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Talk

저커버그의 ‘부자 기부‘보다 ‘부자 증세’가 먼저다

주영재 기자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가 지난 10월 7일 미국의 한 방송프로그램에 출연해 발언하고 있다. Photo by Mike Windle/Getty Images for Vanity Fair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가 지난 10월 7일 미국의 한 방송프로그램에 출연해 발언하고 있다. Photo by Mike Windle/Getty Images for Vanity Fair

계몽된 부자들이 그들의 금권을 이용해 인류와 지구에 더 나은 미래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인가? 부자의 선의와 계몽주의가 아니라 그들에게서 더 많은 세금을 거둬 공공의 힘으로 진보를 이룰 것인가?

마크 저커버그의 기부는 진보를 이루는 두 가지 방법론을 공론의 장에 끌어들이는 계기가 됐다.

미국의 비영리 탐사저널리즘 매체 ‘프로 퍼블리카’(PRO PUBLICA)는 3일(이하 현지시간) 뉴욕타임스에 발표한 글에서 “사회는 억만장자들의 선행과 계몽주의에 의존할 수 없다”며 “부유세와 같은 종류의 세금을 이용해 (부자들에게) 균등하게 돈을 걷을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1일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는 딸 출산 소식과 함께 자신과 부인 프리실라 챈의 이름을 딴 공익사업기관 ‘챈 저커버그 이니셔티브’(Chan Zuckerberg Initiative)를 설립하고 여기에 부부 재산의 99%를 기부하겠다고 발표했다.

■곱씹어볼 만한 프로퍼블리카의 ‘딴지’

프로퍼블리카는 ‘마크 저커버그의 이타심이 그 자신을 돕는 방법’이라는 제목의 이 글에서 “저커버그는 기부를 한 것이 아니라 투자 기관을 만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저커버그는 ‘챈 저커버그 이니셔티브’를 자선 재단이 아닌 유한책임회사(Limited Liability Company·LLC)의 형식으로 설립했다.

저커버그가 LLC 형태를 취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가 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우리는 정책과 공공 의제 형성에 참여해야 한다”고 밝힌 데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LLC는 정치자금을 기부할 수 있고 법을 바꾸기 위한 로비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반면 재단이나 공공 자선기관은 로비가 매우 제한돼 있고 선출직 공직 후보자를 직간접적으로 지원하거나 반대할 수 없다.

저커버그가 편지에서 “25년, 50년, 심지어 100년에 이르는 장기 투자를 해야 한다. 가장 위대한 도전들은 매우 장기간의 전망을 요구하고, 단기간의 생각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고 말한 부분이나 “진보는 지속가능한 행동들로 뒷받침되어야 가능하다”고 밝힌 부분은 정치적 자율성과 함께 운영의 자율성이 LLC를 택한 주된 이유임을 보여준다.

재단 형태의 자선기관은 매년 재산의 5% 이상을 써야 하고 이 과정이 모두 정부의 감독 대상이 된다. 하지만 LLC는 이런 규칙의 적용을 받지 않아 장기간의 계획을 세우고 운영하기 쉽고 투명성 요구에서도 자유롭다.

게다가 LLC는 수익 사업에 투자를 할 수 있고 그에 따른 수익도 세제 혜택을 받는다. 미국 샌디에이고 로스쿨의 조세전문가인 빅토르 플라이셔 교수가 프로 퍼블리카에 설명한 바에 따르면, LLC가 저커버그의 주식을 팔아 기부를 할 경우 일정 부분 공제를 받아도 세금은 내야 한다. 그러나 만약 LLC가 주식 가격 상승분만을 기부하면 세금을 한푼도 내지 않아도 된다.

블룸버그 통신이 “저커버그의 박애주의가 기부의 새로운 표준을 세웠다”고 언급한 것은 이런 독특한 방식의 기부 때문이다.

물론 저커버그는 이날 세제 혜택 논란에 대해 “우리가 설립할 LLC가 주식을 매각할 때는 다른 사람들처럼 똑같이 자본수익에 대한 세금을 납부할 것”이라고 말했다.

■‘철인정치’와 민주주의 사이

사실 저커버그를 비롯한 억만장자들의 기부 행보는 플라톤 식의 ‘철인 정치’를 연상시킨다. 비효율적인 국가 대신 ‘철학자왕’인 자신들이 금력을 바탕으로 세상을 더 바람직하게 바꾸겠다는 의도가 비치기 때문이다.

그가 “각 분야에서 가장 강력하고 독립적인 지도자를 지원해야 한다”고 밝힌 데서 소수 선각자들의 역할을 강조한 것을 알 수 있다.

플라톤의 흉상. Rafael Robles/flickr

플라톤의 흉상. Rafael Robles/flickr

프로 퍼블리카는 저커버그의 사례와 같은 ‘거액 기부’는 그 돈이 사회로 환원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명백히 인정한 것이자 누구도 그 자신이나 가족을 위해 450억달러나 되는 돈을 사용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암묵적으로 인정한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그 돈 역시 근본적인 관점에서는 진짜 ‘그의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프로 퍼블리카는 “영향력이 매우 큰 부호가 기부를 할 때마다 공공 영역은 우리 사회의 조세 제도가 작동하는 방식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며 “이들 부호들은 그들의 세금을 최소화하는 기부를 택함으로써 지나친 찬사와 함께 매우 큰 사회적 평판을 얻는다”고 지적했다.

이 매체는 저커버그의 기부가 선행에 대한 칭송으로 끝나기 보다는 우리가 진정 어떤 종류의 사회에서 살아가길 원하는 지 생각하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선출된 (의회) 권력이 사회 구성원들에 세금을 매기고 선출된 관료들은 이 돈을 어디에 써야할 지 결정한다. 이는 민주주의 사회의 작동 원리인 조세법정주의다. 저커버그의 경우는 이와 반대로 한 명의 개인이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구조다. 물론 무능한 국회 의원들보다 저커버그와 같은 뛰어난 개인이 더 현명한 결정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일부 부유한 사람들의 선의에 기대기보다는 부자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부담하도록 해 그 돈으로 건강과 복지, 교육에 투자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원칙에 더 부합하는 것은 아닐까. 프로 퍼블리카가 “우리는 올리가르히(러시아의 재벌 혹은 과두제 집권층의 일원)의 세상으로 향하고 있다”고 말한 것은 이런 점을 지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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