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호진이 말하는 '맞춤옷'과 '나이테'의 상관관계

김호진 김호진 <사진=MBC '화려한 유혹' 스틸이미지>

[스포츠조선 최보란 기자] 화창한 가을날, 인터뷰를 위해 마주한 배우 김호진은 상상 속 모습 그대로였다.

너무 높지도 낮지도 않은 목소리톤에 특유의 반달눈 미소, 차근차근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모습은 머릿속에 익숙한 김호진의 모습이다. 자상함 그 자체일 것 같은 이 배우가 최근 이목을 집중시키는 것은 그의 미소에서 예상치 못한 섬뜩함을 품었기 때문이다.

김호진은 MBC '화려한 유혹'에서 아내 강일주(차예련)을 향해 광적인 집착을 보이는 권무혁 역을 맡아 시청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일주 앞에 수줍은 미소와 함께 등장한 무혁을 봤을 때, 시청자들은 욕망으로 똘똘 뭉친 재벌가의 정략 결혼에 희생양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웬걸, 권무혁은 모두가 잠든 뒤 아내의 머리카락을 몰래 책갈피에 모아 놓는 기행으로 반전을 선사했다.

특히 무혁은 회가 갈수록 그 행동이 점점 예측할 수없는 수준으로 확장되면서 극의 긴장감을 높이고 있다. 최근에는 일주를 옛사랑 진형우(주상욱)의 죽음을 사주해 충격을 안기는 등 범상치 않은 등장인물들이 만연한 '화려한 유혹' 속 신스틸러로 독보적인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이제껏 없던 캐릭터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김상협 PD의 당찬 제안에 이끌렸다는 김호진은, 캐릭터의 반전에 배우로서 이미지에서 오는 반전까지 얹어 놀라운 시너지를 발휘하고 있다. 김호진은 그런 무혁이 강렬한 이미지로 소비되는데 그치지 않고, 극의 말미까지 힘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냉정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 김호진의 모습에, 앞으로 무혁이 보여줄 이야기들이 더욱 궁금해졌다.

-권무혁이 처음 등장할 때 상당히 젠틀하고 수줍은 모습이었다. 이런 기이한 면이 있는 캐릭터인줄 전혀 예상 못했다.

▶처음 시놉시스를 받았을 때 권무혁에 대해 단면적으로만 써 있었다. 그런데 김상협 PD가 말하길 어느 나라 드라마건, 혹은 우리나라 장르에서건 시청자들이 보지 못한 캐릭터를 만들어 보고 싶다고 하더라. 연출의 말이 있었기에 기대가 됐다. (반전을 위해) 처음에는 숨어 있었으면 좋겠다고 얘기를 하더라. 나중에 권무혁 역할의 강렬함이 있기 때문에 초반에는 감췄다가 터뜨려야 한다고. 그래서 극 초반에는 조용하게 등장한 것 같다.

김호진 김호진 <사진=MBC '화려한 유혹' 스틸이미지>

-'내딸 금사월'에서 보여준 금원장의 여운 때문에 더 반전으로 다가왔다.

▶캐릭터 간에 시너지가 있는 것 같다. 김상협 PD는 김호진이라는 배우가 갖고 있는 장점과 단점을 권무혁이라는 역할을 통해 터뜨려보고 싶었던 것 같다. '내 딸 금사월'의 금원장 역할 자체는 제가 기존에 갖고 있는 이미지와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착한 금원장의 이미지가 식지 않은 상태에서 권무혁이 나오니까 반전이 된 것 같다. 오히려 잘 된 것 같다.

-지금껏 보여주지 않았던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느껴지는 희열 같은게 있나.

▶연기할 때 희열보다는 주위 반응에서 희열이 느껴지는 게 있다. 연기할 때는 거기에만 집중하는 편이다. 무혁이라는 역할 자체가 워낙 인상이 강해서. 긴 호흡의 드라마 안에서 어떻게 이 임팩트 있는 모습을 파워있게 끌고 가느냐가 과제다. 힘이 쌓여서 폭발했다가, 또 서서히 힘을 쌓아서 다시 폭발시키는 그런 흐름을 조절하느라, 연기적으로 희열을 느끼긴 어려웠다.

-김상협 PD의 제안에 끌린 것을 보면, 내심 연기 변신에 대한 갈증이 있었던걸까.

▶배우는 누구나 다른 캐릭터에 대한 욕심이 있다. 변화하고 싶어하고. 관객들은 그 배우의 가장 큰 이미지만 기억 하는 것 같다. 그 외 캐릭터는 잊혀지기도 하고, 새로운 도전을 했던 작품이 생각만큼 반응을 얻지 못해서 그런 경우도 있다. 이번에 무혁이 화제가 된 것은 연출이 배우를 잘 알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나를 잘 몰랐던 PD였다면 무혁이 기존의 사이코패스 캐릭터에서 크게 못 벗어났을 것 같다. 오히려 나를 잘 알아서 이제껏 없었던 캐릭터가 나오지 않았나 싶다.

-주변 반응에서 희열을 느꼈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반응이었는지 궁금하다.

▶어린 동생들은 장난삼아 '무섭다'고 하고, 지인들은 '새로운 모습이 좋다'고들 한다. 근데 나보다 연배가 있는 지인들은 '너한테 그런 모습이 원래 있었다'고 하더라. 무혁이라는 캐릭터에서 가장 심혈을 기울였던 부분은 어떤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거나 사이코패스라기 보다는, 보통의 남자 혹은 아무것도 아쉬울 것 없는 사람이 뭔가에 집착했을 때 보여지는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 근래에 연인이 헤어지자고 했다고 범죄를 저질렀다는 뉴스가 충격적이었는데, 이번 작품을 하면서 그런 뉴스들이 생각났다. 어떻게 보면 우리 주변에 평범했던 사람들이었을텐데, 비뚤어진 집착으로 인해 그런 행동이 초래된 게 아닐까. 그런 집착을 무혁이 캐릭터에 반영해 보고 싶었다.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 볼 아내 김지호의 반응은?

▶'이번에 무섭기도 하고 세게 나오는 것 같은데, 보여줄 때 확 보여주라'는 말을 하더라. 서로 일 얘기를 많이 하지는 않는데, 보게 되면 처음에 장르나 캐릭터 설정을 어떻게 가면 좋겠다는 얘기를 해 준다.

김호진 김호진 <사진=MBC '화려한 유혹' 스틸이미지>

-무혁의 기이한 행동들의 이유는 뭘까. 연기하면서 나름대로 생각한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일주를 너무 사랑하니까. 지금도 연기를 하면서, 전제는 '사랑'이다. 무혁의 행동들은 집착을 넘어 일주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이다. '넌 내 여자여야만 해' 그런 감정선으로 가려고 한다.

-일주에게도 무혁의 본색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앞으로 무혁이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다.

▶한 가지 힌트를 주자면 일주의 복수가 시작된다. 그런데 이용할 수 있는 게 뭘까. 무혁이 옆에 있지않나. 차츰 무혁이의 다양한 모습이 나올 것 같다.

-주말극과 일일극에서 활동하다 오랜만에 월화극으로 만났다. 좀 달라진 점이 있나.

▶김상협 PD한테 말을 한 적이 있는데, 이렇게 무혁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좋고 관심이 쏠리면 자칫 캐릭터가 극단적으로 갈 수도 있다. 막 가는 캐릭터로 변할 위험이 있다. PD한테 '너무 빠를지 모르지만,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무혁이가 더 강하게 가다보면 망가질 수 있으니까 수위를 조절해서 끝까지 임팩트 있게 가려면 조절이 필요하다'고 얘기를 했다. 내가 캐릭터에 빠져서 연기가 어느 순간 힘이 들어가기 시작하면 아마 시청자들이 보기 힘든 역할이 될 수도 있다.

그런 부분들에 있어서, 오랜만에 월화극 하는 기분은 더더욱 새로이 공부하는 것 같다. 역할 자체가 조금 독특하고 임팩트 있다는 것은 알았다. '내딸 금사월' 때문이든, 그간 내가 갖고 있던 이미지 때문이든, 이미 시너지는 나왔기 때문에 여기서 잘 해야하는 포인트라고 여겨진다. 공부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연기하기 쉬운 캐릭터는 아닌 듯하다.

▶'독일인의 사랑'이라는 책에 일주의 머리카락을 수집하는 장면이 굉장히 강한 신이었다. 무혁이 그런 식으로 변태적인 행위를 많이 할 수도 있는데, 다 없애고 찍었다. 어떤 신은 살리고 줄이고, 그렇게 하나 하나 맞춰나가는 게 어렵더라. 일주 폭행신도 대사 수위를 많이 조절했다. 근데 오히려 그게 더 강했던 것 같다. 무혁의 연기에서 어려움을 느끼는 것은, 기존 드라마나 영화에서 많이 나왔던 인물이면서도 차별화를 둬야 하기 때문이다. 대중의 기억 속에 사이코적인 캐릭터가 많이 남았기 때문에 그런 인물처럼 연기하지 않으려 늘 경계하고 있다.

-가장 연기하기 어려웠던 장면은?

▶매번 감정을 조절하는 게 어렵다. 표정 하나 더 따르면 넘치니까, 적정점을 찾으려고 애쓴다. 넘쳤을 경우에는 겉잡을 수 없다. 그런 것을 신경 쓰면서 찍다보니 매 장면이 어렵다. 무혁이가 편한 신은 별로 없다.-그런 무혁이 의외로 약간 허술한 면도 있는 듯 싶다. 행동들을 보면 아주 치밀하지는 않은데.

▶계산하지 않고 감성적인 인물이기 때문이다. 뭔가를 의도해서 행동을 취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감정이 조절이 안 돼서 나오는 행동들이다보니 허술해 보일 수도 있을 것 같다. 무혁을 연기할 때 머리로 계산하기 보다는 감정선을 따라가는 편이다. 순진해 보이는 신에서는 더욱 순진해 보이게, 감정을 많이 보여주려고 하고 있다.

-무혁이 많은 열쇠를 쥐고 있는 것 같은데, '화려한 유혹' 앞으로의 관전 포인트를 짚어 준다면?

▶무혁이를 한쪽 면으로 몰아서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무혁은 부족한 것도 없고, 공부도 할 만큼 했고, 사회적인 지위까지 다 갖춰진 인물이다. 단면적인 성격으로 인해 변하는 인물이 아니라, 몰랐던 집착이나 사랑이 그를 극단으로 몰아간다. 그것으로 인해 어떤 결과가 초래되는지 지켜보시는게 재미있을 것 같다. 과연 이 사랑의 끝은 어떻게 될 것인가, 집착하고 정신병적인 그의 사랑이 어떻게 마무리 될지 저도 궁금하다.

-차예련과 15살 차이가 난다. 그럼에도 위화감이 없는데, 관리법이라도 있나?

▶손지창 오연수 부부가 저와 차예련을 둘 다 아는 지인이다. 차예련과 부부로 나온다고 했더니 연수 씨가 '오빠 미친 것 아냐? 어떻게 차예련이랑 부부로 나올 수 있어?'라고 하더라. 하하. 관리라고 한다면... 특별히 집중적으로 관리하는 것은 아니지만 피부과 한 달에 두 번 정도 가는 정도. 와이프 화장품 훔쳐쓰기? 하하.

김호진 김호진 <사진=MBC '화려한 유혹' 스틸이미지>

-이번에 무혁 캐릭터에 대한 애착이 강한 것 같다. 기존에 젠틀하고 선한 캐릭터를 주로 했는데. 이미지 고착에 대한 스트레스는 없었나?

▶전혀 없었다. 연기를 시작한지 얼마 안 됐으면 이미지가 굳어지는 것이 두려웠을지도. 하지만 지금은 이미 저만의 굳어진 이미지가 있었기 때문에, 어떤 새로운 이미지가 들어와도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을 것 같다. 사실 '노란 손수건'에서 악한 역할도 해 봤는데 사람들은 결국 기억하고 싶은 이미지로 기억을 하더라. 오히려 '내가 잘 할 수 있는 역할 하나 있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생각했다. 그런게 또 쌓이니까 권무혁이 더 살아나는 효과도 생기더라. 오히려 고착된 이미지를 갖고 있다가 틀어졌을 때 생기는 시너지가 큰 게 아닌가 싶다.

-김호진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중 또 하나가 요리다. '원조 요섹남'이기도 한데.

▶권무혁 얘기를 할 때 나랑 비슷한 부분을 생각해 봤다. 무혁의 키워드 중 하나가 '집착'인데, 내가 뭔가에 집착한게 있을까 생각해 보니까 요리가 있더라. 슬럼프가 있을 때 돌파구로 삼았던 게 요리였다. 그때 요리에 집착했던 것 같다. 이런 면이 나한테도 있구나 느꼈고, 그때를 생각하니 '무혁의 감정이 이런 식으로 표출이 될 수도 있겠다' 하고 생각했다. 하나의 단면이지만, 그런 연결 부분을 찾으니 재미있었다.

-요리 예능 제안도 많이 들어왔을 것 같은데.

▶일단 MBC '맛있는 TV' 진행을 하고 있고, 또 막상 붐이 이니까 같이 휩쓸리고 싶지는 않더라. 어쨌든 배우로서 끝까지 연기를 하고 싶기 때문에, 요리 프로그램을 굳이 더 하고픈 생각은 없다. 근데 이러다 '맛있는 TV' 잘리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웃는 모습이 호감이었는데 비호감이 될 수도 있는 위험한 시기인 것 같다.(웃음)

-슬럼프나 배우의 사이클 때문에 힘겨운 시기가 있었나.

▶후배들한테 늘 이야기 하는 게, 그런데(배우로서 사이클) 연연하지 말고 놀면서 보내라고 한다. 어릴 때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좋은 역할을 많이 하고 그럴 때, 표현하는데 한계가 분명히 있었던 것 같다. 오랜기간이 지나면서 연기자로서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저만의 나이테가 생겨 있는 상황에서 권무혁은 완전히 다르다. 지금은 역할 하나 하나를 대하는 느낌이 예전하고는 다르다. 그때 연기도 재미있지만, 지금은 연기의 참맛을 알아가는 나이랄까. 그런 반면 들어오는 역할을 줄어든다. 그런게 오히려 제 나이 때는 슬럼프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노하우도 생기고 살면서 겪은 경험도 쌓이는데, 표현할 수 있는 기회는 줄어드는 것. 그런데서 오는 배우의 좌절감이 있는 것 같다.

-배우로서 미래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고 있는 것 같다.

▶지금 바라는 것은 배우로서 김호진으로서 매력을 잃지 않는 것. 연륜과 함께 나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것이 배우로서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 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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