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방촌, 성매매 알선하는 할머니들'.."먹고 살려니 할 수 없지"

윤다빈 입력 2015. 12. 15. 05:01 수정 2015. 12. 15.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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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윤다빈 기자 = "아가씨들은 돈만 주면 얼마든지 불러주지. 자고 가요"

지하철 막차시간을 앞둔 밤 11시30분께 서울역광장. 행인들이 추위에 옷깃을 단단히 여민 채 발걸음을 재촉했다. 같은 시각, 광장 출입구 앞으로 6~7명의 할머니가 하나 둘 모여 들었다. 이들은 뒷짐을 진채 약속이나 한 듯 각자의 자리로 흩어졌다.

할머니는 유유히 행인에게 다가갔다. "막차 끊겼으니 자고 가요", "방 있어요 방", "따뜻한 방 있으니 쉬었다가요" 힘없이 작은 목소리로 쉴 새 없이 말을 걸었다.

무심히 발걸음을 돌리는 행인을 향해 광장의 할머니는 추가 제안을 했다. "여기 아가씨 있어요. 5만원."

서울 도심 한복판,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장소에서 이렇듯 공공연하게 성매매 알선이 이뤄지고 있었다.

쪽방촌 할머니들은 모두 숙박업에 종사하고 있다. 성매매는 손님을 끄는 일종의 영업 수단이다.

상주하는 성매매 여성은 없지만 손님이 원할 경우 출장서비스 여성을 불러준다. 아가씨가 있다고 말은 하지만 실제로는 50대 후반에서 70대 중장년층 성매매 여성들이 이곳으로 출장을 온다.

◇경찰서 30m 거리서 성매매 알선… "처벌만이 대책 아냐"

서울역광장에서 나와 남산 방향으로 걷다보면 호텔, 대기업 사옥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좀 더 걸음을 옮기면 주변과 어울리지 않는 허름한 풍경의 쪽방촌이 위치하고 있다.

더욱 눈길을 끄는 것은 쪽방촌에서 걸어서 1분도 안 되는 거리에 경찰서가 있다는 사실이다.

과거 이곳은 큰 규모의 유흥업소가 위치한 지역이었다. 이후 재개발을 거치며 하나 둘씩 사라졌고, 현재의 재개발 구역으로 묶인 쪽방촌만이 옛 풍경을 유지하고 있다.

서울 중구 남대문로5가에 위치한 쪽방 건물은 대략 10여 채. 대부분 4~5층으로 지어졌다. 한 층에는 방이 10개씩 있으니 한 건물에 40~50개의 방이 있는 셈이다. 할머니들은 건물의 주인이거나 관리인이지만 일부는 세를 내고 영업을 한다.

할머니를 따라 들어간 쪽방 내부에는 나무문이 좌우로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방 하나는 기껏해야 2평 남짓. 사람 두 명이 누우면 꽉 차는 수준이다. 오래된 건물인 탓에 안에서 쿰쿰한 냄새가 났다.

대체로 욕실이 없는 방은 2만원에 거래가 된다. 욕실이 있으면 3만~4만원을 받는다. 서울역의 노숙인 또는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은 이들에게는 한 달에 24만원을 받고 장기계약을 맺는다. 하루에 8000원 꼴이다.

쪽방촌은 남대문경찰서 지척에 자리잡고 있다. 경찰이 밤중에 서울역광장을 순찰하지만 단속은 제대로 이뤄지지않고 있는 실정이다.

경찰이 단속을 주저하는데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경찰 관계자는 "올해도 2~3번 단속을 했고, 그 때마다 벌금 20만원의 처분을 내렸다"며 "할머니들의 경제적 사정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고민이 크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할머니들이 벌금을 내기 위해 또 어떻게 할까 싶어서 단속을 해놓고도 마음이 안 좋았다"며 "그 양반들도 어떻게 보면 불쌍하다"는 속내를 밝혔다.

또 "우리가 얼굴을 알고 있기 때문에 할머니를 무조건 단속하는 건 아니고 먼저 계도를 하고, (집으로) 돌려보내고 있다"며 방침을 설명했다.

할머니들도 간간이 벌어지는 경찰 단속 상황에서도 이 일을 그만둘 수는 없는 형편이라고 강변한다.

손님을 찾아 바쁘게 발걸음을 옮기던 A할머니는 "(성매매 알선) 이거 불법이잖아. 경찰이 보는데서 영업을 하면 뭐라고 하지. 그렇지만 단속에 걸리는 거야 재수지 뭐"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지팡이를 짚고 일하는 B할머니는 "단속이 필요 없어. 쪽방이니까 없는 사람이 사는 거 다 알잖아"라며 무덤덤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면서 "여기는 경찰서 근처라 손님하고 싸우면 안 되기 때문에 어린 사람은 못 써. 매너가 나쁘면 안 되잖아"라며 "(성매매를 온) 여성이 손님하고 싸우지 않고, 또 잘해주니까 조용하잖아"라고 귀띔했다.

◇"50년 일해 자식 셋 키워"…성매매 알선이 유일 생계수단

대부분의 할머니들은 먹고사는 문제가 걸린 탓에 이 일을 계속하고 있다.

이곳에서 호객행위를 하는 이들은 대부분 70~80대 노인이다. 고령에 걸음걸이가 불편한 이들도 많다. 이 일이 아니면 다른 생계수단을 찾기 어려운 형편이다.

열심히 손님을 쫓던 C할머니는 "매일 12시에 나와 새벽 2~3시간씩 영업을 한다"며 "운이 좋아야 하루에 손님 한 두 명을 데려온다. 요새는 다 좋은 데로 가지 뭐하러 이런데 찾아오겠나"라고 푸념했다.

B할머니는 "우리 아저씨가 30년 전 뇌졸중으로 쓰러져서 이렇게 지금까지 살아왔어. 그러다가 6월에 중풍을 맞아 지금 병원에 있어. 움직이지 못해"라며 "내가 집안의 가장이라 돈을 벌어야지"라고 말했다.

작은 체구에 검버섯이 많이 핀 D할머니도 "여기서 일한지 15년 됐어. 내 방은 아니고 세를 내고 하는 거야"라며 "자식들은 시집, 장가가서 지들끼리 잘 살아. 나하고 할아버지 둘만 사는데 나이 먹고 이제 아파서 일도 못해. 근데 이 일은 편한 시간에 나와서 할 수 있잖아"라고 설명했다.

두꺼운 점퍼에 곱슬 파마를 한 E할머니는 "아들 셋을 가르치다보니까 이곳에만 한 50년 있었지. 다 가르쳐서 장가보내고 나니까 늙은이만 남았어. 영감도 작년에 떠나보냈고…"라며 덤덤하게 말했다.

그러면서 "자식들이 다 괜찮아. 저희들 밥은 먹고 살아"라며 "나 혼자 먹고 살아야 하는데 요즘 장사가 안 돼. 그래서 날씨 좀 좋으면 나와 보고, 추우면 못 나오고 하지"라며 엷은 미소를 지었다.

새벽 2시. 깊은 어둠과 추위가 서울역광장을 뒤덮고, 인적이 사라지고 나서야 할머니도 하나 둘 자신의 보금자리로 돌아갔다.

불법과 생업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며 서울역광장을 삶의 터전으로 잡은 할머니들. 이들의 하루가 이렇게 또 흘러갔다.

fullempty@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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