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남은 청와대 눈치 안보는 '검찰수장'이 될 수 있을까?

2015. 11. 21.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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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뉴스 AS]
‘쿠데타’를 ‘쿠데타’라고 말 못하는 검찰총장 후보자

“모든 골치 아픈 사건들이 다 검찰로 온다.”

지난해 말 정윤회씨 국정개입 의혹 사건과 관련한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한 검사가 한 말입니다. 정치권이 스스로 해결해야 할 갈등을 자꾸 검찰에게 떠넘긴다는 의미였습니다.

미국의 정치학자인 데이비드 이스턴은 “정치란 사회적 가치의 권위적 배분이다”라고 정의했습니다. 사회적 갈등은 보통 ‘어떤 가치를 누가 가지느냐’를 두고 벌어집니다. ‘권위’를 바탕으로 이같은 갈등을 해결하는 것은 정치의 몫이라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한국 정치가 권위와 문제해결 능력을 잃어버리면서 갈등은 극한 대립을 거쳐 고소·고발로 이어지는 것이 공식처럼 되어버렸습니다. 이 때문에 검찰과 법원에서 여러 사회적 갈등의 결론을 내리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이런 현상을 ‘정치의 사법화’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그 부정적 영향은 따로 말씀드리진 않겠습니다.

이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건 검찰의 정치적 중립입니다. 정치의 사법화가 심해지면서 검찰의 정치적 영향력이 점점 더 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검찰이 중립을 지키는 일이 예전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19일 국회에서는 새 검찰총장 후보자를 검증하는 인사청문회가 열렸습니다. 검찰총장의 임기는 2년입니다. 새 검찰총장의 임기 중에 총선이 열리고 대통령 선거가 시작됩니다. 어느때보다 정치권의 눈치를 보지 않는 검찰 수장이 필요할 때입니다. 이날 인사청문회의 주인공은 김수남(57) 대검찰청 차장검사였습니다. 김 후보자는 청문회 모두 발언에서 “수사의 공정성과 객관성은 검찰의 존재 이유이며 한치의 흔들림없이 지켜져야 한다. 검찰은 세상에서 가장 객관적인 기관이어야 한다는 가르침 잊지 않겠다. 검찰이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국민의 목소리를 명심하고 모든 사건을 법과 원칙에 따라 처리하겠다”라고 말했습니다. 구구절절 옳은 말입니다.

하지만 정작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나온 김 후보자의 답변을 듣다보니 고개가 갸웃거려졌습니다. 그 중에서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일으킨 5·16 군사정변과 관련한 대목이 가장 기억에 남았습니다. 김 후보자는 5·16 군사정변에 대한 견해를 묻는 서기호 정의당 의원의 질의에 ‘그 문제에 대해 개인적 견해를 밝히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했습니다.

서 의원은 “5·16을 쿠데타라고 말하지 못하는 것 자체가 대통령의 눈치를 보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김 후보자는 “제가 5·16에 대해서 개인적인 견해를 밝히지 못하는 것이 대통령의 눈치를 보는 것 때문에 말씀드리지 못한다는 취지로 말씀하셨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그런 취지로 말씀 드린 것이 아니다. 5·16에 대해서는 전문가인 교수, 역사학자들 사이에서도 여러가지 견해가, 논의가, 주장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 부분에 대해서 어떤 부분에 대해서는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다. 어떤 부분에서는 어떻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중립을 지켜야 하는 검찰총장의 직무를 수행하는 것에 지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저의 개인적인 견해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는 것이 오히려 바람직하다고 저는 그렇게 생각한다”라고 답변했습니다. 박근혜 정부 들어 인사청문회에 나선 여러 공직 후보자들의 ‘모범 답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대답이라 이 부분만 두고 보면 실망할 것도 없습니다. 실망스러운 것은 김 후보자가 인사청문회가 열리기 전에 국회에 제출한 서면답변과 다른 말을 했다는 것입니다.

전해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실은 김 후보자에게 “우리 교과서에는 5·16을 군사정변 또는 쿠데타로 정의 내리고 있는데, 이러한 역사적 평가에 대해 후보자는 동의하냐”는 질문을 서면으로 보냈습니다. 김 후보자는 “교과서에 군사정변이라고 표현되어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공감하는 바가 있습니다”라고 서면답변을 했습니다. 서면답변을 제출한 시점에서 인사청문회가 열린 19일까지 며칠 사이에 답변이 ‘군사정변이라는 표현에 공감한다’에서 ‘대답하기 적절치 않다’로 바뀐 것입니다.

역사의 수레바퀴가 거꾸로 돌아가는 시절이니 5·16에 대한 정치적 평가는 갈릴 수도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5·16은 사법제도 내에서 쿠데타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대법원이 2011년 6월 결정을 내린 보도연맹 사건과 관련된 손해배상 소송의 판결문을 보면 “1961년 5·16 쿠데타가 발생한 이후 5·16 군사혁명정부에 의해 피학살자 유족들이 특수범죄처벌에 관한 특별법 위반죄로 처벌받기도 하고”라고 적혀 있습니다. 헌법재판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2003년 8월 헌재의 공직선거법 관련 위헌 확인 심판 결정문을 보면 “5·16 쿠데타 이후인 1963년 1월16일 법률 제1256호로 폐지·제정된 국회의원 선거법”이라는 대목이 나옵니다. 대법원도 헌재도 모두 5·16을 쿠데타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 김 후보자는 “대법원 판결에서 그렇게 그 사실 이유에서 그렇게 표현한 것을 몇개 봤다. 그러나 그 부분에 대해서 대법원이 이것이 혁명이냐 쿠데타냐라고 명백하게 판시한 것은 아니다”라고 답변했습니다. 5·16과 관련한 여러 평가가 있다는 답변과 관련해 이춘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일본 극우파는 안중근 의사를 테러리스트로 폄훼한다. 안중근 의사에 대해서도 국제적으로 다양한 평가와 학설이 있을 수 있다.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자 김 후보자는 “우리나라에서 생각하는 거하고 일본에서 생각하는 거하고. 예.”라며 제대로 된 답변을 이어가지 못했습니다.

김 후보자는 “유신헌법 자체의, 위헌 여부에 대한 후보자의 견해”를 묻는 전해철 의원실의 서면질문에는 “유신헌법은 일부 조항이 권력분립 원칙에 어긋나며 기본권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등 헌법가치를 훼손한 측면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인사청문회에서는 이같은 질문이 나오지 않아 김 후보자의 답변을 들을 수는 없었습니다.

이밖에도 이날 김 후보자는 14일 열린 민중총궐기대회와 관련해서 여당 의원들이 대책을 주문하자 “제가 총장이 되면 시위용품을 적극적으로 압수수색해서 (폭력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방안이 있는지 검토”하겠다며 적극적으로 답변을 했습니다. 하지만 경찰의 공권력 남용과 관련해서는 “아직 사실관계가 드러나지 않았다”며 구체적인 답변을 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김 후보자는 오래전부터 청와대 의중에 맞는 수사를 해왔다는 의심을 받아왔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을 비판하는 글을 다음 아고라 게시판에 올린 박아무개씨를 구속한 ‘미네르바’ 사건입니다. 이밖에도 통합진보당 내란 음모 사건, 정윤회씨 국정개입 의혹 사건 등에서 김 후보자의 정치적 중립성과 관련한 논란이 일었습니다.

하지만 김 후보자의 모든 행적이 이같은 평가를 받는 것은 아닙니다. 김 후보자는 판사 시절이었던 1988년 6월18일 사법부 개혁을 촉구하는 판사들의 성명서에 이름을 올린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당시 노태우 정부가 제5공화국 인사인 김용철 대법원장을 유임시키려고 하자 이를 반대한 판사들이 집단행동을 한 것입니다. 성명서의 제목은 ‘새로운 대법원 구성에 즈음한 우리의 견해’였습니다. 서기호 의원은 김 후보자에게 “사법부 개혁을 촉구하는 성명서에 서명한 걸로 아는데 맞냐?”고 물었습니다. 김 후보자는 “그 부분에 대해서 너무 오래되어서 기억이 안났는데, 그 당시 보도를 보니까 그런 보도가 있더라. 맞을 것이다”라고 답변했습니다.

김 후보자는 1991년 경찰의 토끼몰이식 진압으로 숨진 김귀정씨 사망 사건에서 김씨가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사망했다는 사실을 밝히는 데 기여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 경찰은 김씨가 지병으로 숨졌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담당 검사였던 김 후보자가 부검을 고집해 경찰의 진압이 김씨의 사망 원인이라고 밝혀지는 데 기여했다고 합니다. 서 의원이 이와 관련해 “그때는 과잉진압으로 인정하지 않았나”라고 묻자 김 후보자는 “그 당시 과잉진압 여부에 대해서 그런 부분까지 판단했는지에 대해서는 하도 오래된 사건이라서 정확하게 기억에 없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소신있게 행동한 과거의 행적은 대부분 ‘기억이 나지 않는 일’이라고 답변한 셈입니다. 오래된 일이니 기억이 안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1988년과 1991년 당시 김 후보자가 가졌던 소신마저도 마음 속에서 지워버린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는 건 사실입니다. 소신 없이 정치적 중립을 지키기란 어려운 일이니 말입니다.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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