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바꾼 일본..하시마 어디에도 강제징용 기록은 없었다

임기훈 2015. 12. 23.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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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리포트 - 동북아역사재단 현지답사 약속 지키지 않는 일본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이후 강제노역 사실 표기 않고 은폐 한·일간 첨예한 인식차만 확인 한·중·일 역사교과서 답보상태 "멀지만 공동발간은 가야할 길"

[ 임기훈 기자 ] 지난 22일 일본 규슈 나가사키항에서 배를 타고 30여분을 가자 회색 아파트 건물로 가득한 섬이 보이기 시작했다. 군함처럼 생긴 섬이라 ‘군함도’로 불리는 하시마(端島·사진)다. 하시마는 지난 7월 ‘메이지(明治) 일본의 산업혁명 유산’의 하나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된 곳이다. 조선과 중국 청년들이 끌려와 석탄 채굴 강제노역을 했지만 정작 하시마에서는 그런 기록을 찾아볼 수 없었다.

동북아역사재단은 한·중·일 공동역사교과서 개발을 위해 역사현장에 대한 이해도를 높인다는 취지로 21일부터 학계 관계자들과 함께 하시마 등을 답사했다. 답사에서 확인된 사실은 역사에 대한 한·일 간의 큰 인식 차이다. 우선 하시마가 ‘지옥섬’이라는 별칭으로 불렸다는 사실은 일본에서조차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나가사키항 매표소 옆에는 하시마 내부 모습을 알 수 있는 모형이 있었다. 모형에는 아파트 병원 등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어 잘 짜인 계획도시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안내문, 관광책자 어디에도 당시 이곳에 조선인과 중국인이 강제로 끌려와 일했고 조선인 수백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됐다는 언급은 없었다.

일본은 강제 징용을 의미하는 설명 문구(forced to work)를 추가하겠다고 약속했고, 이를 전제로 하시마의 유네스코 등재가 결정됐다. 하지만 일본은 이후 ‘forced to work’가 강제 노동을 뜻하는 게 아니라고 번복했다. 약속을 어긴 것이다. 하시마 안내인은 “조선인들은 월급을 받고 일한 근로자”라고 주장했다.

안중근이 사살한 이토 히로부미에 대한 한·일 간의 인식 차도 크다. 야마구치현 하기시 변두리에는 그가 청년시절을 보낸 조그마한 초가집과 총리 시절 도쿄에 지은 저택을 옮겨온 거대한 기와집이 나란히 놓여 있다. 기념관으로 꾸며진 기와집 곳곳에는 이토 히로부미가 일본의 초대 총리를 지냈으며 메이지유신 등을 주도해 근대화를 앞당긴 인물이라는 설명이 자세히 서술돼 있었다. 하지만 한일강제병합을 통해 조선의 식민지화를 주도했다는 내용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한국과 일본, 중국 등 동북아 3국은 공동 역사연구와 공동역사교과서 출판을 추진 중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3년 11월 동북아 3국 공동역사교과서 발간의 필요성을 제기했고 중국과 일본의 긍정적인 반응을 끌어냈으나 실무 차원에서 아무런 진전이 없는 상태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시간이 걸려도 공동의 역사교과서를 꼭 제작한다는 방침이다. 우선 학생들을 위한 공동 역사교재 발간을 1차 목표로 삼고 있다. 교과서 외에 공동 부교재나 역사유적 공동 답사 등의 교육프로그램도 준비하고 있다.

김정현 동북아재단 독도교육연수원 팀장은 “독일과 프랑스의 공동교과서는 발간까지 70년 이상, 독일과 폴란드의 공동교과서는 40년이 걸렸다”며 “공동의 역사교육이 가능해지려면 국가와 민족 중심의 역사를 극복하고 국가 간 역사적 인식의 차이를 드러내는 데 주저할 필요가 없다는 공감대가 먼저 형성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나가사키·야마구치=임기훈 기자 shagg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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