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혈 안 하는 30~40대, 피 '공급 부족' 사태 온다

김치중 입력 2016. 1. 4.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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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여파, 수술 몰리고 학생 방학..혈핵 부족

저출산 영향…혈액 주 공급원 10~20대 인구 감소

현 젊은 층, 장ㆍ노년 돼 혈액 못 구할 가능성 ↑

30대 이상 헌혈비율 높인 일본 ‘타산지석’ 삼아야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여파에 따른 겨울철 수술 증가와 겨울방학으로 인한 단체헌혈 감소 등으로 혈액 공급에 비상이 걸렸다. 진단검사의학과 전문의들은 "현재처럼 10~20대에 집중된 혈액인구를 30대 이상으로 확대하지 않으면 저출산 영향으로 향후 국내 혈액공급이 원활하지 않을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한국일보 자료사진

10~20대 학생ㆍ군인 위주인 현행 국내 혈액수급 체계가 30대 이상 성인 중심으로 재편되지 않는다면 향후 혈액 수급에 비상이 걸릴 것이라는 경고가 나왔다.

4일 의료계에 따르면 최근 대한적십자사 경기혈액원과 부산혈액원 등에서는 A형과 O형 혈액 보유량이 적정보유량(5일분)에 턱없이 모자라 비상이 걸렸다. 이날 현재 부산혈액원의 혈액 보유량은 A형 1.5일분, O형 1.9일분에 불과하다. 대한적십자 혈액관리원의 A형과 O형 혈액 보유분도 2.1일분에 그치고 있다.

혈액수급 위기 단계는 혈액보유량이 5일 미만이면 관심단계, 3일 미만이면 경계단계, 1일 미만일 때는 즉각적인 대응태세에 돌입하는 심각단계로 구분된다. 조현찬 강동성심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교수는 “현 상황은 전국 혈액원 간 협조체제를 가동하는 주의단계 수준이라 할 수 있다”고 했다.

매년 동절기 혈액부족 현상 반복

현재의 A형과 B형 혈액의 부족은 일시적인 현상이라는 게 진단검사의학과 전문의들 진단이다. 지난 2008년 말라리아 유행에 따라 경기북부 지역에서 헌혈 자체가 중단되면서 A, O, B, AB형 혈액 모두가 공급부족 상황에 놓인 바 있다. 전문의들은 “국내 혈액형 분포는 A형이 가장 많고, 다음으로 O형, B형, AB형 순”이라면서 “최근 인구가 가장 많은 A형과 O형 혈액 사용량이 증가한 것으로 보이는데, 특이 상황은 아니다”라고 했다.

그렇다고 해서 방심할 상황도 아닌 것으로 보인다. 전문의들은 “매년 동절기만 되면 혈액수급에 차질이 발생해 병원들은 12월부터 3월까지 긴장할 수밖에 없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김현옥 세브란스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교수는 “대형병원들은 문제가 없지만 중소병원들은 혈액수급 때문에 애를 먹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현재 국내 병원들은 평균 3~5일 정도 혈액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피가 모자라 수술이 연기 또는 취소되는 비상 상황이 일어날 확률은 낮다는 게 전문의들의 분석이다.

만약 혈액수급이 위기 단계에 돌입하면 병원들은 어떻게 대처할까. 통상 병원들은 혈액수급이 위기 단계에 들어서면 혈액원에서 ‘위기 단계’임을 통보 받는다. 병원에서는 환자 보호자 또는 방문객을 대상으로 헌혈을 권유하는 공지문을 통해 헌혈을 독려한다. 이마저도 여의치 않으면 병원 직원들이 헌혈에 나서 위기를 극복한다. 혈액을 구하지 못해 환자가 위기에 빠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런데 동절기만 되면 연례행사처럼 혈액이 부족한 이유는 뭘까.

메르스 여파, 동절기 수술 집중… 방학, 단체헌혈 감소

혈액관리본부에 따르면 날씨가 영하권으로 내려가면 계절적 요인으로 헌혈인구가 감소한다. 혈액관리본부에 따르면 최근 3년간 1~3월 헌혈자 수는 평균 22만7,980명으로 4~12월 24만5,878명보다 1만7,989명이 줄었다. 1~3월 헌혈자 평균 분포율도 7.9%로 4~12월의 8.5%보다 평균 0.6% 낮았다.

[국내 헌혈자 수]
구분 총헌혈자수(명) 연중 월평균
1~3월 4~12월 년/12월 1~3월 4~12월 동절기vs평시
2012년 2,722,608 664,371 2,058,237 226,884 221,457 228,693 △7,236
2013년 2,914,483 675,408 2,239,075 242,874 225,136 248,786 △23,650
2014년 3,053,425 712,041 2,341,384 254,452 237,347 260,154 △22,807
평균 241,403 227,980 245,878 △17,898

자료 :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

겨울철 혈액 수급에 비상이 걸리는 이유는 중ㆍ고교 방학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혈액관리본부는 진단한다. 방학으로 인해 학생 단체헌혈이 감소해 혈액수급 불균형이 초래된 것이라는 것이다. 2013년 기준 10~20대의 헌혈비율은 78.6%에 달한다. 10대(16~19세) 헌혈비율은 전체 36.3%, 20대(20~29세)는 42.3%를 차지하고 있다.

진단검사의학과 전문의들은 혈액 공급이 현재처럼 10~20대 헌혈을 의지하면 향후 헌혈수급에 비상이 걸릴 수밖에 없다고 전망한다. 저출산 여파로 학령인구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부의 ‘2015년 교육기본통계’에 따르면 4년제 일반대학 재학생 수는 211만3,293명으로 작년 213만46명보다 1만6,753명(0.8%) 감소했다. 대학생 수가 줄어든 것은 지난 1965년 교육통계 작성 이후 처음이다. 저출산 영향으로 유치원과 초ㆍ중ㆍ고 학생 수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지난해 유치원과 초ㆍ중ㆍ고 전체 학생 수는 681만9,927명으로 전년 대비 16만6,189명(2.4%) 줄었다. 헌혈수급에 절대적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10~20대 인구가 지속적으로 감소해 향후 헌혈수급에 비상이 걸릴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단기적으론 메르스 여파도 컸다. 메르스 사태로 취소, 연기됐던 각종 수술이 이번 겨울로 대거 몰리면서 혈액 사용량이 증가했다는 분석. 메르스 사태 기간 단체ㆍ개인 헌혈이 급격히 줄어든 ‘공급 부족’이 겹치면서 혈액 부족 문제를 키웠다고 전문의들은 말한다.

계절적 요인도 크다. 초ㆍ중ㆍ고 학생들이 학업에 지장을 받지 않기 위해 겨울방학 기간에 수술이 집중돼 혈액공급이 증가한다. 서울대어린이병원 관계자는 “겨울방학이 되면 평소보다 2,3배 수술건수가 증가한다”고 했다.

혈액제제를 사용해야 하는 노년층 질환이 증가하고 있는 것도 원인이다. 조현찬 교수는 “혈액이 부족한 이유는 병원이 증가했다기보다는 혈액제제를 사용해야 할 질병들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라면서 “급ㆍ만성 백혈병, 종양, 적혈구질환, 간질환 등 혈액제제를 사용하는 질환 등이 증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30대 이상 50% 넘는 일본처럼 30~40대 헌혈 절실

진단검사의학과 전문의들은 안정적인 헌혈수급을 위해서는 10~20대 중심의 헌혈인구를 30대 이상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말한다. 한규섭 서울대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교수는 “현재처럼 저출산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혈액수급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면서 “향후 20년 후 지금의 10~20대가 중년이 됐을 때 혈액이 부족해 발을 동동 구를 수 있다”고 했다.

전문의들은 30대 이상 중년층으로 헌혈인구를 확대한 일본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혈액관리본부 자료에 따르면 2013년 기준 우리나라 30~40대 헌혈비율은 18.8%에 불과한 데 비해, 일본은 30~40대 헌혈비율이 50.1%에 달한다. 한 교수는 “10~20대 건강했다면 30대 이상이라도 충분히 헌혈이 가능하다”면서 “65세까지 헌혈이 가능한 만큼 중ㆍ장년층이 헌혈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ㆍ일본 연령별 헌혈참여율]
구분 16~19세 20~29세 30~39세 40~49세 50세 이상
일본 계(명) 5,252,182 308,178 962,418 1,150,688 1,455,100 1,329,435
점유율(%) 100.0 5.9 18.5 22,1 28.0 25.5
한국 계(명) 2,914,483 1,058,704 1,231,995 361,414 187,295 75,075
점유율(%) 100.0 36.3 42.3 12.4 6.4 2.6

자료: 2013년도 대한적십자사/일본적십자사 혈액사업통계 연보

중ㆍ장년층의 헌혈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정부는 물론 공공기관, 기업 등이 적극적 참여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임채승 고려대구로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교수는 “헌혈의 집, 헌혈카페 등 대중이 언제든지 헌혈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드는데 지원해야 한다”면서 “기업체나 공공기관에서도 다회(多回) 헌혈을 한 직원들에게 가산점을 주는 등 헌혈을 적극 권장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혈액관리본부는 “젊은 층에 국한돼 있는 헌혈인구를 다변화 하기 위해 공무원, 공공기관, 기업체의 다회 헌혈유공자에 대한 가산점 부여제도 도입과 함께 동절기 캠페인성 공익광고 실시 등을 통해 30~40대 이상 연령층의 헌혈 참여를 유도할 것”이라고 계획을 밝혔다.

메르스 등 예상치 못한 바이러스 창궐로 과거에 비해 다양한 혈액검사를 진행해야 됨에 따라 혈액수가가 인상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한규섭 교수는 “혈액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 핵산증폭검사를 통해 C형 간염과 에이즈(HIV) 바이러스는 물론 백혈병 유발 바이러스 검사까지 진행하고 있다”면서 “지속적으로 검사가 추가되면 혈액수가가 오를 수 있는 만큼 연령층을 다양화 해 혈액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임채승 교수는 “인종마다 유전자가 다르고 감염 위험이 있어 수입은 불가능하다”면서 “현재까지 피를 대체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혈액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을 도모해야 한다”고 했다.

헌혈과 관련된 잘못된 선입견을 불식시키는 일도 중요하다. 혈액관리본부 측은 “우리 몸에 있는 혈액량은 남성의 경우 체중의 8%, 여성은 7% 정도로 체중이 60kg인 남성의 몸에는 약 4,800mL의 혈액이 있고 50Kg인 여자는 3,500mL 정도의 혈액을 가지고 있는데, 이중 전체 혈액량의 15%는 비상시를 대비한 여유분”이라면서 “헌혈 후 충분한 휴식을 취하면 건강에 문제가 없고 헌혈 후 1~2일 정도면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도록 회복된다”고 했다. 조현찬 교수도 “헌혈하면 에이즈에 감염되고 빈혈에 걸린다는 잘못된 정보가 아직도 난무하고 있다”면서 “헌혈로 발생할 수 있는 위험 소지는 원천적으로 차단되고 있기 때문에 안심해도 된다”고 했다.

김치중 의학전문기자 cj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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