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보는 <응답하라 2015>, '그땐 그랬지'
[오마이뉴스 글:안홍기, 편집:이준호]
ⓒ 고정미 |
OECD가 매년 발행하는 분야별 보고서에 오른 내용을 아래 그래프로 만들었습니다. 그래프 위에 마우스를 올리면 상세수치가 표시됩니다. 현재 정식 가입국이 아닌 OECD파트너 국가인 콜롬비아, 코스타리카,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러시아 등의 통계도 섞여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 OECD 통계는 표준화 보정을 거친 수치로 각 국가가 내놓은 통계 수치와 조금씩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2015년 서울 도봉구 쌍문동에 사는 진주는 올해 다섯 살입니다. 만으로는 4세이지요. 진주는 오래 살 겁니다. UN의 예상에 따르면, 2010~2015년 한국에서 태어난 여자아이는 평균 84.6세까지 살 수 있을 거라고 합니다. OECD 회원국 중에서도 무려 7위에 해당하는 긴 평균수명입니다.
이처럼 평균수명이 높은 건, 한국에서 전쟁이나 범죄 등 공격에 의한 사망률이 매우 낮은 것도 한 원인일 겁니다. 한국은 OECD 회원국 중에서도 치안이 좋은 편이지요. 하지만 진주가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면서 주의해야 할 것은 바로 교통사고입니다. 멕시코(17.4명)에 이어 2위인 한국의 교통사고 사망률(13.9명)은 OECD 평균보다 무려 두 배에 달합니다.
하지만 더 조심하고 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자살입니다. 모두 잘 알고 계시듯이 한국의 자살률은 2003년 OECD 1위를 차지한 이후로 좀체 이 불명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요. 게다가 2·3위 국가보다 훨씬 높은 수치입니다. 한국이 얼마나 살기 힘든 나라인지를 논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기도 합니다.
한국과 비슷한 자살률을 보이는 리투아니아의 OECD 가입절차가 끝나면 이 '독보적인 1위'는 벗어날 수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지금의 이 비정상적인 상황을 바로잡고 자살률을 낮추는 것이겠죠
진주는 자라나서 똑똑한 학생이 될 겁니다. 한국의 학생들은 공부를 잘하거든요. OECD의 국제학생평가(PISA)에서 만 15세 학생들의 학력을 측정한 결과 한국 학생들이 단연 1위입니다. '근의 공식'을 외우지 못해 쩔쩔매는 덕선이도 OECD의학생들과 겨룬다면, 우등생이 될지도 모릅니다.
공부를 너무 많이 하기 때문일까요. 한국에서 자녀들이 부모와 함께 놀거나 돌봄을 받는 시간은 하루에 한 시간도 안 됩니다. OECD 평균은 2시간 30분인데 이의 절반도 되지 않는 수치입니다. 입시에 시달린다는 이웃나라 일본도 한국보다는 2배 높은 수치를 보여줍니다. 1988년 쌍문동 이웃친구들 정환, 선우, 동룡이는 학교 야간자율학습을 제끼고 어울리기도 하지만, '응답하라 2015'에선 어림도 없습니다. 방과 뒤엔 학원을 가야하니까요. 집은 그저 잠을 자는 장소일 뿐입니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를 하는 이유는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서입니다. 그 목표를 위해 모두들 열심히 노력합니다. 왜냐하면 좋은 대학을 나와야 남들보다 높은 수입이 보장되는 좋은 직장에 취직할 가능성이 높아지니까요.
하지만 등록금이라는 커다란 난관이 남아 있습니다. 덕선이 언니 보라는 사립대에 비해 등록금이 낮은 편인 서울대를 다닌 덕분에 부모님의 걱정을 덜었습니다. 하지만 덕선이나 노을이를 대학에 보낸다면 과연 성동일·이일화 부부가 감당할 수 있을까요. 의대에 진학하겠다는 선우는 또 어떻습니까. 선우 엄마가 고이 간직하고 있는 '선우 등록금 통장'은 2016학년도 등록금 납부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요.
그래프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고등교육비용을 개인이 부담하는 비율이 OECD 1위입니다. 국가가 고등교육 비용부담을 하는 비율이 OECD에서 꼴찌. 한국은 아직도 대학 공부는 각자 돈으로 하는 게 당연한 사회입니다.
그렇게 힘들게 대학을 졸업해도 좋은 직장에 취직하기는 힘듭니다. '응답하라 2015'에선 저임금노동자의 비중이 높습니다. 무려 23.9%나 되네요. 중위소득 노동자의 절반 이하의 소득을 올리는 노동자가 무려 23.9%, 노동자 4명 중에 1명은 저임금 노동자입니다. 임시직근로자의 비중도 무척 높습니다. OECD 통계보다 더 최신 자료를 모은 고용노동부 발간 '통계로 보는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모습' 자료를 따왔습니다.
▲ <통계로 보는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모습> 중 OECD 국가별 저임금 근로자 비중 |
ⓒ 고용노동부 |
▲ <통계로 보는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모습> 중 OECD 국가별 임시직 근로자 비중 |
ⓒ 고용노동부 |
▲ <통계로 보는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모습> 중 OECD 국가별 노동조합 가입률 |
ⓒ 고용노동부 |
봉황당 사장 최무성씨, 금성전자 대리점주 김성균씨 같은 자영업자들의 노동시간을 포함한 통계는 '취업시간'인데요. 이를 보면 한국 사람들이 일하는 시간은 더욱 길어집니다. OECD 평균에 비해 연간 390시간을 더 일합니다. 임금 노동자나 자영업자나 일을 많이 하는 건 마찬가지네요. 그러니 자녀들을 돌보는 시간이 OECD에서 가장 적은 게 자연스러울지도 모르겠습니다.
▲ <통계로 보는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모습> 중 OECD 국가별 임금근로자 평균 근속기간 |
ⓒ 고용노동부 |
▲ <통계로 보는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모습> 중 OECD 국가별 성별 임금 격차 |
ⓒ 고용노동부 |
이렇게도 고단하고도 불안하면서도 불평등한 노동은 71세가 넘어서야 끝이 납니다. 지난 2007~2012년 한국 남성의 은퇴 평균연령은 71.1세입니다. 멕시코의 72세에 이어 OECD 2위지요. 여성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평균 69.8세로 칠레에 이어 두 번째로 높습니다.
▲ <통계로 보는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모습> 중 OECD 국가별 남성 유효 은퇴연령 |
ⓒ 고용노동부 |
한국 사람들은 연간 평균 14.6회의 의사 진료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OECD 평균 6.6회에 비하면 2배가 넘지요. 그래서인지 가계지출 중에서 의료비가 차지하는 비중도 OECD에서 1위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병원을 많이 가도 환자 스스로 건강이 좋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자신의 건강이 '좋다' 혹은 '매우 좋다'고 답한 비율이 35.1%밖에 되지 않아 OECD에서 꼴찌입니다. 하긴 그래서 병원을 더 많이 가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선우 외할머니, 즉 선우엄마의 친정엄마가 서울의 선우네집을 방문한 적이 있죠. 선우 엄마가 그렇게 청소를 하고 좋은 옷을 입고 넉넉히 사는 척 연기를 해도 엄마를 속일 순 없습니다. 친정엄마가 놓고 간 노란 봉투, 그 안의 만 원짜리 몇 장에 오열하고 마는 선우엄마. 그 몇 만 원 돈이 그렇게도 서글픈 건, 친정엄마가 아끼고 아낀 쌈짓돈이란 걸 알기 때문이기도 할 겁니다.
한국의 노인들은 가난합니다. 노인의 절반 가량이 전체 인구 중위소득 이하의 소득을 올리는 걸로 나타납니다. 노인 인구의 60% 이상이 국민연금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혼자 살지만, 부양할 의무 가족이 있는 걸로 확인되면 기초수급권을 인정받지 못하는 일도 허다합니다. 시·군·구와 광역자치단체가 착안해 시행하고 있는 상당수 맞춤형 복지정책들도 '지방자치단체 유사중복 사회보장사업 정비 지침'을 내세워 축소하고 있습니다.
유년부터 노년까지, 늘 불안을 안고 사는 한국인은 피곤합니다. 하지만 1988년 쌍문동의 이웃들처럼 부침개를 부쳐도 이웃과 나눠먹고 누가 다치기라도 하면 입원실로 총출동하는 그런 이웃들이라면 팍팍한 삶이 좀 더 살만 할 거란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응답하라 2015'는 전혀 그렇지가 않네요.
OECD의 2015년 보고서에 인용된 갤럽의 세계여론조사 결과입니다. '어려움에 처했을 때 언제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친척이나 친구가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있다'고 답한 사람이 한국의 경우엔 72.4%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OECD에선 꼴찌입니다.
여기까지 스크롤을 내리신 분들이라면 답답하실 겁니다. '응답하라 1988'은 이미 지나간 시절, 웃으면서 떠올릴 수 있는 추억들일 뿐이지만 '응답하라 2015'는 우리의 현실이니까요. 답답한 마음들을 반영하듯 미세먼지가 서울의 하늘을 뒤덮는 날도 부쩍 많아졌습니다.
끝으로, 한해를 마무리하는 인사를 드립니다. 전국의 모든 진주, 덕선, 선우, 정환, 보라, 동일, 미란, 성균, 모든 한국사회의 주인공님들, 2015년 한해 한국에서 사시느라 정말 수고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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