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메모]첫 단추 꿴 대통령만 말이 없다

임아영 기자 입력 2015. 12. 25. 11:49 수정 2015. 12. 25.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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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보육은 나라가 책임질 테니 걱정하지 말고 낳기만 하라.”

누구의 말일까. 박근혜 대통령의 말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 2012년 대선 만 3~5살 어린이들의 무상보육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공약집에는 ‘확실한 국가책임 보육/만 5세까지 국가 무상보육 및 무상 유아교육’이란 내용도 있다. 당선인 시절 이렇게도 말했다. “보육과 같은 전국 단위 사업은 중앙정부가 (재원을) 책임지는 게 맞다.”

3년이 지났지만 당장 내년 1월 어린이집·유치원 보육료 지원이 끊기게 생겼다. 누리과정 예산을 두고 정부와 시·도 교육청의 갈등이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보육과 같은 전국 단위 사업은 중앙정부가 책임지는 게 맞다는 대통령의 말과 달리 2014년 기획재정부는 누리과정 예산 편성을 거부했고 교육부는 지난 5월 지방재정법 시행령을 고쳐 ‘누리과정 보육료 예산 지원은 교육감의 의무’라고 아예 법으로 못을 박아버렸다. 왜 대통령의 말은 바뀌었는가.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월 인천 남동구에 있는 한 국공립 어린이집을 방문해 수업을 참관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전국 시·도 교육감협의회는 23일 박 대통령에게 공개 면담을 요청했다. 이 문제의 매듭을 풀 수 있는 사람은 결국 처음 단추를 꿴 대통령 뿐이라는 것이다. 교육감들은 “마지막까지 교육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겠다”며 “이 시간 이후 대통령의 누리과정에 대한 책임 있는 답변을 기다리겠다”고 밝혔다. “절실하게 호소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러나 바로 다음날인 24일 이영 교육부차관과 추경호 국무조정실장은 잇달아 반격에 나섰다. 이 차관은 기자회견에서 누리과정 예산 편성을 하지 않는 시·도 교육청과 의회에 대해 대법원 제소를 검토하겠다고 밝혔고 추경호 국무조정실장은 지방 재정현안 관련 긴급 관계부처 차관회의에서 “총선을 앞두고 일부 지자체에서 무분별한 선심성 복지정책을 남발하는 반면, 관계법령상 의무적으로 편성하도록 돼 있는 누리과정 예산은 편성하지 않아 국민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며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하는 것은 교육감의 가장 중요한 책무이자 반드시 준주해야 하는 법령상 의무”라고 강조했다.

교육감들의 대통령 면담 요청을 정부는 강경하게 법적 대응 카드를 내놓으며 뭉개버렸다. 지자체의 정책은 총선을 앞둔 선심성 복지정책으로 깎아내리고 대통령의 공약은 지자체를 쥐어짜서 지켰다는 포장을 하는 게 정부의 일인가. 그러나 아무리 정부가 국민들을 속이려 해도 대통령이 대선 공약을 지키지 않는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누리과정 예산 기사에는 대통령이 약속을 지키라는 댓글이 쇄도한다. “약속한 사람이 지키는 것 아닙니까? 적반하장입니다. 아무래도 망할 것 같습니다”, “대통령 되면 증세 없이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믿은 국민은 뭐가 됩니까”, “국정 교과서 만들 돈은 있지만 누리과정 지원할 돈은 없다는 거죠. 기가 찹니다.”

대통령은 왜 뒷짐 지고 구경만 하고 있나. 첫 단추를 꿴 대통령이 답을 할 차례다.

<임아영 기자 laykn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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