

철강재 수입동향 2015년 12월 잠정치. 자료=한국철강협회

◆ 경기침체·과잉설비 ‘설상가상’…안방마저 中·日에 내줘 ‘넛크래커’

12일 철강협회가 발표한 ‘철강재 수입동향 2015년 12월 잠정치’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 수입 철강재는 국내 철강시장의 35.5%를 차지했다. 이중 중국산의 국내 명목소비 대비 점유율은 22.4%, 일본산은 10.7%를 각각 기록해 국내에 수입되는 철강재의 거의 대부분이 중국 및 일본 제품이다.

특히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누계로는 39.5%에 달한다. 주요 품목별 수입재의 시장점유율은 선재 45.5%, 봉강 35.4%, 핫코일 34.6% 등 수입물량 비중의 고수준이 지속되고 있다.

한해 전인 지난 2014년 국내 철강수요 대비 수입재 비중은 약 41%로 3년 만에 40%대 고수준에 재진입한 데 이어, 이 추세대로라면 지난해까지 2년 연속 40%대를 유지할 것으로 예측된다.

공급여력을 확보한 주요 철강국가 가운데 40% 내외의 수입재 비율이 계속되는 나라는 단 한 곳도 없다는 것이 철강업계의 설명이다. 실제로 2013년 기준 주요국 수입재 점유율은 미국이 31.7%, 중국 2.1%, 일본 8.3%로 각각 집계돼 우리나라보다 한참 낮다.

이 같은 철강업계의 위기감은 전일 철강업계 신년 인사회장 분위기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났다. 권오준 회장은 새해 인사말을 통해 “최근 철강업계에 닥친 도전과 시련은 너무 크며, ‘사즉생(死卽生)’의 각오와 창조적 혁신으로 철강인의 저력을 다시 한 번 발휘하자”고 당부했다.

글로벌 경기침체 장기화로 지난해 판재 국제가격은 30% 이상 폭락했다. 게다가 세계 철강업계는 7억톤이 넘는 과잉설비와 업체 간 출혈 경쟁으로 생존경쟁이 날로 치열해지고 있다. 국내 시장에서도 철강재 수요부진과 경쟁심화로 철강업체의 매출과 수익성이 크게 감소했고, 일부 기업은 한계상황에 처해 있다.

대한상공회의소에 의하면 지난해 상반기 업종별 유동성 위험기업 비중은 철강이 24.2%로 조선(62.5%), 건설(28.7%)에 이어 세 번째로 높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는 ‘2016년 산업전망’을 통해 대외변수에 가장 충격을 많이 받는 취약업종으로 철강을 꼽았다. 철강은 엔저·중국경기 둔화·원자재가격 하락 등이 벌어졌을 때 악영향을 받는 것으로 분석됐다.

지난해 10월29일 ‘제1회 STEELKOREA 2015’ 행사가 개최됐다. 처음 열린 ‘STEELKOREA 2015’는 국내 철강관련 산·학·연·관이 한 자리에 모여 활발한 정보교류 및 네트워킹을 도모하는 자리이다. 일본철강협회의 경우 춘·추계 학술대회가 170회째를 맞고 있으며, 독일철강협회도 1979년부터 금속박람회(METEC) 내에 기술컨퍼런스를 주최하는 등 오래전부터 산업계와 학계가 함께 참여하는 포럼을 적극 진행하고 있다. 사진=한국철강협회

◆ 돌파구는 수소환원제철 같은 ‘기술혁신’…과감한 구조개혁 필요

권 회장은 “구조적 공급과잉과 수요부진에 대응해 더욱 과감한 구조개혁으로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며 “국내 철강업계도 종전의 설비증설 위주의 외형확대가 아닌 기술력이 뒷받침되는 내실 있는 성장을 추진함으로써 시장 패러다임 변화에 대응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현재 철강업계는 세계시장은 물론 국내시장도 장담키 힘든 난관을 벗어날 돌파구로써 수소환원제철과 같은 ‘기술혁신’에 몰두하고 있다.

포스코는 이달 11일부터 미국 미시건주 디트로이트 코보센터에서 개막한 세계 3대 모터쇼 중 하나인 ‘2016 북미국제오토쇼’(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세계 철강회사 최초로 기술전시회를 열고 최고 품질의 자동차 강판들을 대거 선보이고 있다.

포스코는 이번 기술전시회를 통해 독자 개발한 트윕(TWIP)강, HPF(고온프레스성형)강 등 자동차 소재 30여종을 소개한다. 대표 강재인 트윕강은 세계 철강회사 중 포스코가 유일하게 양산하는 강재다. 강도는 ㎟당 100㎏의 무게를 견디면서도 동일 강도 제품 대비 가공성은 5배나 높다. 철강재 강도가 1.5GPa(㎟당 150㎏까지 하중을 견디는 강도)보다 높아질 경우 가공이 어려워지는 단점을 보완한 HPF강과 최근 양산에 성공한 고강도·고연성의 1GPa급 트립강 등도 함께 공개한다.

현대제철은 ‘2015년 세계일류상품 및 생산기업 선정’에서 11년 연속 6개 제품을 세계일류상품 명단에 올리며 철강업계 최다 보유 영예를 이어갔다. 세계일류상품 발전심의위원회 심의 결과 H형강을 비롯한 현대제철이 생산하는 6개 제품이 세계일류상품에 선정됐다.

세계일류상품은 산업통상자원부 주관으로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코트라)에서 수출 품목의 다양화, 고급화 및 미래수출동력 확보를 위해 선정하는 것으로 세계시장규모가 5000만달러 이상이며 해당 상품의 수출액이 국내 동종 상품 생산기업 중 1위일 때 자격이 부여된다.

동국제강 역시 고부가강인 컬러강판 신(新)시장 개척을 위해 신규 투자를 결정한 상태다. 동국제강은 부산공장에 올해 하반기까지 총 250억원을 투입해 연산 10만톤 생산능력의 컬러강판 생산라인을 증설하기로 했다. 이로써 동국제강 부산공장은 기존 65만톤 컬러강판 생산능력을 75만톤까지 확장하며, 단일 컬러강판 공장으로 세계 최대 능력의 입지를 확보하게 됐다.

동국제강의 신규 투자는 국내에서만 3만톤 이상의 컬러강판 신규시장 창출이 가능하고 회사 내부적으로는 기존의 저 부가가치 도금강판이나 컬러강판 대체를 통해 연간 1000억원 이상의 매출 증대와 이에 따른 수익성 강화가 예상된다.

업계 관계자는 “수소환원제철 등과 같은 새로운 기술들을 개발해 발전시켜 나간다면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 철강산업은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가진 신소재 산업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일경 기자 ikpar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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