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탄생지 줄잇는 원정출산.. "지난주엔 한국인도 왔다"
지난 21일(현지 시각) 오후 팔레스타인 베들레헴의 '예수 탄생교회(Church of the Nativity)'. 성탄절을 앞두고 순례객으로 가득 차 있어야 하지만, 주민 외에 외국인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팔레스타인 관광 가이드 무함마드는 "이슬람국가(IS)의 테러 위협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유혈 충돌 때문에 관광객이 없는 듯하다"면서 "이렇게 썰렁한 12월의 베들레헴은 처음"이라고 했다. 일간 알쿠드스는 "12월에 베들레헴을 찾는 외국 관광객 수는 평균 30만명이지만 올해는 그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예수 탄생교회'에서 골목길을 따라 북서쪽으로 약 1㎞ 내려가자 금발·검정 머리의 외국인이 여럿 보였다. 이들이 드나드는 곳은 팔레스타인 유명 산부인과 병원 '성가족 병원(Holy Family Hospital)'이었다. 예수의 탄생지인 베들레헴에서 아기를 낳으려고 그 병원을 찾는 것이다. 인근의 상점 주인 아흐맴은 '성가족 병원'을 가리키며 "130여 년 전에 프랑스 교회에서 지어서 팔레스타인에서는 '무스타시파 알프랑사위(프랑스 병원)'로 알려졌다"면서 "1년 내내 외국인 임신부가 찾는데, 성탄절 시기에 그 수가 더 많아진다"고 했다.
테러 공포로 성탄절 관광객의 발길은 뚝 끊겼지만, '베들레헴 원정 출산' 행렬은 더 늘고 있다. '성가족 병원'의 사바 나스리 원장 대행은 "지난주에도 한국인 임신부가 건강한 아기를 낳고 퇴원했다"면서 "매년 원정 출산자가 약 10%씩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여러 나라 가운데 특히 미국과 한국의 기독교인들이 예수 탄생지에서 아기를 낳으려고 이 병원을 찾는다고 한다.
병원을 찾은 날에도 또 한 명의 '베들레헴 베이비'가 탄생했다. 출산 4시간 전 진통 중이던 미국인 임신부 A씨는 본지 인터뷰에서 "베들레헴은 이·팔 갈등으로 문제가 많은 곳이고 요즘은 IS 때문에 더 중동 지역에 가는 것이 조심스럽지만, 오래전부터 아기 예수와 동방 박사의 동네에서 나의 아기가 태어나길 바랐기에 가족과 함께 출산 예정일에 맞춰 여기로 왔다"고 했다. 이날 출산한 또 다른 미국인 산모는 "산후 조리를 베들레헴 전통에 따라 하고 싶다"면서 비둘기 고기구이와 올리브 오일로 만든 수프를 먹었다. 현지인 사이에서 비둘기 고기는 고단백질로 모유(母乳) 생성을 돕는 것으로 알려졌다. 병원 관계자는 "일부 가족이 출산일을 12월 25일에 맞추고 싶다고 요청하는 경우가 있는데, 안전을 위해 그런 목적으로 유도 분만 주사를 놓거나 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이 병원을 이용하는 원정 출산자는 거의 예외 없이 기독교인이지만 그 외 임산부는 85% 이상이 팔레스타인 무슬림(이슬람교 신자)이다. 실제로 병원 복도와 입원실 곳곳에는 히잡(머리카락을 가리는 무슬림 여성용 천)을 쓴 여성이 다수였다. 나스리 원장은 "기독교 병원이지만 진료비가 다른 곳보다 절반 가까이 저렴하고 실력이 좋아 무슬림이 많이 찾아온다"면서 "한 달에 한 번씩 남쪽 사막 지역으로 출장을 가서 베두인(유목민의 일종) 여성들을 진료해주는 활동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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