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부터 우리 사회는 1987년 이전 상황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그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박근혜 정권 출범으로 약 30년 만에 다시 새로운 ‘박정희 시대’가 시작됐다. 정권 후반기로 접어드는 올해부터 시대착오적인 무리수가 누적되면서 상황은 87년 이전으로의 회귀가 본격적으로 가시화될 것이다. 동학과 일제시대를 거쳐 지금까지 약 30년마다 체제 변환의 봉기가 이어졌다. 이대로 가면 다시 여당발 6·29 선언이 나와야 할 수도 있다.” 한때 해직당해 ‘거리의 철학자’로 불리며 한국 사회 개혁운동에도 적극 나서온 철학자 김상봉(57·전남대) 교수는 5일 전화 인터뷰에서 연초 씨알재단 초청 특강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밝혔다. 그는 오는 7일부터 4주에 걸쳐 매주 목요일 저녁 서울 명동 전진상교육관에서 ‘새 신을 신고 새날을 맞이하자’라는 제목으로 역사·존재·진리·윤리 등에 대해 두루 특강을 진행한다.

7일부터 4주간 ‘함석헌 철학’ 새 해석‘새 신을 신고 새날을 맞이하자’역사·존재·진리·윤리 주제별 강의“함석헌은 서양철학 넘어 독보적”‘수입 철학’은 현실 진단보다 ‘소비’개발독재 대신 노사상생경영 실험중
김상봉 교수
김상봉 교수

“민주화가 됐다고 했지만 우리 마음속에서 박정희를 제대로 극복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전제한 그는 “제2의 박정희 시대가 도래한 것은 그런 우리 내면의 욕망이 불러낸 것으로, 말하자면 우리 스스로 무덤 속의 박정희를 파낸 결과”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제2의 박정희가 다시 성공할 가능성은 없다”고 그는 단언했다. 박정희식 국가주도 동원체제가 더는 통하지 않는 시대가 됐는데도 또다시 그것을 재가동하려는 박근혜 정부의 낡은 국가운영방식이 통할 리 없다며, 최근 보수진영마저 방향도 출구도 없이 군림하려는 정부에 대한 태도를 바꾸기 시작한 조짐이 보인다고 그는 덧붙였다.

“하지만 그들이 성공하지 못한다고 해서, 곧 실패가 예정돼 있다고 해서 진보진영이 자동적으로 성공하는 건 아니다. 민주화가 제대로 성공하려면 ‘87년 체제’가 해내지 못한 우리 내면, 박정희를 무덤에서 불러낸 우리 내면의 한계를 먼저 극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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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김 교수 자신이 지금 몰두하고 있는 과제이기도 하다. 하나는 그 철학적 극복이고, 또 하나는 막다른 골목에 처한 한국 경제 및 사회의 출구를 찾아내는 일이다. 그는 일찍이 저서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꾸리에북스 펴냄)에서 설파했던 독일식 노동자 경영참여를 통한 노사 상생협력의 기업·사회 공동체 모델을 원용해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는 “방학하자마자 제주의 농가에 칩거하며 밀린 숙제 두 가지를 하는 중이다. 하나는 칸트의 라틴어 저작물들 번역작업이고, 또 하나는 함석헌의 씨알철학에 관한 책 쓰기다”라고 전했다. “함석헌에 대해 사람들은 아직도 의구심을 갖고 있다. 함석헌이 철학적으로 자리매김할 가치가 있는 인물인가? 아직도 주류 강단철학계에선 그에 대해 명확한 견해를 밝힌 적이 없다. 함석헌의 사회철학이나 종교·실천 철학은 평가하지만 순수이론철학, 즉 정통 서양철학적 관점에선 여전히 그를 철학자·사상가로 보진 않는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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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함석헌에 대한 그런 통념을 깨뜨리고자 한다. 그 역시 서양철학 전공자로서 “서양철학적 맥락 속에서 새로운 경지를 열어 보인 독보적인 철학자이자 연구 가치가 충분한 철학자, 함석헌”을 제대로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그는 연세대에서 철학과와 대학원을 거쳐 독일 마인츠대학에서 철학·서양고전문헌학·신학을 공부했고, ‘칸트 철학 연구’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리스도신학대 교수 재직 중 학내 문제로 해직된 뒤 민예총 문예아카데미 교장을 지내기도 했다.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와 전남교육연대 상임 공동대표를 맡아 학벌차별 반대와 교육개혁 운동에도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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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이번 특강 첫 주제로 정한 것은, 철학은 그 들어가는 문에 따라 그 성격이 정해지기 때문이다. 플라톤, 데카르트 이후 스피노자, 라이프니츠, 그리고 후설까지 서양 현대철학의 입구는 수학이었다. 그런데 함석헌 철학의 입구는 역사다. 즉 인간사다. 헤겔도 역사철학을 했지만, 함석헌은 헤겔과도 다르다. 강연에서 바로 그런 비교를 통해 함석헌 철학의 특징을 드러내려 한다.”

김 교수는 “외국에서 수입한 철학으로는 우리 현실을 이끌어갈 수 없다. 그것은 다만 소비할 뿐”이라고 했다. “함석헌 철학으로 박정희 시대의 한계를 근본적으로, 철학적으로 넘어설 수 있다. 박정희를 정신적으로 대적할 수 있었던 유일한 사람이 함석헌이었다. 그의 ‘뜻의 철학’, ‘뜻의 세계관’은 식민지배까지 당한 우리 역사의 비극은 힘이 약해서가 아니라 마음속에서 뜻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라고 했다. 뜻을 잃었기에 끝없이 이합집산하면서 지닌 힘조차 결집해 낼 수 없었던 것이다. 지금 이 시대야말로 함석헌 철학이 절실하다. 박정희가 상징하는 근대적 힘의 세계관의 한계를 가장 확실히 넘어서게 해줄 정신적 지표가 바로 함석헌 철학이다.”

한편으로 김 교수는 광주지역에 전기자동차 100만대 생산기지를 만드는 데도 힘을 보태고 있다. 그는 지난해 광주시가 ‘사회협약을 통한 광주형 일자리 창출 모델 구축’을 위한 실무적 지원기구로, 공모 절차를 거쳐 전남대 산학협력단에 위탁한 사회통합지원센터 센터장을 맡았다. 정부 공약사업이자 자신이 구상한 노사 상생협력의 새로운 민주주의 경영모델에 따른 시범사업이기 때문이다. “철학과 무관한 듯 보이지만, 이 사업 역시 ‘박정희 개발독재 시대의 극복’이라는 점에서 함석헌 철학 연구와 일맥상통한다.”

전기자동차가 ‘원전 증설’ 같은 에너지 과소비를 부추겨 생태환경에도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일부 비판에 대해 김 교수는 말했다. “지금 모든 자동차를 전기자동차로 바꾼다 하더라도 그 소비량은 전체 생산전기의 4%에 지나지 않는다. 기타 전력손실 부분을 감안하더라도 기존 전력량으로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 게다가 전기는 주로 낮에 소비되고 밤에는 낮의 60% 수준으로 줄어든다. 전기자동차 충전은 주로 밤에 가정에서 그 유휴전력을 이용하게 될 것이므로 오히려 전력 저장장치 구실도 한다. 이제까지의 모든 탈것들 중에서 가장 친환경적이다. 대중교통 전반의 전기화, 남북 전력교류 등으로도 연결될 수 있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