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움 아닌 낭만..목포는 살아 있다

목포 | 글·사진 정유미 기자 2016. 1. 6.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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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유달산 1등 바위 아래 펼쳐지는 ‘진짜 목포’

일제강점기 서럽고 애달프게 부르던 노래 ‘목포의 눈물’ 때문일까. 목포는, 떠올리면 괜히 명치끝이 시려오는 이름이다. 시인 문병란은 목포를 “더 이상 갈 데가 없는 사람들이 와서 동백꽃처럼 타오르다 슬프게 시들어버리는 곳”이라고 했다.하지만 목포는 더 이상 종착역이 아니다. 목포(木浦)는 영산강이 바다로 들어가는 물목, 생명력 넘치는 항구다. 강의 끝자락이 아닌 먼 바다가 시작되는 도시다. 바닷물과 강물이 만나는 목포 앞바다는 어장이 잘 발달해서 사시사철 먹거리가 넘친다. 강인한 힘이 불끈 솟는 듯한 유달산 바위의 일출은 영험하고 신비롭다. 자연 그대로의 싱싱한 맛과 넉넉한 인심이 살아 있는 곳, 목포는 이제 설움의 항구가 아니라 낭만의 항구다.

목포의 심장으로 불리는 유달산 ‘1등 바위’는 영험한 기운이 감도는 곳으로 유명하다. 눈 덮인 유달산의 기암괴석들이 한 폭 그림처럼 아름답다.

■ 유달산에 가보라

전남 목포에 간다고 하자 하나같이 “유달산에 꼭 가보라”고 했다. “영험한 기운이 샘솟는 바위산으로 새해 계획을 세우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라는 것이다. 해발 228m. 웬만한 동네 앞산 높이다. 산 정상 바위 이름은 ‘1등’이다. 2등과 3등 바위가 있는 것을 보니 높이에 따라 순위를 매긴 모양이다.

산 입구에 차를 세우고 보니 이순신 장군이 왜군들을 스스로 물러나게 했다는 노적봉 앞이었다. 이순신은 해발 60m의 이 노적봉을 곡식더미처럼 위장하고 영산강 상류에 백토를 풀어 쌀 뜨물처럼 보이게 해 왜군의 기를 꺾었다. “삼백년 원한 품은 노적봉 밑에 님 자취 완연하다 애닯은 정조~.”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을 들으며 산에 올랐다. 민족적 원한과 울분을 사랑과 낭만으로 위장한 노래는 지금도 애달프다.

섬들이 호위하고 있어 안온한 항구도시지만 항구는 항구였다. 겨울 날씨는 변화무쌍해서 칼바람이 연신 얼굴을 강타했다. 눈발이 흩날리는가 싶으면 이내 햇살이 비추고 날이 개는가 싶으면 또 먹구름이 몰려오기를 반복했다.

‘다도해 전망대’ 유달산 유선각.

10분쯤 산을 오르자 검푸른 목포 앞바다가 눈에 들어왔다. 고하도와 삼학도는 당당했다. “내가 바로 호남의 관문이자 바닷길”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저 멀리 철길을 따라 ‘목포역’이라고 쓰인 간판도 보였다. 평탄한 등산로였지만 눈보라가 발걸음을 잡아챘다.

한반도의 삼면처럼 목포도 삼면이 바다다. 러시아와 중국, 일본이 눈독을 들였던 목포항이 먼발치에서 손을 흔든다. 부동항 목포는 대륙 진출을 위한 교두보였다. 산허리에 서보면 안다. 목포가 왜 서남부의 요충지이자 바닷가의 길목인지.

잘 닦인 둘레길을 따라 걸었다. 사철 푸른 동백나무 숲은 해변을 낀 고궁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산에 오른 지 1시간쯤. 숨도 고를 겸 유달산의 대표적인 정자라는 유선각에 앉았다. 들고나는 배들을 뒤따라가니 목포시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섬과 섬 사이에서 신선이 놀다간다는 곳, 유선각을 다도해 전망대라고 부르는 이유를 알겠다. 현판 글씨는 신익희 선생이 썼는데 1951년 유달산을 찾았다가 그 아름다움에 반해 남겼다고 한다.

유달산 중턱에서 내려다본 고하도.

옆에 있던 주민들이 “심성 좋은 사람이 목포에 오면 학이 나타난다”며 “어서 학을 찾아보라”고 했다. 자그마한 섬 나무 사이에 앉아 있는 학 한 마리를 찾았다. 한참을 바라봐도 학은 꿈쩍을 하지 않았다. 고개를 갸웃거리자 옆에 있던 사람들이 깔깔대며 웃었다. 학 모양을 한 동물상이었다.

바다의 깊이는 배를 보면 안다. 3000t급이 넘어 보이는 화물 선박들이 다도해를 가로지르며 줄지어 다녔다. 섬들에 둘러싸여 일망무제의 바다를 볼 수는 없지만 그 깊이는 가늠하고도 남겠다.

■ 1등 바위의 영험함을 보거라

궂은 날씨 때문인지 발길을 돌리는 관광객들이 많았다. 조금만 더 올라가면 엄지손가락을 세우고 있는 ‘1등’ 바위가 나온다고 했지만 모두들 종종걸음으로 하산했다. 선택의 갈림길, 유선각은 반환점이었다. 목포시청 관광과 조건형 과장은 “유달산이 역사적으로 영험한 성지라는 곳을 알려면 정상에 올라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 불교의 상징인 홍법대사와 부동명왕이라는 일본의 신이 바위에 새겨져 있고, 일본 시코쿠의 사찰처럼 정상으로 가는 길목에 88개의 와불 흔적이 남아 있다고 했다. 산 위에 88개의 절을 지을 수 없으니 불상을 가져다 놓은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조금 더 올라가니 일출이 가장 잘 보인다는 바위가 나왔다. 평평하고 널찍한 게 거실 같다. 다도해에 둘러싸인 유달산은 오르면 오를수록 수려한 풍광을 보여줬다. 돛대를 단 배들이 수평선 위에서 유유자적했다.

이순신 장군이 지략으로 왜구를 물리친 노적봉.

1등 바위 바로 직전 오른쪽 길로 방향을 틀었다. 마당바위에서 1등 바위를 봐야 제대로 보인다고 했다.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남긴 종교 흔적은 생각보다 뚜렷했다. 험준한 바위 아래 움푹 파인 곳에 일본의 신들이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마당바위에서 바라본 2등 바위도 볼만하다. 장미 꽃송이가 바위에 펼쳐져 있는데 누가 일부러 바위에 새겼다고 해도 믿을 것 같았다. 하얀 눈발 사이로 붉은 장미꽃잎이 흩날렸다.

1등 바위로 오르는 길은 가파르다. 온통 바위 덩어리인 데다 돌을 깎아 만든 계단은 딱 한 사람만 오를 수 있다. 살얼음이 얼어 길이 미끄러웠다. 아무리 낮은 산도 쉬 길을 열어주는 법은 없다.

해발 228m 정상에 올랐다. 얕잡아보고 올랐다 확 트인 시야에 깜짝 놀랐다. 다도해의 진경이 발아래에 펼쳐졌다. 목포 인근 섬은 1025개인데 1등 바위에 앉아 섬을 세면 1004(천사)개라고 한다. 10㎞가 넘는 해안선을 따라 낮게 엎드린 고하도는 용의 비늘 같다는 말이 실감난다. 목포대교는 손가락에 닿을 듯 말 듯했고 신항만은 한눈에 쏙 들어왔다. 바다를 이렇게 넓고 깊게 볼 수 있다니 ‘목포는 항구다’ 노래가 절로 나왔다.

한반도 지도 왼쪽 끝, 사무치는 원한, 가슴 에는 슬픔 같은 것들을 안으로 삭인 항구가 그곳에 있다. ‘유달산 잔디 위에 놀던 옛날도, 동백꽃 쓸어안고 울던 옛날도’ 그리움으로 남은 목포는 항구다.

■목포여행 TIP목포 가는 길이 많이 편해졌다. 서울 용산역에서 KTX를 타면 2시간30분 만에 목포역에 닿는다. 당일 여행이 가능해졌다. KTX는 하루에 왕복 15회 운행한다.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서해안고속도로를 타면 서울에서 4시간 정도 걸린다. 고속버스는 서울에서 4시간30분 정도 소요된다. 뱃길을 따라 홍도와 흑산도 등 섬여행을 떠나는 것도 좋다. 목포에서 출발하는 0시30분 제주행 쾌속정도 있다.

북항에 있는 해양수산복합센터에 가면 신안 등 인근 해안에서 잡아온 싱싱한 활어 경매를 구경할 수 있다. 하루 2회 펼쳐진다. 바로 옆 직판동에서 생선회를 싸게 사먹을 수도 있다.

목포도 둘레길이 잘 조성되어 있다. 유달산 둘레길은 4.3㎞ 구간으로 2시간 정도 걸린다. 고하도 용오름길도 많이 찾는데 6㎞ 정도 된다. 2시간40분 소요. 올해부터는 유달산 정상 1등바위와 고하도, 목포대교를 잇는 3㎞ 구간 케이블카 사업도 추진된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목포를 둘러보기는 쉽지 않다. 시티투어를 이용하면 유명 관광명소에 갈 수 있고 전문 해설가의 맛깔스러운 안내도 받을 수 있다. 매일 목포역 앞에서 오전 9시30분 출발해 3시40분 목포역으로 되돌아오는 코스다. 유달산, 근대역사관, 삼학도, 갓바위 등을 둘러본다. 성인 5000원, 중·고생 2000원이다.

<목포 | 글·사진 정유미 기자 youm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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