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사랑 예산' 234배나 올려달라고?

2015. 11. 11.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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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보훈처, 올해 26억원서 6087억원으로 증액 요구… 기재부서 100억원으로 삭감

“이 예산만큼은 절대로 안 돼!”

국회에서 매년 예산안이 통과될 때마다 야당 측에서 벼르는 예산이 있다. 그래서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예결위)의 여야 합의를 어렵게 만드는 이 예산은 여야 간에 ‘지뢰’로 여겨진다. 올해 국회 예산안 통과의 최대 지뢰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예산이다. 하지만 여야가 교과서 국정화 예산에서만 전선을 형성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예산 외에도 여야가 첨예하게 맞서고 있는 쟁점예산이 각 상임위에서 등장하고 있다. 이런 쟁점예산은 예결위에 넘어가기 전 이미 상임위에서 한바탕 일전을 치렀다.

가장 대표적인 예산은 국회 정무위에서 보류된 채 그냥 예결위로 넘겨버린 국가보훈처의 ‘나라사랑정신 계승발전’ 예산이다. 정부 예산안으로는 100억원이 배정돼 있다. 이 예산은 올해 26억원에서 73억원(282.7%)이 증액됐다. 강기정 의원 등 야당 의원들은 전액 삭감 또는 올해 예산 수준이 적정하다고 주장했다. 여당 의원들은 정부안대로 100억원 예산을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이 사업은 나라사랑교육 및 선양사업을 통해 건전한 안보의식과 국가관 확립, 올바른 역사의식 함양을 꾀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국가보훈처는 5·18 기념식 때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이 아닌 합창방식으로 부르기로 결정하면서 박근혜 정부 들어 야당의 거센 비판을 받아 왔다. 야당 의원들은 이 사업이 이념적 편향성과 함께 사실상의 선거개입이 있었다는 지적을 받았다며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다. 게다가 다가오는 내년 총선에 이 논란을 증폭시킬 우려가 있으므로 삭감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야당 의원 “총선 앞두고 무지막지한 요구”

국회 정무위 예산결산소위 자료에 따르면 이 나라사랑 예산은 국가보훈처에서 정부에 요구한 1차 요구안에서는 무려 6087억원이었던 것으로 나타나 있다. 1차 요구안(6087억원)과 정부안(100억원)에서 가장 차이가 많이 나는 세부 항목은 ‘호국보훈 전담교사 운영’이다. 올해 예산에는 없던 새로운 항목이었다. 1차 요구안에 3422억원을 요구했으나 정부안에서는 한 푼도 반영되지 않았다. 이밖에도 크게 삭감된 예산으로는 ‘청소년 보훈캠프’ 예산이 있다. 1차 요구안의 360억원에서 정부안에는 5억원으로 대폭 감액됐다. ‘태극기와 함께 하는 나라사랑 캠페인’ 예산은 1차 요구안이 164억원이었으나 4억원으로 감액됐다. 감액 수준을 보면 정부에서조차 이 예산이 터무니없다고 평가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국회 정무위 강기정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은 “정부 재정상태가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올해 26억원에서 6087억원으로 증액을 요구했다는 자체가 이례적이고 비정상적”이라고 주장했다. 강 의원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이런 이념 편향적 예산을 대폭 증액해달라고 요구한 것은 예산 심의권을 가진 국회를 욕보이는 행위”라고 말했다. 국회 정무위의 한 야당 관계자는 “일부 여당 의원은 정부안이 1차 요구안에서 대폭 깎였으므로 국회가 (정부 원안에서) 한 푼도 깎아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며 “나라를 사랑하자는 명분을 내세워 6000여억원이라는 무지막지한 예산을 요구했다는 사실 자체가 기가 막힐 뿐”이라고 말했다. 정무위는 여야가 팽팽히 맞선 나라사랑 예산 때문에 국가보훈처 예산안은 따로 떼어서 심의한다는 결정을 내린 채 나머지 예산만 예결위로 넘겼다. 강 의원은 “국회가 정상화되더라도 정무위에서 여야가 나라사랑 예산을 합의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면서 “예결위에서 우리 당(새정치민주연합)의 입장을 정해 올해 증액분이 반드시 삭감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형 전투기 사업(KF-X) 예산 역시 상임위에서부터 논란이 된 쟁점예산이다. 정부 원안으로 670억원의 예산이 국회로 넘어왔다. 당초 방위사업청은 정부에 1618억원을 요구했으나 정부 원안에는 670억원으로 조정됐다.

이 사업은 개발비가 8조원대에 달하는 사업이다. 국방위 한 야당 관계자는 “(정상적으로 사업이 진행되면) 국가 예산으로는 개발비로 약 5조4000억원이 들어갈 것”이라고 추산했다.

이 예산은 사업 자체에 의문부호가 붙었다. 원래 방사청은 미국이 록히드마틴사로부터 전투기 도입을 계약하면서 KF-X 사업에 필요한 핵심 기술을 이전받는다고 밝혔으나 미 정부의 반대로 핵심 기술은 이전이 불가능하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자체 기술만으로 차세대 전투기 개발이 가능할 것인지가 논란거리로 등장했다. 야당 의원들뿐만 아니라 여당 의원인 정두언 위원장과 유승민 의원도 이 사업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보였다. 국방위는 10월 30일 정부 원안을 통과시키되 국방위가 추가적으로 논의한 후 예결위에 반영한다는 부대조건을 달았다. 11월 17일에 공청회를 연 후 국방위는 이 사업 예산에 대한 최종 입장을 밝힐 계획이다. 김재경 국회 예결위원장이 11월 1일 기자 간담회에서 670억원보다 증액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또다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국방위 야당 관계자는 “이 사업의 예산은 증액과 감액의 문제가 아니라 이 사업 자체가 타당하냐는 것을 밝히는 것이 우선”이라면서 “결국 공청회를 통해 국방위의 결론을 예결위에 통보하는 과정을 밟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여야, 교과서 국정화·KF-X 예산도 논란

보건복지위에서는 여야 간에 ‘TK 예산’ 논란 등이 벌어져 11월 6일 현재 예산안을 예결위에 넘기지 못한 상태다. 논란이 된 내년 예산은 의료기술시험훈련원 구축에 드는 20억원(총사업비 989억원)과 K-메디컬(외국의료인력통합연수센터) 건립에 들어가는 20억원(총사업비 323억원)이다. 여기에 대구임상시험센터 건축비로 들어가는 8억3000만원이 여야간에 공방을 벌이는 예산이 됐다. 이 대구 관련 예산은 ‘최경환 예산’ ‘대통령 예산’으로 불리면서 쟁점예산으로 대두됐다. 야당 관계자는 “이 시설들이 굳이 대구에 들어서야 하는지 충분한 설명이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복지위 대구지역 의원인 이종진 의원(새누리당) 측은 억울하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이 의원 측은 “신규사업이지만 오래전부터 대구시에서 추진해 왔고, 대구경북첨단의료복합단지에 적합한 사업을 신청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오송첨단의료복합단지에서도 신청한 사업이 있지만 정부가 사업 적정규모와 환경을 고려한 끝에 대구지역에 예산을 배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농해수위에서는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의 활동기간 연장을 놓고 예산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특조위에서는 내년 12월까지 활동 예산을 요구했으나 정부에서는 내년 6월까지를 활동기한으로 보고 예산을 축소 편성했다. 농해수위의 한 야당 관계자는 “논란이 있지만 법안소위에서 활동기간을 연장하는 법안이 통과되면 예산에 반영한다는 부대의견을 달아 농해수위에서 예결위에 넘기지 않을까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누리과정(만 3~5세 무상보육) 예산과 정부기관의 특수활동비 예산도 예결위에서 여야간 혈전을 벌이는 쟁점예산이 될 것으로 보인다. 예결위의 한 야당 관계자는 “현재 (각 상임위의 야당 의원실로부터) 감액 의견을 받고 있다”면서 “이 감액 의견을 반영해 문제가 되는 예산은 철저히 감액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예결위 이철우 의원(새누리당)은 “상임위 자체에서 감액된 예산은 예결위에서 다시 증액할 수는 없는 게 원칙”이라면서 “정부 원안대로 통과시키려면 상임위에서 감액되지 않고 예결위로 올라와야 한다”고 말했다.

<윤호우 선임기자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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