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YS가 남긴 시대정신 박형준(국회사무총장)

2015. 11. 25.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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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준 국회사무총장·전 청와대 정무수석

역사는 인물로 자신의 메시지를 전한다. 한국 현대사는 김영삼·김대중·박정희라는 세 거인에 대한 기억으로 구성된다. 대한민국을 이끌어온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두 큰 에너지는 이들을 상징으로 삼아 활활 타올랐다.

YS는 실질적으로 민주화를 열어젖히고 되돌릴 수 없는 것으로 만든 장본인이다. ‘하나회 척결과 역사 바로 세우기’는 이 땅에 더 이상 군부 쿠테타는 없다는 확고한 선언이었다. 국가의 물리력에 의존한 권위주의적 발전국가 모델에서 자유와 민주주의에 기초한 민주적 발전국가 모델로의 전환, 즉 87년 체제는 문민정부에서 비로소 구현된다.

하지만 민주적 발전국가 모델로의 이행은 단선적이지 않았다. YS 집권 시기 세계사도 큰 구조적 변화가 있었다. 냉전 체제의 해체와 세계 경제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단선적인 국가 경영을 용인하지 않았다. YS는 국가경영에서 비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누구보다 잘 안 지도자다. 그는 뛰어난 인재들을 모았다. 그리고 비전을 만들었다. 5년 단임제 하에서 어떤 대통령보다 집권 후 국가 경영의 플랜을 잘 준비했다. ‘신한국 건설’ ‘세계화’ ‘정보화’의 비전은 그렇게 나왔다. 금융실명제 등을 전광석화처럼 할 수 있었던 것도 ‘비정상의 정상화’와 투명화 없이 신한국 건설이 어렵다는 인식에 터 잡은 것이었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인터넷 강국이 된 것도 YS 정부 시절에 정보화 비전에 입각해 정보통신부를 만들었고 유선전화망을 인터넷망으로 이용한 데 힘입은 것이다. 문민정부의 5.31 교육 개혁은 지금도 유효한 비전으로 자리잡고 있다. 지방자치 시대를 연 것도 문민정부다.

과감한 추진력과 주도적 리더십은 ‘YS 다움’의 표상이다. 그것은 민주화가 되긴 했지만 ‘대통령과 정부가 주도하는 발전국가의 속성’에 딱 맞는 리더십이었다. 역설적으로 외환위기는 이 모델에 내재한 위험을 폭로했다. 강력한 리더십은 삐끗하면 부메랑이 되어 그 책임을 고스란히 지도자가 덮어쓸 위험을 안는다. 생떽쥐베리의 어린 왕자의 고백대로 “어디선가 길을 잘못 들어섰다”고 깨닫는 순간은 언제나 늦게 온다. 힘으로 밀어붙인 노동개혁이 그랬다. 옳은 방향에도 불구하고 과정의 정당성 문제로 광범한 저항에 직면했다. 당황한 정부는 노동개혁 자체를 무효화 했다. 이것이 화를 더 키웠다. 국제적 신뢰를 추락시켰다. 그것이 방만한 부채 경영을 가져온 금융 자유화의 부작용과 함께 외환위기의 주된 요인이었다.

문민정부는 민주적 발전국가의 명암을 다 보여주었다. 문민정부가 남긴 교훈은 민주주의를 성숙시키면서 발전국가의 문제점을 해결하라는 것이었다. 특히 지역패권주의와 진영론에 입각한 적대 정치의 해소, 그리고 성장제일주의를 넘는 경제민주화와 삶의 질의 선진화 구현이 시대의 요구였다. 이를 위해선 제왕적 대통령제처럼 보이지만 무능한 대통령제가 되기 십상인 정치시스템부터 손봐야 한다. 그러나 아직 이 과제는 미완으로 남아 있다. 87년 체제를 극복하는 정치 구조 개혁 없이 대한민국의 새로운 도약은 꿈꾸기 어렵다.

YS는 시대정신을 읽는 촌철살인의 감각을 지닌 지도자다. 서거 이전 그가 남긴 통합과 화합이라는 메시지는 87년 체제를 넘는 시대정신을 오롯이 담고 있다. 상식과 합리가 통하게 하라! 지역 패권주의와 좌우 기득권을 타파하라! ‘공감 타협 숙의의 정치’를 열어라! 그 정언명령이다. 이를 위한 구조 개혁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이를 누가 해낼 것인가? 정치개혁을 통해 포용적 성장의 기반을 만들고 국민들의 자유와 삶의 질을 고루 높이는 일을 누가 할 것인가? 이는 말로 되지 않는다. YS가 그랬듯이 시대정신을 받들고 개혁을 위해 담대한 용기를 내는 사람들만이 할 수 있다. 허나 지금의 정치권에 그런 인물과 세력이 얼마나 있을까? 이게 잘 안 보여서 그를 보내는 오늘 그를 다시 그리워하고 재평가하게 되는 것이다.

박형준 국회 사무총장. 전 대통령실 정무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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