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예쁜 소리만 음악이란 법 있나

2015. 11. 2. 0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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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1일 일요일 맑음. 폴리 룸.#181 Colin Vallon Trio 'Goodbye'(2014년)
[동아일보]
10월 30일 서울 이태원 스트라디움에서 공연한 콜랭 발롱 트리오. 안웅철 제공
사운드 디자이너를 꿈꾼 적 있다.

‘패션 감각은 별로니까 사운드로라도 디자이너…’라기보다는, ‘위대한 선율을 쓰는 음악가가 될 자신이 없으니까 그래도 좀 있어 보이는 사운드 디자이너…’란 생각도 솔직히 있었다.

그때 브라질 음악가 아몽 토빙(Amon Tobin)에 푹 빠져서다. 토빙은 오래된 재즈나 블루스 LP판에서 채취한 소리를 첨단 디지털 기술로 변형해 빠르고 복잡한 패턴을 만들어냈다. 2007년 6집에서 그는 새 도전을 했는데 음반 제목 ‘Foley Room’은 영화 효과음 녹음 스튜디오를 가리키는 말. 토빙은 이미 녹음된 소리를 짜깁는 대신 스튜디오 안에서 갖가지 소리를 직접 만들어 변용했다. 포일 접시 구기는 소리, 첼로 현을 비정상적으로 긁는 소리…. 천체관측소를 찾아가 전파망원경이 회전하며 내는 소리까지 담았다.

얼마 전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의 효과음 제작 과정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봤다. 현실 세계엔 존재하지 않는 음향, 이를테면 기억이 저장된 구슬이 뇌의 기억 저장소로 굴러오는 소리 같은 걸 어떻게 만들어내는가에 관한. 스튜디오 안에서 컵 주둥이를 바이올린 활로 ‘쉬이이잉!’ 켜거나 물건을 ‘통!’ 떨어뜨려 나는 소리들을 채취한 뒤 이를 다른 것과 합성하거나 변형해 재미난 음향들을 만들어냈다.

지난주 서울 종로구의 오디오가이 스튜디오에서 열린 스위스의 콜랭 발롱 트리오 내한 공연도 폴리 룸을 연상시켰다. 변박과 폴리리듬의 혼재, 전자음악의 영향을 받은 단속적이고 낙차 큰 악곡 구조는 라디오헤드가 꾸는 재즈 트리오의 꿈 같았다. 브래드 피트의 덜 잘생긴 막냇동생 같은 얼굴의 리더 발롱의 연주도 대단했지만 드러머 줄리언 사토리우스의 분투는 눈, 귀를 사로잡았다. 그는 스네어 위에 심벌을 올려놓고 손으로 잔향을 조절하며 두드렸고, 일반적인 드럼 스틱부터 클래식 타악용 말렛, 실로폰 채, 나무젓가락까지 연상시키는 다양한 채를 번갈아 들었다. 때로 그가 전자음악으로나 가능할 법한 소리를 만들 때 관객 몇몇은 일어나 까치발을 들고 지켜보기도 했다.

예쁜 피아노 소리, 목소리만 음악이란 법 있나. 두드리고 긁히고 스치고 깨지는 세상 모든 일이 우주의 시간이라는 ‘폴리 룸’에서 만들어지는 시답잖은, 또는 매우 중대한 악절들인지 모른다. 거기서 일하는 나라는 사운드 디자이너님은 내일도 아마 끝내주는 소리를 만들고 말 거다. 이를테면,와장창!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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