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유흥업소 뇌사' 제보 여성들, 정말 용감했다"

오병종 2015. 12. 19.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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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영 광주여성인권지원센터 언니네 상담소 소장.. "생계비 지원 절실"

[오마이뉴스 오병종 기자]

[기사 수정 : 20일 오후 2시 50분]

전남 여수의 한 유흥주점 여종업원 A(34)씨가 뇌사 상태로 입원했다가 깨어나지 못하고 지난 10일 사망했다. 입원 20일 만이었다. 몸에는 폭행 당한 흔적이 있었다.  

지난 17일 경찰은 유흥주점 업주 B(42, 여)씨에 대해 상습 폭행으로 A씨를 숨지게 하고 성매매를 알선한 혐의로 사전 구속 영장을 청구했다. 또한 이번 사건과 관련된 CCTV 녹화본과 장부 등 중요 증거를 없애려 한 혐의로 웨이터 C(23)씨에 대해서도 사전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또한 이 과정에서 전남경찰청 소속 경찰관과 해경, 여수시청, 국세청, 소방서 소속 공무원 6명이 이 업소에서 성매수를 한 것을 확인하고 해당 기관에 통보했다. 나아가 업소와 공무원 사이 유착관계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수사를 확대할 방침이다.

이런 수사결과가 나오기까지는 용기 있게 자신들의 상황을 알린 9명의 동료들과 이들을 조력한 광주여성인권지원센터 등 여성단체의 노력이 있었다. 사건 발생 당시 사망자와 한 업소에서 근무했던 이들이 하소연 할 곳이 여수에는 없었다. 그들은 멀리 광주여성인권지원센터를 찾아 가서야 자신들의 사정을 털어놨다.

지난 14일 광주광역시 동구에 위치한 광주여성인권지원센터 사무실에서 김희영 언니네 상담소 소장과 만났다.

"광주까지 찾아온 피해자의 동료들, 오후 늦게까지 증언"
▲ 언니네 상담소 사단법인 광주여성인권지원센터 부설 상담소의 상담원 5명이 맡아서 이번 수사과정에서 제보자들과 경찰 조사에 동석했다.
ⓒ 오병종
"여수에서 광주까지 한 업소의 종업원 9명이 함께 찾아온다는 연락을 받았다. 더러 개별적으로는 광주 주변의 중소도시에서 상담소를 노크하는 사람이 있지만, 외지에서 단체로 찾아온 건 처음 있는 일이다. 심각성을 느낀 우리는 서둘러 준비한 뒤 상담원 전원이 이들과 만났다. 출근과 동시에 시작한 상담은 이날(11월 24일) 오후까지 계속되었다."

김 소장에 따르면 이 업소에서는 일상적 폭행이 이뤄졌다고 한다. 상담소를 찾은 동료들은 사건 당일인 20일 새벽 피해자가 눈에 잘 띄지 않는 장소에서 폭행 당했다고 증언했다. 이날 피해자는 토사물을 코와 입에 머금고 쓰러졌다.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뇌사였다.

이틀 뒤 유가족은 피해자의 몸에 멍 자국이 있다며 여수경찰서에 진정서를 접수했다. 경찰이 주점을 찾아갔지만 직원은 폭행은 없었으며 음식을 먹다 일어난 사고라고 진술했다. 뇌사 상태에 빠진 피해자의 목숨이 위태롭다고 여긴 동료 9명은 당시 상황이 무언가 비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느꼈다.

"사건 직후 업주는 종업원들에게 경찰 전화를 받지 말라는 얘기를 했다고 한다. 상식적으로 피해자가 뇌사 상태에 빠졌다면 경찰이 피해 상태도 직접 확인해 보고, 필요하다면 사진도 촬영하고 했어야 한다. 그게 아쉽다.

또한 유흥주점은 특수한 장소다. 경찰은 절차대로 했다고 주장한다. 경찰이 아닌 가족이 피해자의 몸에 멍이 든 사진을 촬영했는데, 만약 가족이 사진을 안 찍어 두었다면 그나마 자료도 남지 않았을 것이다. 이건 초기에, 경찰이 해줬어야 한다고 본다."

처음 이 사건은 수사가 더디기만 했다. 사건이 덮일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으로 동료 9명이 폭행 사실을 제보하고, 여성단체들이 엄정 수사를 촉구한 후에야 언론에 보도됐다. 약자의 죽음이 세간에 알려지면서 파문이 일었다. 하지만 경찰 수사가 더디게 진행된 탓에 해당 업소에서는 관련 장부와 CCTV 녹화본이 사라졌다.

"우리는 피해 가족이 진정서를 접수한 이후 여수경찰서가 어떤 수사를 하고 있는지 알아봤다. 하지만 그저 음식물로 기도가 막힌 사건 정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었다. 피해자는 의사표현이 불가능했다. 폭행치사로 보이는데 사건화가 되지 않을 기미였다. 그래서 유가족이 고발장을 냈다.

그런데도 수사에 진전이 없자 지난달 30일 보도 자료를 냈다. 그 때부터 언론에 보도됐다. 그러나 수사는 우리가 바라는 만큼 진전되지 않았다. 그 사이 업소의 CCTV 녹화자료도, 영업장부도 없어졌다. 다시 광주전남 44개 여성단체의 이름으로 여수경찰서 앞에서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이 업소에서 성을 매수한 남성 중에는 전남경찰청 등 공무원을 포함해 일부 지역 인사들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경찰은 이들과 해당 업소 사이 유착 여부를 수사 중이다. 여성 단체를 찾아 폭행 사실 등을 제보한 동료들은 이번 사건이 초기에 알려지지 않은 점을 특히 안타까워했다.

"여수에서는 어렵다고 본 것 같다. 우리 사회, 특히 소도시에서는 서로 '형님 동생' 하는 분위기다. 때문에 수사와 단죄가 어렵다는 걸 이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광주까지 저희를 찾아온 것이다. 결심을 하고도 불안해했다.

하지만 이들에겐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동료가 억울한 일을 당했으며, 그 억울함을 밝혀야 한다는 점이다. 실로 큰 용기다. 윤리의식이나 사회 정의감도 작용했겠지만 인간적인 절실함이 그런 용기를 내게 했지 않았겠나?"

업소와 경찰이 유착하여 사건을 은폐, 축소한다는 의혹을 품은 동료들은 혹시 자신에게도 억울한 죽음이 닥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떨기도 했다.

"생계 접어두고 수사 협조 중인 동료들, 생계비 지원 절실"

이들은 일을 시작할 때 선불금을 받고 차차 빚을 갚아 나가는 방식으로 일한다. 이 과정에 규정을 어겼다며 업주가 벌금을 거두어 가는 식의 임금 착취도 있었다고 한다. 처음 몇 백만 원이었던 빚이 천만 원 단위로 늘어나기도 했다. 제보자 9명의 빚만 수억 원대라고 한다.

현재 이들은 생업을 잠시 접어두고 상담과 수사를 받고 있다. 광주여성인권지원센터가 이 과정을 조력한다. 경찰 조사를 받을 때에도 상담원이 동석한다. 여수경찰서, 전남경찰청, 순천에 있는 광역수사대까지 모두 동행했다. 이 때 발생하는 비용은 광주여성인권지원센터가 지원한다. 하지만 일반생활비를 지원하는 제도는 없다.  

"수사 기간에는 경제활동을 전혀 못한다. 이들은 동료가 사망한 사건을 수사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입장이 아닌가? 더구나 이분들의 제보가 없었다면 그냥 묻혀버릴 사건이었다. 그렇다면 수사 기간 동안 이들의 긴급 생활비 지원하는 제도가 반드시 갖춰져야 한다고 본다."

제보자들은 자신들로 인해서 한 사람의 죽음이 알려지고, 수사도 진전되는 모습을 보면서 보람을 느끼고 있다. 동시에 추가적인 피해나 불이익이 발생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입장이다.

"이번 사건은 어려운 여건에 놓인 여성인권 문제를 잘 드러냈다고 본다. 사회적 관심이 필요하다. 또 성매매 알선이 드러나면 거기에 대한 몰수추징과 장소를 제공한 건물 및 토지주에 대한 처벌 등도 이뤄져야 한다. 사건이 발생한 여수 학동 일대는 성매매가 일상화된 지역이다. 꾸준히 단속을 통해서 행정처분을 이미 했어야 한다. 이번 수사 결과가 다양한 차원의 불법, 탈법에 대한 처벌로 이뤄지길 바란다."
○ 편집ㅣ손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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