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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슈퍼리치]기부①‘해커 필랜트로피(사회공헌)’ 실리콘밸리 IT부호의 기부혁신

[헤럴드경제=슈퍼리치섹션 천예선ㆍ민상식 기자]세계 최대 소셜네트워킹서비스 페이스북의 창업주 마크 저커버그(Mark Zuckerbergㆍ31)는 3000만원대 폴크스바겐 골프를 탄다. 54조원 자산가의 자동차로는 소박하기 그지없다. 즐겨입는 옷은 회색 티셔츠과 모자달린 후드 재킷.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이지만 연봉은 고작 1달러다.

‘소박한 청년’ 저커버그가 일을 냈다. 지난 1일 딸 맥스(Max)의 출생을 축하하며 자신이 보유한 페이스북 지분 99%(450억달러ㆍ52조원)를 기부하겠다고 밝히면서다. 이는 미국 기부왕인 포드, 록펠러, 카네기의 자선재단을 모두 합친 것보다 두배 많은 액수다. 
 
마크 저커버그가 지난 1일 딸 맥스 출생을 축하하며 지분 99%를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뜨거운 감자’가 된 것은 기부액수보다 기부방식이다. 저커버그는 자신과 아내의 이름을 딴 유한책임회사(LLC) ‘챈-저커버그 이니셔티브(구상)’를 통해 기부하고 맞춤형 학습, 질병치료, 강력한 공동체 만들기에 기여하겠다고 밝혔다. 해커 필랜트로피(hacker philanthropyㆍ해커들의 사회공헌)가 불붙은 순간이다. 해커 필랜트로피란 40세 이전에 성공한 현대의 IT(정보기술) 신흥 부호들이 펼치는 사회공헌활동을 말한다.

신조어 ‘해커 필랜트로피’를 처음 만들어낸 인물은 저커버그의 멘토이자 페이스북 창립멤버였던 숀 파커다. 파커는 지난 6월 월스트리트저널(WSJ) 기고문을 통해 “해커는 통상 ‘문제아’로 간주되지만 그들은 또한 복잡한 문제를 풀어낸다”며 “오늘날 젊은 인터넷 영웅들이 자신을 부자로 만들어준 재능을 기부의 세계로 전환시키는 데 사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시장 원리에 따를 것, 정치적으로 개입할 것” 등 기부 세부강령도 제시했다. 
  
해커 필랜트로피를 주창한 숀 파커. 저커버그의 멘토이자 페이스북 초대 사장을 지냈다.

영국 유력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들의 출현은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임팩트 투자(Impact Investment)’와 맥을 같이한다”며 “저커버그가 자선에 대한 새로운 접근방법을 이끌고 있다”고 전했다. 임팩트 투자란 투자행위를 통해 수익을 추구하는 것뿐 아니라 사회나 환경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업이나 기업에 돈을 투자하는 행태를 말한다. 이른바 실리콘밸리 IT부호들의 ‘기부 혁신’이다.

실리콘밸리 불붙은 LLC 기부=유한책임회사를 통한 기부는 저커버그가 처음은 아니다. FT에 따르면, 고(故)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주의 미망인 로렌 파월 잡스, 저커버그와 함께 페이스북을 공동창업한 더스틴 모스코비치, 냅스터 창업주이자 페이스북 초대 사장 숀 파커 등 실리콘밸리 IT부호들은 유한책임회사를 통해 거금을 사회에 환원하고 있다.

챈-저커버그 이니셔티브 페이스북

유한책임회사란 2012년 도입된 회사의 형태로 출자자가 직접 경영에 참여할 수 있다. 회사가 망해도 각 출자자가 출자금액만을 한도로 책임을 지는 구조다.

LLC가 일반 자선단체와 가장 큰 차이점은 세금이다. 자선단체는 비과세 혜택을 받는 만큼 정치적인 주장이나 로비를 할 수 없다. 반면 유한책임회사는 일반회사처럼 투자할 수 있고 세금을 내는 대신 정치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저커버그는 뜻을 같이하는 정치 캠페인에 광고도 할 수 있고 특정 회사에 투자할 수 있는 셈이다.
 
회사에 수익이 나면 더 큰 목표를 위해 재투자할 수 있다. LLC는 출자자가 경영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에 자금이 어디에 사용되는지 세부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애플 창업주 고(故) 스티브 잡스의 미망인 로렌 파월 잡스.

잡스의 아내 로렌 파월 잡스는 2013년 자선을 위한 LLC ‘에머슨 콜렉티브(Emerson Collective)’를 설립했다. 로렌은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변화를 이루기 위한 필요에 맞게 빠르게 반응할 수 있다는 게 LLC의 최대장점”이라며 “정치·영리·비영리 목적을 위해 동시에 자유롭게 투자할 수 있다”고 말했다. 로렌의 자산은 206억달러(23조9200억원)로 세계 부호 45위다.

모스코비치는 그의 아내 캐리 터나와 함께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벤처 ‘기브웰(GiveWell)’에 투자한다. 이민개혁과 노숙자를 위한 자선활동이 중점이다. 모스코비치는 저커버그와 함께 페이스북을 공동창업했지만, 지금은 자신이 만든 소프트웨어 회사 ‘아사나(Asana)’ 최고경영자로 활약하고 있다. 그의 자산은 95억달러(11조300억원)로 평가된다.
  
페이스북 공동창업자이자 아사나 CEO 더스틴 모스코비치.

해커 필랜트로피의 창시자 숀 파커(35) 역시 자신의 이름을 딴 ‘파커 재단(The Parker Foundation)’을 설립해 생명과학과 세계 건강 및 시민운동을 위한 자선활동을 벌이고 있다. 자산은 25억달러(2조8950억원)를 보유하고 있다.

▶저커버그 실험, 세계가 주목=세계는 테크 엘리트들의 ‘개입과 확장’의 자선활동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주목하고 있다. 각국 정부가 의회 혹은 동맹국 간의 이해관계에 휘말려 의사결정을 제때 내리지 못하는 것과 달리 창의력과 혁신성으로 무장한 실리콘밸리의 젊은 IT거물들의 ‘기부 혁신’이 가져올 파급력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이다.

대런 워커 포드 재단 회장은 저커버그 기부 계획에 대해 “밀레니엄세대(1980~2000년 초 출생한 세대)에 보내는 분명한 메시지”라며 “자산을 사회 정의를 위해 사용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평가했다. 
  
세계 1위 부호 빌 게이츠

억만장자 미디어 재벌이자 전(前) 뉴욕시장인 마이클 블룸버그는 “저커버그가 ‘30이 새로운 70’임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31세에 불과한 저커버그가 보통 70세 정도의 나이에 행하는 사회공헌활동의 새 장을 열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그는 “전통적인 자선방법은 이제 변방으로 물러났다”며 “이제 질문은 얼마나 많은 저커버그의 실리콘밸리와 그 너머의 동료들이 그에게 동참할 것인가”라고 덧붙였다. 

[관련기사]기부② ‘한국판 저커버그’ 나오지 않는 까닭


세계 1위 부호이자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주 빌 게이츠(60)와 그의 아내 멜린다 게이츠(51)도 저커버그 부부의 기부에 관해 “‘지금 심은 씨앗이 자랄 것’이라는 말대로, 당신들(저커버그 부부)이 한 일이 앞으로 수십년간 결실을 볼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cheo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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