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 색출에 "우리도 죽여라".. 버스테러 목숨 걸고 맞선 케냐 무슬림

박소영 2015. 12. 22.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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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복장^물건 건네며 적극 보호도

만데라주에서 출발해 나이로비로 향하다 지난 21일 알 샤바브의 공격을 받은 '메카 버스'. 출처 데일리 네이션

“기독교도들을 죽이려면 우리도 같이 죽이고, 아니면 우리를 놔두고 떠나라!”

지난 21일 오전 7시, 소말리아와 맞닿은 케냐 북동부 만데라주 엘와크의 외진 도로에 멈춘 버스 밖에서 무슬림 승객들이 기독교도들을 색출하려던 무장 테러리스트들에게 맞서며 이렇게 외쳤다.

만데라주에서 출발해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로 향하는 ‘메카 버스’를 탄 62명의 승객들은 이날 갑자기 나타난 이슬람 무장단체 알 샤바브의 공격을 받았다. 총을 쏘아대며 버스를 세운 알 샤바브 대원들은 승객들을 모두 버스에서 내리게 했다.

총을 앞세운 알 샤바브 무장 대원들은 승객들에게 기독교도와 비기독교도로 나누고 “기독교도가 아닌 자들은 버스로 돌아가라”고 말했다. 그러나 승객들은 이들의 요구에 순순히 응하지 않았다. 승객 무하무드 압디는 “우리는 알 샤바브 대원들이 버스에 타기 전 그들이 기독교도들을 구분하지 못하도록 다른 승객들에게 이슬람 복장과 물품을 건네줬다”고 말했다. 알 샤바브 대원들이 기독교도들을 색출하려고 하자 승객들은 “죽이려면 모두 죽여라!”고 외치며 맞섰다.

알 샤바브가 쏜 총에 부상을 입은 승객 아브디라시드 아단은 케냐 언론 데일리 네이션에 “알 샤바브 대원들에게 대항해 승객들이 맞서던 중 다른 트럭 한 대가 다가왔다”며 “이들이 그 트럭을 멈추는 사이에 우리는 버스로 돌아와 간신히 도망쳤다”고 말했다.

이 사건으로 버스에서 도망쳐 달아나던 승객 한 명과 이슬람의 신앙 고백인 샤하다를 암송하지 못한 트럭의 차장이 알 샤바브의 총에 맞아 사망하고 3명이 다쳤다고 데일리 네이션은 보도했다.

알 샤바브는 2011년 10월 케냐 군이 소말리아에 개입한 후부터 소말리아와 접경한 케냐 북동부에서 빈번한 공격을 가하고 있다. 케냐 북동부에는 소말리아 출신 무슬림들이 특히 많이 거주한다. 기독교인들을 골라내 처형하는 알 샤바브의 방식은 만데라주 등 케냐 북동부 지역을 두려움에 떨게 했다.

지난해 11월에도 알 샤바브는 성탄절 연휴를 맞아 나이로비 여행길에 나선 만데라주 교사들의 관광버스를 탈취해 기독교도 28명을 사살했다. 이 사건으로 지난 한 해에만 2,000명이 넘는 교사들이 만데라주를 떠났으며 많은 보건 종사자들도 만데라주를 등졌다.

알 샤바브가 지난해 4월에 케냐 북동부의 가리사 대학 캠퍼스에 난입해 148명을 사살할 때에도 기독교도를 골라내 총으로 쏘는 등 지역 주민들은 알 샤바브의 잔혹 범죄에 진저리가 난 상황이었다.

현지 언론들은 이날 버스 승객들의 용기 있는 행동이 알 샤바브에 대한 지역 주민들의 저항을 촉발하는 계기가 될지 주목하고 있다. 알리 로바 만데라 주지사는 “지역주민들이 지난 28명의 교사 살해 사건이 재발하는 것을 막기 위해 비무슬림 승객들을 보호했다”며 “승객들이 보여준 용기와 애국심, 단합이 결국 알 샤바브 테러범들을 물리치고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했다”고 말했다.

박소영기자 sosyo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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