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로커 스콧 웨일런드의 부고를 접하고..

2015. 12. 7.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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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6일 흐림. 모래알.#186 Stone Temple Pilots 'Big Empty'(1994년)
[동아일보]
3일 별세한 미국 밴드 스톤 템플 파일러츠의 전 보컬 스콧 웨일런드. 사진 출처 스콧 웨일런드 홈페이지
아무리 봐도 영화 ‘다크 나이트’(2008년)의 조커와 ‘크로우’(1994년)의 에릭 드레이븐은 닮았다.

배우도 그렇다. 조커 역의 히스 레저(1979∼2008)는 영화 개봉 전 약물 과다 복용으로 숨졌다. 드레이븐 역의 브랜던 리(1965∼1993)는 영화 촬영 중 소품용 권총에 맞아 사망했다. 리는 리샤오룽(李小龍·1940∼1973)의 맏아들이다.

‘A는 저무는 세상을 구할 열쇠를 쥔 구세주. 하지만 지금은 자기 심신 건사하기도 힘들다. 지난 사랑을 잊지 못하거나 개인적인 복수만 궁리하기 때문에. 늘 슬픈 표정을 한 A는….’

1990년대에 난 이런 스토리와 그 주인공 A에 자신을 동일시하는 데 꽂혀있었던 것 같다. ‘다크 시티’(1998년)의 존 머독도, ‘다크 시티’의 상업적 확장판 격인 ‘매트릭스’(1999년)의 네오도 어쩐지 내 얘기 같았다. 내 헛된 기대와 세기말의 불안감.

그 무렵 인기를 얻은 미국 밴드 스톤 템플 파일러츠의 전 보컬 스콧 웨일런드가 3일(현지 시간) 별세했다. 향년 48세. 그는 공연을 앞두고 투어 버스에서 자다 숨진 채로 발견됐다. 90년대부터 빠졌던 약물 중독이 사인으로 조심스레 추정된다.

파일러츠는 초기에 펄 잼의 아류라 폄훼됐다. 지금도 마니아들이 쳐주는 이른바 ‘그런지(grunge) 빅 4’(너바나, 펄 잼, 앨리스 인 체인스, 사운드가든)에 못 낀다. 누군가 ‘빅 5’를 꼽는다거나 ‘교체 선수’를 논할 때나 등판한다.

파일러츠와 웨일런드는 그러나 동료 그룹들과 차별되는 감각을 보여줬다. ‘Sex Type Thing’ ‘Vasoline’ ‘Big Bang Baby’ 같은 저돌적이거나 활기찬 곡들도 좋았지만 ‘Plush’ ‘Creep’ ‘Big Empty’ ‘Interstate Love Song’에서 웨일런드의 허스키하고 쓸쓸한 보컬을 잊기 힘들다. 그는 건스 엔 로지스 멤버들과 ‘벨벳 리볼버’로 활동하며 ‘헐크’(2003년)의 주제곡(‘Set Me Free’)도 불렀다. 준수한 솔로 앨범 ‘12 Bar Blues’에는 대니얼 라누아와 브래드 멜다우도 참여했다.

‘크로우’ 사운드트랙에 실린 ‘Big Empty’는 음표를 고단하게 끄는 어쿠스틱 슬라이드 기타의 황량한 질척거림, 셀로판으로 위장된 강철 벽처럼 갑자기 허물어져 내리는 전기기타 소리의 낙차가 뼈대다. 웨일런드의 보컬이 외줄을 탄다. ‘너무 많이 걸으면 신발창이 닳듯/너무 많은 환각이 내 영혼 닳게 했어.’

어떤 이의 1994년은 시커먼 동굴 속에서 응답한다. ‘Frances Farmer Will Have Her Revenge in Seattle’(너바나·1993년)의 가사는 과장된 자학과 염세로 얼룩진 그때 정서를 한 줄로 요약했다. ‘안락함이 그리워. 슬퍼진다는 것의….’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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