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줄' 끊긴 의·약사들, 범죄 뒷길로..

김종훈 기자 2015. 12. 17.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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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김종훈 기자]

성형수술 중 오염된 약물을 사용하고 환자를 숨지게 한 혐의(중과실치사상 등)로 지난 10월 불구속 입건된 일반외과 의사 정모씨(37) 등이 운영한 성형외과./사진=서울지방경찰청

#지난 1월 중국인 유학생 A씨(25·여)는 산부인과 의사 이모씨(43·여)가 운영하던 여성 의원에서 불법 임신중절수술을 받다 의료과실로 뇌사상태에 빠졌다. 이씨는 A씨가 임신 12주차라는 사실을 확인해주면서 "시일이 늦으면 중절이 어려워진다"며 불법 수술을 권유하고 180만원을 챙겼다. 이씨는 여성의원에서 가능한 진료만으로는 수익을 낼 수 없어 무분별하게 불법 수술을 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10월 김모씨(29·여)는 서울 강남의 한 성형외과 의원에서 일반외과의 A씨로부터 안면지방이식수술을 받고 이틀 만에 패혈성 쇼크로 사망했다. 프로포폴 재고가 부족해 수술일정을 맞추지 못하게 됐다는 이유로 폐기된 프로포폴이 재사용된 게 문제였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일반외과 진료로는 충분한 수익을 올릴 수 없어 전공과 다른 성형외과에 종사하던 중 범죄에 연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의료업계에서 생존 경쟁에 밀려나 범죄에 손을 대는 의료인들이 증가하고 있다. 이 같은 의료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시장 구조를 개선하고 안정된 진료 환경을 보장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병·의원 생존률 30%…'생존형' 의료범죄 증가세=16일 박윤옥 새누리당 의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새로 개업한 병원·의원은 1985곳, 폐업한 곳은 1407곳으로 신규 개업 대비 폐업률이 약 71%에 달했다. 신규 개업한 병원·의원 10곳 중 생존에 성공하는 곳은 단 3곳에 불과한 셈이다.

이에 따라 순간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범죄에 발을 들이는 의료인이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검찰청 범죄분석에서 의사가 의료법이나 약사법을 위반한 사례는 2012년 1194건, 2013년 927건, 지난해 1330건 등으로 해마다 1000건 안팎을 기록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의료범죄 대부분은 돈벌이 문제에서 비롯된다"며 "특히 2, 3차 의료시설에 비해 장비가 부족한 1차 의료시설에서 근무하는 일반의들이 경영난이나 채무 때문에 범행을 저지르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어 "약사들도 과열된 생존 경쟁에 취약하기는 마찬가지"라며 "예컨대 성분이 기준 함량에 초과·미달되는 비아그라, 씨알리스 등 가짜 의약품을 팔아 뒷돈을 챙기는 약사도 더러 있다"고 말했다.

◇의료업계 노동시장, 기형적 포화 상태…"정부 개입 필요"=현직 의사들은 일선 의료시설의 상황이 이미 한계에 달했다고 토로한다. 서울에서 근무하는 한 내과 의사는 "1차 의료시설의 경우 환자 1명당 진료 수입이 1만원 정도인데, 대다수가 하루에 50명을 진료하기도 빠듯하다"며 "한 달에 1000만원의 수입을 올렸다 해도 200만~300만원의 임대료와 인건비, 의료장비 대여비 등을 지출하고 나면 의사 본인이 얻을 수 있는 수익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의료노동단체들은 2013년 기준 우리나라의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2.2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평균(3.3명)을 밑도는 데도 과열 경쟁이 나타나는 것은 의료노동시장의 기형적인 구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정재수 보건의료노조 정책국장은 "의원에서 진료를 받아도 될 환자들이 대형병원으로 몰리다 보니 1차 의료시설이 경영난에 빠져들고 있다"며 "현재 상급 병원을 이용할 때 의료수가를 높이는 방식으로 환자를 분산시키려는 시도를 하고 있으나 환자의 부담금만 높일 뿐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상윤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은 "의원 등 1차 의료시설은 최신장비를 들이거나 규모를 늘리기 어려워 의료시장에서 도태되는 형국"이라며 "결국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불법적인 방법을 써서 매출을 올리거나, 재료비 등 지출을 줄이기 위해 소독을 제대로 하지 않는 등의 부정 의료행위를 저지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공동개업이나 주치의 제도 등 1차 의료시설의 진료 수준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도입하고 있는데도 정부는 여전히 의료업계를 시장 논리에만 맡기고 있다"며 "정부와 유관단체가 나서 수도권과 특정 전공에 편중된 의사들을 분산시키고 진료 수준을 관리할 수 있는 정책을 도입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종훈 기자 ninachum24@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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