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현주·전인철, 이래서 '터미널'..걸작 연극 9편

이재훈 2015. 11. 23. 06:34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서울=뉴시스】우현주, 연극 '터미널'
【서울=뉴시스】전인철, 연극 '터미널' 연출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연극 '터미널'은 영화 '러브 액추얼리'의 대학로 버전이라 할 만하다. 한국판 옴니버스 연극의 대표주자로, 2013년 터미널을 배경에 두고 인간들의 희로애락을 써 내려간 9편을 선보여 호평 받았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 젊은 작가들 모임인 '창작집단 독' 소속 작가 9명이 '터미널'이라는 공간을 아홉 개의 시선으로 조명했다.

재연 역시 마찬가지다. '소'(천정완), '전하지 못한 인사'(유희경), '러브 소 스위트'(김태형), '망각이 진화를 결정한다'(고재귀), '내가 이미 너였을 때'(박춘근), '환승'(임상미), '가족여행'(조인숙), '펭귄'(조정일), '거짓말'(김현우)이다. 각 20분 안팎의 작품으로 한 회에 4개 또는 5개 작품을 묶어서 공연한다.

지난 9편 모두 좋은 반응을 얻었는데, 이번에는 '소' '전하지 못한 인사' '러브 소 스위트' 등 세 편만 재연작이다. '소'는 한 사람이 일생에 할 수 있는 노동의 양을 넘어서면 소가 된다는 설정 아래 소가 돼버린 아버지를 우시장에 팔기 위해 모인 삼형제의 이야기다. '전하지 못한 인사'는 같은 과 친구 노라의 돌아가신 아버지를 꿈에서 만나 대신 작별인사를 건네며 예기치 못한 깨달음을 얻게 되는 영춘이 주인공이다. '러브 소 스위트'는 단 한번도 세상으로부터 따뜻한 사랑의 온기를 느껴보지 못한 채 30년 동안 아버지와 남동생의 뒷바라지를 해온 한 여자가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자신이 꿈꾸던 세상으로 떠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나머지 6편은 초연작이다. 초연에 이어 재연도 매만지는 전인철 연출은 "6편은 작가들이 원래 써놓은 연극이었다"며 "공연 결과가 나쁘지 않았음에도 작가들이 더 좋은 작품을 내놓고 싶다며 새로 썼다. 3편은 그 당시에 신작이었다"고 소개했다.

연극 '디너' '프로즌' 등으로 대학로에서 마니아층을 구축한 제작사인 극단 맨시어터의 대표이자 지난 공연에 이어 이번에도 작품에 출연하는 배우 우현주는 "작품이 좋은 평을 받았음에도 작가들 본인이 올드하다면서 새로 썼는데 좋은 작품이 나왔다"며 만족해했다.

2165년 미래의 우주선착장 대합실에서 사고로 인해 원치 않게 몸의 일부를 기계로 대체한 여자와 기술이 발전할 때마다 스스로 자신의 몸을 사이보그화시키는 것이 취미인 남자의 이야기인 '망각이 진화를 결정한다', 20대인 지연이 어느 지방의 한적한 버스터미널 대합실에서 만난 의문의 부인과 노파로 인해 일생일대의 갈림길에 놓이게 되는 '내가 이미 너였을 때'가 기대를 모은다.

자신의 수술비 때문에 감옥에 간 애인 진식을 기다리는 베트남 처녀 하용에게 그로부터 특별한 부탁을 받은 감방 동료 정구가 찾아오면서 시작되는 '환승',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야반도주를 하기 위해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인 가족 이야기인 '가족여행'도 볼 만하다.

한때 배우였지만 현재는 남극에서 요리를 하며 살아가는 석기가 우연히 펭귄을 연구하는 생태학자가 돼 나타난 같은 과 후배 미래를 만난 이야기인 '펭귄', 출퇴근을 위해 찾던 서울역에서 만나 6개월 동안 함께 저녁식사를 하며 가까워진 두 사람의 이야기인 '거짓말'도 눈길을 끈다.

창작 초연이 인기를 얻었던 이유에 대해 우현주와 전 연출은 "관객들이 공감할 거리가 많았다"고 입을 모았다. 우현주는 "초연 때 작가들과도 많이 싸웠는데…. 호호. 반신반의했다. 그런데 관객들이 각자 가져가는 부분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각자 제일 좋아한다는 에피소드가 다르고. 그 좋은 이유도 다 다르더라"고 알렸다. 또 "라이선스, 고전극과 받은 감동과는 다르러다. 동시대 창작극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됐다"고 덧붙였다.

전 연출 역시 마찬가지다. "희곡으로 봤을 때 사실 공감하지 못한 것들이 있다. 그래도 내가 보는 것만이 다가 아니구나라는 걸 때달은 거지. 우리가 어렵다고 생각했던 작품이 관객과 만났을 때 매력적인 에피소드가 될 수도 있더라"고 돌아봤다.

그는 작품의 매력에 대해 '터미널'이라는 공간 자체를 꼽았다. "사람들이 떠나가기도 하고, 없던 사람이 나타나기도 하고. 있던 사람이 사라지기도 하고 존재가 나타나기도 하고. 갑작스런 떠남과 만남, 일어날 수 있는 일들, 여러 사연들을 가진 공간이라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우현주는 "인천국제공항은 물론 전 연출과 배우들이 실제 터미널들을 다 답사했다"고 귀띔했다. 사실적인 부분이 배일 수밖에 없었던 까닭이다.

실험극을 많이 올리는 이태원 프로젝트 박스 시야에서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으로 공간을 옮긴다. 공연 공간 자체는 더 작아졌다. 게다가 객석을 양 측면에 만들고 그 사이에 배우가 연기할 수 있는 무대를 마련한다. 객석과 무대도 확연히 나눠지지 않는다.

전 연출은 "배우들 입장에서는 어려울 수있는데 관객들 입장에서 직접적으로 볼 수 있는 부분들이 많다"고 소개했다. 우현주는 "관객들이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기대했다.

출연진은 더 화려해졌다. 맨시어터 대표 배우들이 총출동한다. SBS TV '마을-아치아라의 비밀'에서 다채로운 감정 연기로 새삼 주목 받은 우현주가 '거짓말'에 출연하는 것을 비롯해 서정연(러브 소 스위트), 이명행(소), 김주완(소·전하지 못한 인사·러브 소 스위트), 이창훈(소·전하지 못한 인사·환승·가족여행), 이은(전하지 못한 인사·환승)이 '터미널'로 다시 관객들을 만난다.

김태훈(소·가족여행), 이석준(러브 소 스위트·망각이 진화를 결정한다), 정수영(망각이 진화를 결정한다·내가 이미 너였을 때), 김태근‘망각이 진화를 결정한다·거짓말), 박기덕(러브 소 스위트·환승·펭귄), 구도균(내가 이미 너였을 때·가족여행·펭귄), 권귀빈(내가 이미 너였을 때·펭귄), 안혜경(소·러브 소 스위트·가족여행)이 새로 합류한다.

전 연출은 "안 그래도 놀라운 배우들이 더 놀랐던 건 맨시어터 배우들은 연습 때도 실전처럼 연습한다는 것"이라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배우들은 끼가 많아 술 먹고 놀자고 하면 좋아하는데, 맨시어터 배우들은 놀면 불안해하고 더 연습을 하려고 한다. 그 에너지가 대단하다"며 만족스러워했다.

'터미널'이 특히 의미가 있는 점은 대학로에서 브랜드를 구축한 공연 제작사가 주목 받은 젊은 연출가, 실력 있는 배우들과 함께 신진 작가들의 작품을 한번에 소개한다는 것이다.

전 연출은 "대단히 이름을 알린 작가들은 아닌데 맨시어터를 만나면서 힘을 얻었다. 희곡을 잘 살리는 배우들의 역량이 잘 묻어난다"면서 "또 희곡이 배우들에게 새로운 개성을 만들어준 부분도 있다. 시너지 효과가 잘 발생한 협업"이라며 흡족해했다.

우현주 역시 "같이 윈윈한 좋은 프로젝트"라고 봤다. "맨시어터는 극단이라고 하지만 동호회 같다. 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닌 제작자나 연출이 대표가 아니라서 그런지 선후배 사이라 해도 수평적인 관계다. 극단 또는 제작사로서 앞으로 어떻게 나가야 할 지 고민을 많이 하는데 '터미널'처럼 시스템 안에서 연극계가 다양하게 공존해나가는 법을 찾는 것도 필요하다. 상업적인 것 자체를 목적으로 삼지 않는다. 연극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다른 곳에 적을 두다가도 좋은 프로젝트가 있으면 언제든 함께 협업하는 것이 좋다."

'목란언니' '순우삼촌'으로 호평을 받아온 전 연출가는 김광보, 고선웅 등 연극계를 대표하는 스타 연출가들이 아끼는 후배 중 한 명이기도 하다. 그는 새 연극 단체를 만들 준비를 하고 있는데 극단 맨시어터가 하나의 롤모델이라고 했다. "우현주 대표는 그릇이 웬만한 연출가나 대표보다 크다. 연극 단체를 하는데 있어서 많은 걸 생각하게 된다. '터미널' 또한 마찬가지다. 우 대표의 뚝심이 컸다." 25일부터 2016년 1월10일까지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 4만원. 맨시어터·컴퍼니그리다. 1544-1555

realpaper7@newsis.com

<저작권자ⓒ 공감언론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Copyright ©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