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화통 터지는 보육]"비싼 사립유치원에 등골 휘는데 정부는 아이 더 낳으란다"

임아영 기자 2015. 12. 3.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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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립 탈락' 부모들 애환"사립도 떨어지면 이산가족추첨 잘못해서 죄인 된 기분"

서울 공립유치원 추첨이 끝나고 3일 사립유치원 접수가 시작됐다. ‘추첨 로또’를 손에 쥐지 못한 부모들은 사립유치원 추첨에 다시 운을 맡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 8일까지 집에서 가까운 각 유치원을 돌며 원서를 내고, 11일까지의 추첨기간을 또 한번 앞두고 있는 부모들은 “이번에도 안되면 어떻게 하느냐” “아이 낳으라는 정부 광고를 보면 화가 치민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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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립은 턱없이 부족, 사립은 비싸

서울 강남구 자곡동에 사는 ‘워킹맘’ 강모씨(33)는 공립유치원을 두 군데 지원했지만 다 떨어졌다. 동네 어린이집 대기순위가 여전히 100번대라 아이를 등촌동 친정집에 맡겨 키운 지 3년이 지났지만 추첨에서 떨어지면서 또 이산가족이 될 위험에 처했다. 그는 “사립유치원마저 추첨이 안되면 아이를 주말에만 보거나 이사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또 안되면 일을 그만둬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까지 든다”고 말했다.

공립유치원은 턱없이 부족하고 그 틈새를 비싼 사립유치원이 파고든다. 사립유치원은 학급비, 종일반비, 교재비 등을 더하면 한 달에 50만원을 훌쩍 넘어선다.

아이 3명의 다자녀가구인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이모씨(32)는 공립유치원 추첨에서 떨어지며 죄인이 됐다.

이씨는 “다자녀 우선순위가 있는 유일한 공립 추첨에서 떨어졌고 사립에는 다자녀 우선순위가 없다”며 “아이 셋을 유치원에 보내면 120만~150만원이 드는데 모두 공립을 보냈을 때와 10배 차이가 난다. 추첨 때문에 가족들에게 미안한 기분이 들게 하는 이 사회에 정말 화가 난다”고 말했다.

아예 지역에 공립유치원이 없어 사립유치원에만 매달리는 경우도 있다. 방배동 공립유치원은 내년 만 3세반을 모집하지 않아 만 3세, 6개월 된 아이를 키우는 양모씨(34)는 사립유치원만 6군데를 지원할 생각이다. 집 바로 앞에 초등학교가 있지만 그 안에 병설 유치원은 없다. 그는 “병설 유치원도 획기적으로 늘리지 못하는 정부가 아이 낳으라고 광고하는 것을 보면 정말 화가 치민다”고 말했다.

■대안이 없어서 해결 못하나

매년 되풀이되는 유치원 문제의 근본 원인은 “정부의 의지 부족 때문”이라고 부모들은 지적했다. 민모씨(37)는 “어린이집, 유치원 수만 늘린다고 소프트웨어가 채워질 리 만무한데 정부는 손 놓고 있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강씨는 “아이들이 줄어서 초등학교 학급 수가 준다는데 그만큼 공립유치원을 만드는 게 그렇게 어렵나”라고 되물었다.

일부 사립유치원들이 공립유치원 신설을 반대하고 정부가 그를 방치하는 것에 대해 부모들은 분노를 표했다. 이씨는 “공립유치원을 만들면 그 동네 사립유치원 몇 개가 없어진다고 하는데 당연히 정부는 사립유치원에 퇴로를 만들어주면서 정책을 마련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결국 부모들이 원하는 것은 어린이집이든, 유치원이든 믿을 만한 시설이다.

주부 채모씨(39)는 5세, 3세 아이 둘 다 구립어린이집에 보낸다. 그는 “구립어린이집은 적어도 식단으로 장난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어 만족도가 높다. 유치원 추첨할 필요도 느끼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채씨도 “자꾸 정부에서 어린이집 예산을 주겠다 말겠다 하고 어린이집은 보육료 동결에 파업을 하겠다고 하니 불안하다”고 말했다.

민간어린이집 보육교사로 일하고 있는 김모씨(38·경기 일산)는 “관리 사각지대가 있는 민간어린이집 사정을 잘 알기 때문에 정말 아이를 국공립 시설에 보내고 싶었는데, 대기순번이 너무 길어 할 수 없이 민간어린이집에 보냈다가 1년 전부터 가까운 사립유치원으로 보내고 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보육교사들과 부모들은 10여년 전부터 계속 국공립이 많아져야 한다고 강조했는데 왜 계속 제자리인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을 결국 목적예비비로 우회하기로 한 것을 본 부모들은 한숨을 토해냈다.

강씨는 “30대 부모들은 표가 안된다고 생각하는 건지 정말 화가 난다. 꼭 선거로 심판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모들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해달라고 주문했다.

강씨는 “주로 50대 남성 공무원이 정책 결정을 하는 것이 악순환의 원인”이라며 “서울과 지방, 서울 안에서도 구별로 상황이 다른데 지역마다 알맞은 정책을 만들 수 있도록 부모들의 의견수렴 통로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당장 국공립 시설을 만들 수 없다면 좀 먼 공립유치원이더라도 셔틀버스를 태워 보낼 수 있게 하는 등 피부에 와닿는 정책을 원한다”고 말했다.

<임아영 기자 laykn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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