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무너질 때
태양의 서커스 ‘퀴담’에서 소녀(가운데)가 환상의 세계로 접어드는 장면. 마스트엔터테인먼트 제공 |
꿈이란 게 파문이 인 잠재의식의 웅덩이에 비친 복잡한 현실의 자화상이라면, 아이들의 공상은 이해하기 힘든 어른들의 논리 세계를 비춘 거울 아닐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눈물의 연못이며 담배 피우는 애벌레, 가발 쓴 두꺼비와 트럼프 나라, 이상한 재판…. 비슷한 거 이쪽 세계 어디서도 본 것 같지 않아? 어른들의 이해하지 못할 세계를 움직이는 이해하지 못할 룰에 의해 자신이 내동댕이쳐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아이들의 기괴하거나 신비한 공상을 부르는 건 아닌지.
영화 ‘판의 미로’ 속 오필리아는 전란과 모친의 불안한 상황에서 미로를 맞닥뜨리고, ‘더 폴: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의 로이와 알렉산드리아는 숨 막히는 병원 안에서 상상의 세계로 들어간다.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속 제제도 어른들의….
태양의 서커스의 쇼 ‘퀴담’을 봤다. 자신과 놀아주지 않는 엄마 아빠에게 실망한 소녀는 어느 천둥 번개 치는 날, 얼굴 없는 불청객 ‘퀴담’이 건넨 모자를 쓴 뒤 환상의 세계에 빠진다.
라이브로 연주되는 아름다운 음악에 매혹됐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무너질 때 나오는 웅장한 ‘Atmadja’와 그 변주 ‘R´eveil’, 소녀가 부르는 ‘Marelle’과 ‘Seisouso’, 그리고 ‘Let Me Fall’…. 슬픔이란 수동적 정서를 담은 단조의 비가(悲歌)가 활동적이고 화려한 서커스와 부딪쳐 내는 감성적 낙차들. 아찔했다.
아이유의 신곡 ‘제제’의 노랫말이 소설 속 아동을 성적 대상으로 삼았다는(‘Climb up me… 하나뿐인 꽃을 꺾어가…’) 비판, 그리고 반론이 요즘 맞선다. 아이유는 ‘너랑 나’(2011년) ‘분홍신’(2013년)부터 줄곧 잔혹동화(또는 어른들의 동화) 콘셉트를 이어왔다. 그의 이미지와 가요계 입지를 고려할 때 그건 아이유와 제작진의 영리한 선택이기도 하다.
신작 타이틀곡 ‘스물셋’에서 그는 스스로를 ‘한 떨기 스물셋’으로 부른다. 여가수의 불순하거나 순수한 공상은 이상한 현실세계의 반영(反影)일까. 주인공은 오늘 그 미로 속을 헤맨다. 때로 방황은 서커스 같다.
‘…덜 자란 척해도 대충 속아줘요…아냐 사실은 때려 치고 싶어요/아, 알겠어요. 나는 사랑이 하고 싶어/아니, 돈이나 많이 벌래/맞혀봐. 어느 쪽이게?…’(‘스물셋’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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