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베의 영웅'은 왜 일베 회원을 고소했나

정철운 기자 2015. 12. 25.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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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 “돈 받고 박원순 아들 비리 감싼다” 주장에 명예훼손 고소… “일베는 좌파 때문에 탄생”

[미디어오늘 정철운 기자]

22일 서울 광화문 ‘조갑제닷컴’ 사무실에서 만난 조갑제 대표는 말끔한 정장차림이었다. 1971년 국제신보에 입사해 1974년 ‘중금속 오염 추적’ 시리즈로 한국기자상을 받았고, 1980년 병가를 내고 광주민주화운동을 취재하다 해직된 45년차 저널리스트를 마주한 감정은 복잡했다. 1987년 민주화 이전 ‘언론인 조갑제’는 탐사보도에 있어 신화의 주인공이지만, 1984년 월간조선 입사 이후 극우보수진영을 대변하게 된 ‘평론가 조갑제’는 누군가에겐 경멸의 대상이다. 

조갑제 대표는 극우진영을 대변하는 인터넷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일베)의 영웅이다. 그런 그가 지난 10월 일베 회원 A씨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A씨는 지난 9월23일 일베 게시판에 ‘조갑제 대표가 박원순 서울시장으로부터 4억6000만원을 받고 박주신씨의 병역의혹을 감싸주고 있다’는 글을 올렸다. 조갑제 대표는 강용석·차기환·양승오 등 일부 인사들의 병역의혹제기를 “근거 없는 마녀사냥”이라고 일축해왔다. 

조 대표가 일반인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건 이례적인 일이었다. “내가 욕을 많이 먹는 사람이어서 일일이 소송하지 않고 보통은 무시해왔는데 이건 중대한 허위사실이었다.” 조갑제닷컴 측은 A씨 글에 법적 문제가 생긴다고 댓글로 주의를 줬지만 A씨는 다음날에도 같은 글을 올렸다. 처음엔 조 대표도 웃었지만, 글이 퍼지고 여러 사람 전화를 받으며 심각성을 느꼈다. A씨에겐 반성의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소송에) 너무 시간을 뺏기면 할 일을 못한다. 내겐 글 쓰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저렇게 글을 썼는데도 고소를 안 하면 기고만장해서 퍼트릴 테니까….” 

 
 
▲ 조갑제 '조갑제 닷컴' 대표. 사진=이치열 기자
 

그는 이 일로 제법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나는 박원순 시장을 굉장히 비판해온 사람이다. 박 시장의 문제를 정리한 책을 두 권 냈다. 돈을 받는다는 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나에 대한 평가는 언론자유영역이지만 허위사실 적시는 안 된다.” 조 대표 입장을 지지하고 확산시켜 온 곳에서 음해성 주장이 나와 속상할 법도 했다. “거짓말을 그럴듯하게 하면 속아 넘어간다. 출판물 명예훼손은 회복 가능하지만, 인터넷 명예훼손은 쏟아진 물을 담는 것처럼 어렵다”고 했다. 

조 대표는 2012년 신촌세브란스 병원에서의 재검으로 박주신 병역 논란은 끝났다고 했다. “처음엔 MRI사진을 보고 이 사진이 20대일 수 없다고 믿었을 것이다. 믿으니까 의혹 제기가 됐다. 의혹은 법으로 어찌할 수 없다. 그런데 의혹제기 차원을 넘어 단정으로 갔다. 검찰이 기소한 이유다. 의혹제기와 단정 사이에는 불법과 합법의 계곡이 있다.” <관련기사=조갑제도 말리는 박원순 아들 병역 의혹> 조 대표는 “이 사건은 옳고 그르다, 좋고 싫다의 문제가 아니라, 사실이냐 아니냐의 문제다. 이것은 과학적으로 객관적으로 밝혀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조 대표는 ‘박원순 아들 박주신의 병역의혹’이란 세간의 언론프레임도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본질은 의사 양승오 등 몇 명의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선거법 위반 사건이다. 박주신은 피해자고, 양승오는 가해자다.” 결과적으로 그의 주장이 박 시장을 옹호하는 셈이 돼버렸는데 부담은 없었을까. 조 대표는 “진실은 누구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하지 않다”는, 답을 내놓았다. 그는 여전히 의혹제기를 포기하지 않는 인사들을 두고 “자기 체면이 걸린 문제인데, 재판에 계류 중이니까…(입장을 바꾸면) 재판에 불리하게 작용하게 되니까…”라고 말했다.

“일베는 좌파 때문에 탄생…좌파적 선동성이 한국 언론 신뢰 떨어뜨려”

자유민주주의를 옹호하는 조갑제 대표는 전직 대통령과 특정지역을 비하하고 독재를 옹호하며 여성과 장애인에 대한 성적 폭력을 일삼는 일베의 폐륜적 습성과 반민주적 태도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답은 상상했던 범위 밖이었다. “일베는 좌파들의 광우병 선동이나 천안함 폭침 선동으로 울분에 쌓인 사람들이 만들었다. 그런 사이트가 등장한 배경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조 대표는 일베를 두고 “욕설을 해선 안 되고 공정해야 하며 거짓말을 해선 안 된다”고 말하면서도 “사이트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답했다. 그는 일베 사이트를 폐쇄하자는 일부 주장에 대해 “토론을 통한 상호 견제로 풀어야 한다”고 답하면서 “먼저 없애야 할 사이트가 좌파진영에 더 많다”고 반박했다. 

조갑제 대표는 종합편성채널을 두고서는 “센세이셔널리즘이나 시청률 위주 편성은 문제”라고 밝히면서도 “한국 언론이 70~80% 좌경화됐다가 종편이 나오고 여론을 중간으로 가져오는데 일정 역할을 했다”고 긍정 평가했다. TV조선과 채널A가 2013년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이 북한군 개입으로 이뤄졌다”는 주장을 여과 없이 내보냈던 반(反)저널리즘적 행태에 대해선 “이건 종편이 즉시 바로잡았다. 바로잡으면 된다”고 해명했다.

 
 
▲ 2012년 MBN에 출연한 조갑제 대표. 박근혜 당시 대통령 후보가 박정희정부의 과오를 사과한 것을 두고 비판하는 모습.
 

공영방송에 대해선 여전히 반신반의하는 모습이었다. 그는 MBC를 두고선 “MBC는 상당히 좋아졌다”고 말했지만 KBS를 두고선 “과거보다 좌경적 편향성은 나아졌지만 가끔 돌발적으로 이승만정부가 (6.25전쟁 당시) 일본에 망명정부수립을 신청했다는 황당무계한 조작이 나오고 있다”며 “공영방송의 신뢰성은 지금도 아슬아슬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 발 더 나아가 “좌파적 선동성이 한국 언론의 신뢰성을 떨어트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우파는 박주신 문제도 그렇고 나를 포함해서 이건 안 된다, 하는 자정 작용이 있는데 좌파는 천안함 폭침이 북한 소행이 아니라는 반성이 나오지 않는다. 좌파는 이념적 경직성으로 자체적인 궤도수정이 어렵다.” 

그는 좌파성향의 언론인을 두고 “세계관이 계급투쟁론에서 출발한다. 가진 자와 안 가진 자를 나누고 국가기관을 지배층의 도구로, 타도 대상으로 본다. 정의로운 우리(좌파)가 정권을 잡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언론도 하나의 수단이다, 따라서 (좌파는) 사실 보도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 목적에 맞으면 사실을 왜곡해도 좋다고 생각하는, 또는 그런 사상에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언론직에 종사하며 언론을 수단으로 이용한다. 광우병 선동 같은 게 이뤄진다”고 주장했다. 

조 대표는 좌파성향 언론인을 두고 “기자는 위장막이고, 속성은 선동가다. 이렇게 위험한 줄타기를 하게 되는데, 한국의 언론사정이 상당부분 그 쪽으로 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입은 점점 거칠어졌다. “메르스는 언론이 선동했다. 이건 좌우가 없다. 세월호도 선동 보도의 사례다. 메르스는 지나고 보면 사망자가 40명 정도인데 그게 무슨 보건 계엄령을 펴야할 정도의 대 사건이 아니었다. 세월호 사건도 본질은 화물과적이다. 감독을 잘못한 당국의 잘못이다. 나는 해경이 최선을 다했다고 보는데, 172명을 구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정장을 구속시켰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정상적 나라라면 해경구조대는 표창을 받아야 한다. 언론은 해경을 마녀 사냥했다. 메르스 때는 보건복지부를 마녀사냥 했다. 나라가 망한다면 제1책임은 선동적 언론이 져야 한다.” 조갑제를 통해 극우보수진영의 ‘언론관’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가 국정교과서 관련 강연에 나선 모습. ⓒ연합뉴스
 

“고문의 풍습이 없어졌다…이 이상의 인권 향상이 어디 있나”

박근혜정부를 적극 지지하는 극우보수진영은 한국이 언론자유국가이며, 좌파성향의 선동가들이 언론인으로 위장해 정부를 흔들며 체제 전복을 노린다고 생각한다. 조갑제는 이들에게 프레임을 제공하는 핵심 이데올로그다. 그의 주장을 마냥 무시할 수 없는 이유다. 

예컨대 조 대표는 대한민국 역사에서 언론자유가 가장 높았던 시기로 노태우 정부를 꼽았다. “1980년대는 우리 언론의 메인테마가 고문조작이었다. 고문이 너무 많았다.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이 역사를 바꿨다. 김주열군의 모습을 부산일보가 특종하며 충격을 줬다. 한 인간의 억울한 생명이 역사를 바꿨다. 노태우 때부터 안기부에 연행되는 기자가 없어졌다. 지금은 고문이 없다. 고문의 풍습이 최근 30년간 없어졌다. 이 이상의 인권 향상이 어디 있나. 수사기관에 끌려가 얻어맞지 않을 자유를 누리는 건 엄청난 자유다. 민주화운동의 위대한 업적이다.” 

민주화 성과를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박정희체제를 긍정하고, 반공을 강조하는 그의 프레임은 30년 전 산업화·민주화 세대인 오늘날 장년층을 위로하고 있다. 조갑제는 장년층이 독재를 옹호하고 사회적 양극화를 방관했다는 비판 대신 장년층이 이뤄놓은 ‘성과’를 강조했다. “한국에선 대통령을 욕해도 끌려가지 않는다. 이런 자유를 누리는 나라가 많지 않다”고 주장하는 식이다. 

그는 OECD국가 중 자살률 1위, 노인빈곤율 1위인 대한민국을 긍정했다. “지금은 태평성대다. 경제가 우선 튼튼하다. 지난 1년 간 외환수지 흑자가 1000억대다. 세계에서 네 번째다. 실업률이 3.1%인데 이정도면 낮은 편이다. 분단 상황으로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상황에서 채찍질을 한 결과다.” 그는 오늘날 장년층이 위대한 대한민국을 만들었지만 민주화 이후 반체제세력이 활개 치며 나라를 망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국가라는) 배에 구멍을 내선 안 된다. 한국엔 구멍을 내는 사람들이 있다. 통진당 세력이다.”

그는 다시금 언론문제에 주목했다. “요새는 언론자유 남용이 너무 심하다. 권위주의적 통치 시기와 지금 기사를 비교하면 과거 기사가 더 정확하다. 과거에는 잘못 쓰면 당하니까 사실 확인을 더 했다.”

그는 한국 언론이 본 받아야 할 언론으로 뉴욕타임즈, 워싱턴포스트, 요미우리, 아사히, 르몽드, 이코노미스트, 파이낸셜타임즈, 슈피겔 등을 꼽았다. 그래서 대뜸 지난 달 나온 뉴욕타임즈 사설을 언급해봤다. 한국의 국정교과서 추진을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조 대표는 “한국 실정을 참 모르는 것이다. (뉴욕타임즈가) 가끔 아주 잘못된 보도를 한다. 어떻게 교과서가 이승만을 원수로 묘사할 수 있나. 김일성을 비호하는 교과서를 허용하는 건 이스라엘에서 히틀러의 ‘나의 투쟁’을 가르치는 것과 같다. 그런 사설을 볼 때는 뉴욕타임즈를 경멸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뉴욕타임즈는 좋은 신문이다. 10%는 실수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조 대표는 기자에게도 저널리즘의 원칙을 당부했다. “글을 쓸 땐 세 가지 원칙을 지키면 된다. 사실에 부합해야 하고, 헌법을 존중해야 한다. 그리고 공정해야 한다. 사실, 헌법, 공정성이다. 이것이 언론의 행동윤리다.” 그는 언론이 한자혼용을 통해 독자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야만 일류국가로 발돋움 할 수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한 시간 반가량의 만남은 그렇게 마무리됐다. 

조 대표는 문 밖을 나서는 기자에게 구두주걱을 건네주었고, 헤어지는 엘리베이터 앞까지 기자를 배웅했다. 조 대표는 “난 글 쓰는 게 본업인데 요새는 사람들을 만나면 내 글을 읽은 사람보다 TV(종편)에서 봤다는 사람이 많다. 활자의 위기다”라며 씁쓸하게 웃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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