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영의 노벨상 이야기] 노벨상을 받으려면-2 연구소 벤치마킹

2015. 11. 24.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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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영 서울대 생명과학부교수

지난 11월 3일 이 칼럼에서 ‘노벨상을 받으려면‘이라는 제하의 글이 나가자 많은 반향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우리나라에서 노벨상이 나오려면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써달라는 요청이 많았다. 우리나라는 현재 견지망월(見指忘月)의 형국으로, 문제의 본질이나 핵심을 꿰뚫는 지원책보다는 지엽적 미봉책으로 대응하다 보니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것이다. 이번 기회에 향후 몇 차례는 생리의학이나 화학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낸 연구소와 수상자들의 행적을 분석하며 우리의 갈 길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무엇보다 먼저 정부나 과학계 모두가 인식해야 할 점은 돈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이미 상당한 규모의 예산을 기초과학에 쓰고 있지만 투자 대비 생산성이 너무 낮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영국 케임브리지에 있는 MRC ‘분자생물학실험실’(LMB)라는 연구소의 예를 들어보자. 이 기관은 1962년 이래 13명의 노벨 수상자를 배출했는데 그 중 한명은 노벨상을 두 번이나 받았다. 게다가 LMB에서 시작했거나 수행하던 연구를 갖고 다른 곳으로 가서 노벨상을 받게 된 사람도 십수명이 되니 가히 "노벨상 공장"이다. 이 곳의 정부 예산은 연간 약 600억원 정도이고, 책임연구원 60여명을 포함해서 약 600명의 직원들이 일하고 있다. 우리나라 정부출연 연구소와 비교했을 때 중간 정도 규모에 불과하다.

LMB가 개인 연구자에게 돈을 많이 주는 것도 아니다. 정부는 5년간의 예산을 정해 지원하고, 그 사용을 LMB에 일임한다. 소장은 4명의 연구부장들과 협의해서 60여명의 책임연구원에게 각각 3~4명 정도의 포스트닥, 3명 정도의 대학원생, 1명의 테크니션이 일할 수 있는 비용을 지원한다. 우리 기준으로 보면 책임연구원 당 연간 5~10억원 정도이다. 우리나라에서 이 정도 규모의 지원이 시작된 지 이미 십 수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노벨상을 낼만한 업적이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은 우리가 뭔가 잘못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LMB는 서로 관련성이 큰 4개 분야를 집중 연구한다. 당연히 연구자들은 서로 밀접하게 교류해야 할 이유가 있고, 공동연구시에는 시너지 효과도 크다. 대형 장비나 고가 기기를 공동으로 사용하므로 투자 및 공간 효율성도 높다. 반면 우리나라는 한 개 연구소나 학과에 수많은 분야의 전공자들이 있어 실험 인프라를 제각기 구축해야 하고 연구자 간에 소통해야 할 이유도 별로 없다. 결과적으로 투자 대비 생산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우리나라 연구소와 LMB의 중요한 차이점 중 하나는 기관장의 임기이다. LMB의 초대 소장이였던 페루스는 무려 17년을 일했고, 중도에 MRC와의 이견 충돌로 7년 만에 중도하차한 시드니 브레너를 빼면, 모두 10년씩 근무해서 52년 역사에 지금 소장이 5대째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임기가 3년이고, 연장된 경우는 거의 없고, 대통령 임명 과정에서 정부의 입김이 매우 강하다. 과학에서 3년 단위로 일할 수 있는 주제는 거의 없으니, 우리는 기관장이 중장기 계획을 만들고 그것을 집행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LMB의 모태는 1947년 케임브리지 대학 물리학과의 카벤디쉬 실험실에 설립된 맥스 페루스 분자생물학 연구팀이었다. 스스로 훌륭한 과학자였던 페루스는 창의적인 젊은이들을 모았고, 이들의 과학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 꽃을 피울 수 있도록 지원했다. 페루스가 뽑은 왓슨, 크릭, 브레너, 호지킨 등은 30대 전후의 젊은이들이었고 이들에게는 독립적 연구 권한이 부여되었다. 이 청년들은 추후 모두 노벨상을 받았다. 우리나라 같으면 페루스가 왓슨과 크릭의 업적을 자기 것으로 강요할 수도 있는 상황이였으나 그런 해프닝은 일어나지 않았다. 윤리적 지성의 단면이다.

1962년에 페루스의 연구팀은 프레드 생어, 아론 클루그의 연구실과 합쳐져 오늘의 LMB가 되었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현재도 LMB는 이미 유명해진 과학자보다는 30대 초반의 젊은 과학자들을 유치하는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기관장의 인재 선발 및 관리 능력, 젊은 과학자가 마음껏 기량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의 형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LMB에서 연구원 채용의 일차 기준은 후보자의 연구 주제가 생명과학에서 얼마나 중요하고, 도전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느냐이다. 매우 정성적인 방법이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셀', ’네이쳐‘, '사이언스’ 같은 학술지에 논문을 내면, 내용을 불문하고 무조건 교수나 연구원으로 뽑는다. 마치 명품 브랜드를 입으면 자동적으로 멋있어지는 줄로 착각하는 것과 같다. LMB에서는 일단 채용되면 좋은 학술지에 논문을 내라는 압력을 주지 않는다. 논문 발표와 특허 출원 실적을 점수화하여 기계적으로 계량 평가를 하는 우리나라에서는 상상하기도 어려운 운영 방식이다. LMB에서와 같은 과감한 인재 등용과 인사 정책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연구소의 지도층 자체가 전문성은 물론 거시적 차원에서의 과학적인 안목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 대학과 출연기관들의 잡화점식 운영 방식은 신임 교수가 성장하는 데도 큰 장애가 된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대학에서는 유망한 젊은 과학자를 뽑아놓고는 실험실 공간만 덩그러니 주고 기껏해야 1~2억 원 정도의 시작 예산을 준다. 학부는 잡화점처럼 수많은 전공자들로 이루어져 있어, 신임 교수와의 연계성이 적으니 이 젊은이는 자기 실험실을 제대로 차려보려고 3년 이상을 백방으로 뛰어다니면서 에너지를 소진하며 창의력과 경쟁력을 상실해간다. 결과적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출중한 인물을 데려와 범인(凡人)으로 만드는 경우가 적지 않게 일어난다.

LMB의 경우를 보면 우리의 갈 길은 명확하다. 먼저 과학적 능력과 안목이 있는 리더를 기용하고, 그가 최소 10년은 근무하면서 특정 분야를 집중 육성할 수 있도록 해주고, 최소한 5년 단위로 예산을 지원하고, 선진국 수준의 실험 인프라를 갖춰 주고, 논문 발표 실적에 의한 계량 평가보다는 연구주제의 과학적 가치를 가늠하는 정성평가 시스템을 인정해 주는 것이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 많은 예산이 필요한 것은 결코 아니다.

이와 같은 상식적 수준의 방안이 우리나라에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연구자들 자신의 부족한 과학적 안목을 들 수 있다. 미세 과학에는 강하지만 ‘big questions(큰 물음)'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이를 실천(즉 실험으로 증명)하는 데는 약한 것이 우리 과학계의 현주소이다. 이런 상황에서 연구자들은 미세한 주제를 가지고 치열한 연구비 확보 경쟁을 벌이다 보니 과학계는 상대방 깎아내리기, 권력에 줄대기, 심지어 음해와 투서로 사분오열된다. 이런 상황이 된 것에는 연구 성과를 유명 학술지 논문 발표 실적으로 계량화하는 현 정책도 큰 몫을 했다. 결과적으로 과학계의 분열과 혼란은 관의 개입을 정당화하게 되고 공무원이 과학계를 미세 관리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반면 공무원들은 2년도 한자리에 있지 않으며 자리를 옮기면서 대통령 보고와 언론 보도로 실적을 인정받으려 하니 연구환경은 더욱 왜곡된다. 게다가 과학계에서 1%도 안되는 탈선자를 감시하겠다고 감사원과 국회는 과다한 규제와 간섭을 일상화하고 있다. 당연히 우리나라의 R&D 체계는 모든 단계에서 불필요하게 복잡하고 비생산적인 구조를 가지게 되었다. 결국 과학의 모든 주체들이 구조적 악순환 속에서 방향감을 잃고 혼돈 속에 빠져 있다.

노벨상을 타보자는 국민의 열망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다. 돈은 조금만 있어도 된다. 기존의 사업만 조금 정리하고 조정해도 되니 신규 예산이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대학이나 연구소의 비뚤어진 위계질서가 젊은 과학자들의 열정을 방해하지 않도록 행정 지원만 해주고, 상식이 작동하는 환경만 만들어줘도 노벨상의 꿈은 성큼 현실로 다가올 것이다.

김선영 서울대 생명과학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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