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로템 추락]① "중국 저가 공세·정부 무관심 속 현대로템은 침몰중"

류호 기자 2015. 11. 27.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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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로템 창원공장 내부 모습/현대로템 제공
2014년 매출액 기준 세계 철도차량 업체 순위. 현대로템은 11억5000만유로(1조4000억원)로 12위를 기록했다.(단위: 억유로)/자료: 현대로템 제공, 그래픽=김연수 디자이너
현대로템이 남미 철도시장에 수출한 고속철도차량/조선일보DB

"해외에선 중국 기업들의 저가 공세에 밀려 게임이 안 된다. 국내 시장에서도 최저가 입찰만 고집하는 정부와 지자체의 외면으로 도태되고 있다."

현대로템(064350)이 '내우외환'으로 비명을 지르고 있다. 창립 이래 최대 위기다. 중국 업체들의 저가 공세와 한국 정부의 무관심 속에 고사 직전에 몰렸다는 지적이다.

현대로템은 1999년 7월 현대모비스, 대우중공업, 한진중공업의 철도차량 사업 빅딜로 탄생한 국내 유일의 철도 차량 제작사다. 현대로템이 문을 닫으면 한국 철도 산업은 존폐의 기로로 내몰린다.

현대로템의 올해 3분기까지 해외 수주 규모는 800억원에 불과하다. 해외 수주가 절정에 달했던 2012년에 비해 3년 만에 20분의 1 수준으로 곤두박질쳤다. 올 해 3분기 영업 적자만 170억원. “이대로라면 무너지는 수 밖에 없다'는 비장함이 감돈다.

◆ 저가 공세로 세계 시장 싹쓸이 하는 중국

현대로템의 해외 수주가 급감한 이유는 저가 입찰로 신규 수주 시장을 독식하는 중국 업체와의 경쟁에서 밀렸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세계 철도 시장의 30%를 차지하는 중국 시장은 중국 업체들이 독점하고 있다. 중국에선 신규 프로젝트 입찰 참여 자격을 중국 합작 법인 회사로 제한하고 있다. 한국 업체는 물론 외국 업체들도 중국 철도 시장에 발을 딛지 못하고 있다.

중국 정부의 보호와 지원 아래 중국 철도 산업은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중국 철도 차량 제작사 양대 산맥인 CNR과 CSR은 2014년 말 중국중차(CRRC)로 합병, 연간 매출 21조원 규모 회사로 급성장했다.

자국 철도 산업을 육성한다는 명분으로 중국 정부가 두 회사를 합쳤다. CNR과 CSR은 2014년 매출 기준으로 세계 철도 시장의 35%를 차지한다. 합병 이후 덩치를 키운 CRRC의 점유율은 더 치솟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한다.

정동익 현대증권 애널리스트는 "현대로템이 중국 경쟁사의 엄청난 저가 입찰로 국제 철도 차량 수주전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시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로템 관계자는 "중국 기업들이 해외 입찰에서 한국 업체보다 20% 정도 싼 가격을 제시한다. 우리(현대로템)가 아무리 쥐어 짜도 중국 업체보다 5% 정도 비싸다"고 말했다.

국내 철도 업계 관계자는 "최근 해외 신규 입찰은 대부분 아시아 지역에서 이뤄진다. 중국 업체들이 싹쓸이한다. 일단 가격 차이가 엄청나 달리 손 쓸 방법이 없다"고 했다. 2014년 현대로템의 해외 시장 점유율은 1.4% 수준에 머물렀다.

중국의 저가 공세에 다른 나라들이 당하고 있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일본 정부는 11월 22일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에서 “아시아 철도 등 인프라 확충에 127조원을 내겠다”고 밝혔다. 자금 지원 조건에 자국 업체 참여를 내걸어 일본 업체들의 대규모 신규 물량을 확보했다.

미국은 철도 차량을 제작할 때 비용의 60%를 국산 자재로 쓰도록 하고 있다. 미국 자재 사용 의무화로 외국 업체의 진입을 차단하고 있다.

정하준 현대로템 국내영업 부장은 "프랑스는 해외 프로젝트를 수주하기 위해 외교력까지 동원한다. 우리도 국산 부품 사용 의무화 같은 제도적, 외교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동익 애널리스트는 "고속철도 부문에서 중국과 일본 업체들은 자국 정부의 지원을 바탕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반면 현대 로템은 실적이 없어 입찰 참가도 못한다"고 했다.

◆ “최저 입찰가 고집, 국내 시장서도 줄줄이 고배”

한국 시장에서도 현대로템은 밀리고 있다.

정부기관 발주부터 민간 투자 프로젝트까지, 한국 철도 입찰은 최저가 입찰 제도가 주류다. 국내 철도 차량 산업 규모는 5000억원 수준으로 세계 시장의 1%에 불과하다. 현대로템은 "한국서도 외국 업체에 밀린다. 수주 가뭄이 심각하다"고 말했다.

올해 2월 서울메트로 지하철 2호선 전동차 수주전이 대표적인 사례다. 서울메트로는 당시 입찰대행사인 조달청을 통해 전동차 200량 구매 입찰공고를 냈다. 발주가는 2530억원. 국내 철도 차량 발주 물량의 절반에 해당하는 대규모 사업이었다.

현대로템과 로윈-다윈시스 컨소시엄, 우진산전 등 3곳이 입찰에 참여했다. 최종 낙찰자는 로윈-다윈시스 컨소시엄이었다. 로윈-다윈시스 컨소시엄은 응찰가로 전동차 1량 당 10억5000만원을 제시했다. 현대로템은 12억원, 우진산전은 12억5000만원을 적어냈다. 두 번째로 낮은 가격을 제시한 현대로템은 탈락했다.

현대로템은 일본 기업에도 밀리고 있다. 2003년 인천공항공사 순환열차(IAT) 사업은 일본 미쓰비시가, 2008년 대구시 3호선 공사는 일본 히타치가 땄다.

현대로템 관계자는 "최저가 입찰에서 벗어나 해외처럼 기술력과 운영 실적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보는 종합평가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최근 노후 차량 사용 시한 규정을 삭제한 것도 현대로템 경영난을 가중시켰다. 정부는 올해 3월 도시철도법을 개정, 25년이던 철도 차량 수명을 무기한으로 연장했다.

한재관 현대로템 노조지회장은 "노후 차량 교체 지원금처럼 산업 보호를 위한 기본 장치도 너무 없다. 현재로선 살 길이 막막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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