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날의 칼' 저유가.."산업구조 재편 기회 삼아라"
[한겨레]
“유가 하락은 대한민국의 가장 큰 호재다. 누가 뭐래도 (유가가) 30%만 하락해도 300억불이 거저 들어온다.”
현 정부 경제사령탑인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해 3월 국가경영전략연구원 수요정책포럼 강연에서 한 말이다. 딴에는 맞는 말이다. 기름값이 떨어지면 자가용 운전자도 웃고, 국내 기름 소비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산업계도 원가가 절감돼 반긴다.
하지만 ‘저유가의 저주’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크다. 유가 하락으로 재정이 악화한 산유국들의 발주 취소 등으로 조선·플랜트·건설 등이 타격을 입고, 미국의 금리 인상 및 중국의 경기 침체 등과 맞물리면서 ‘불황의 신호등’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저유가는 ‘양날의 칼’이란 얘기인데, 그 원인과 효과, 전망에 관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득일까 실일까
원가 낮아져 경제 보탬 되지만
수출시장 위축돼 소득 줄 수도
“떨어졌다고 좋아하지만 말고
구조조정 등 부정 요인 살펴야”
엇갈리는 유가 전망
“올 하반기 상승세 전환 가능성”
“30달러 수준 10년은 지속될 것”
어떻게 해야 하나
중화학공업 편중서 벗어나
기술장착형 산업 더 키워야
■ “실물경제에 득” vs “잃는 게 더 많아” ‘저유가가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과 관련해, 에너지경제연구원 이달석 에너지정책연구본부장은 “실물경제에 좋은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한국개발연구원·산업연구원·금융연구원·에너지경제연구원·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지난해 초 공동으로 발표한 ‘유가하락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 분석’ 보고서에서, 공급 과잉으로 인한 유가 10% 하락은 성장률 0.2%포인트, 소득 0.3%포인트, 국내총생산(GDP) 0.16%포인트 상승으로 이어진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손지우 에스케이(SK)증권 애널리스트는 “저유가는 수혜라는 단선적인 생각을 버려야 한다”며 “(저유가기였던) 지난해 3분기까지 소비와 내수 지표가 최저치를 기록하지 않았냐”고 반문한다. 주유비 몇만원 아낀다고 좋아할 게 아니라, 감원과 구조조정 등으로 인한 가계소득 감소를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인식 차이는 저유가의 원인에 대한 시각차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본부장은 “공급 과잉에 따른 저유가”라고 판단했지만, 손 애널리스트는 “공급 과잉에 수요 축소(경기침체)까지 겹쳐서 영향을 받은 결과”라고 진단했다.
■ “하반기에 변화 가능성” vs “저유가 시대 10년 갈 것” 유가 전망을 두고서도 의견이 엇갈렸다. 이 본부장은 “30달러 수준에서 더 떨어지기 어렵고, 떨어지더라도 그 수준에서 오래가기는 힘들 것”이라며 공급 과잉의 가장 큰 원인인 셰일가스 생산량 감소를 눈여겨볼 것을 주문했다. 셰일가스 개발이 줄어들어 공급 과잉이 완화되면 원유값이 상승세로 전환할 수 있는데, 그는 “올해 하반기에 그렇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손 애널리스트는 “저유가로 신흥(산유)국들이 위기인데, 위기여서 기름을 조금이라도 더 생산할 수밖에 없다. 최근 몇년 사이 생산시설 투자가 30년 내 최고로 많이 이뤄졌으며, 셰일가스 생산 단가도 배럴당 10~15달러 수준으로 떨어졌다”며 “30달러 수준에서 10년은 갈 것”이라고 말했다.
서강대 이덕환 교수(화학)는 “공급 과잉 지속으로 유가 하락은 1970년대 1차 오일쇼크 직후를 제외하고는 처음 있는 일 같다. 정확한 기름값 예측은 어렵지만, 경기 하락에 따른 소비감소와 맞물려 쉽게 상승세로 전환할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 “에너지·산업 구조재편 기회 삼아야” 저유가에 대한 대응과 관련해 이 본부장은 “국내총생산(GDP)을 늘리는데 투입되는 석유량이 1990년대 후반에 비해 현재는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저유가가 경제에 끼치는 직접적 영향은 크게 줄었다는 얘기다. 따라서 저유가로 인한 산유국들의 디폴트(채무불이행) 선언 또는 그에 따른 금융자본의 이탈 등 움직임을 면밀히 살피고 대응책을 세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도 “단순히 기름값 추이만 볼 게 아니라, 중화학 비중이 너무 큰 뒤떨어진 산업구조 조정을 고민하고, 고급 에너지인 전기로 비닐하우스와 식당 난방을 하는 등 왜곡된 에너지 사용 문화 등을 전반적으로 점검해볼 때”라고 지적했다.
손 애널리스트도 “기술장착형 산업인 정보기술(IT)과 바이오 또는 음식료 내수 산업을 더 키워야 한다. ‘저유가는 수혜’라고 좋아할 게 아니라 벤처육성이나 가계부채 정리 등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세계 에너지 시장에서 천연가스 비중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도 중요한데, 러시아에서 북한을 경유하는 파이프를 구축해 이를 통해 가스를 공급받으면 도입 단가를 크게 낮출 수 있다. 러시아도 긍적적인 뜻을 밝힌 바 있는 만큼 사업 추진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고 설명했다.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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