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만5000년 前 구석기人 얼굴, 단양서 찾았다

허윤희 기자 2015. 11. 2.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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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만5000년전 그가 웃는다, 씨익~] 수양개 유적서 돌 조각 발견 단양서 손톱크기 얼굴조각.. 세계 最古 '돌얼굴' 가능성 도톰한 입술에 가느다란 눈, 한눈에 봐도 귀여운 얼굴.. 지난해 발견 눈금돌과는 '형제 유물' 美 교수 "체코의 상아 얼굴도 2만6000년전 것.. 매우 놀랍다"

둥근 턱선에 가느다란 눈 두 개, 도톰한 입술.

3만5000년 전 충북 단양에 살던 후기 구석기인이 어른 엄지손톱만 한 돌에 새긴 얼굴 모양 조각이 발견됐다. 한국선사문화연구원(원장 우종윤)은 "충북 단양군 적성면 남한강가에 있는 후기 구석기 유적인 수양개 6지구에서 지난해 출토된 유물을 정리하던 중 지난 8월 얼굴 모양(크기 2.29×1.57㎝, 무게 1.66g) 돌 조각을 발견했다"며 "지난해 같은 층에서 발견된 '눈금 새긴 돌'과 함께 발굴 유례가 없는 희귀 유물"이라고 1일 밝혔다. 학계의 공인을 받게 되면 인류가 사람 얼굴을 돌에 새긴 가장 오래된 것이라 후기 구석기 연구에 도움을 줄 획기적인 유물로 보인다.

지난 8월 충북 청주에 있는 한국선사문화연구원 연구실. 수양개 6지구에서 출토된 작은 돌날들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던 이경우 연구원이 소리쳤다. "어, 이거 사람 얼굴 같은데?"

한국표준과학연구원으로 유물을 옮겨 특수 장비로 분석했더니 또렷하게 보였다. 둥근 얼굴 선 안에 두 눈과 도톰한 입술이 새겨져 있었다. 이 연구원은 "오른쪽 위에는 이마처럼 부드러운 선이 있고 둥근 턱선이 보인다. 석기를 제작하던 중 몸돌에서 떨어져 생긴 파편에 자연적으로 생긴 둥근 선을 얼굴 형태로 활용해 끝이 뾰족한 도구인 새기개를 이용해 돌을 긁어서 눈과 입을 인위적으로 표현한 흔적"이라고 했다.

이경우 연구원은 "제작자가 자신의 주제를 표현하기 좋은 조건을 지닌 소재를 취사선택했다는 증거"라며 "특히 입술 중 인중이 파이고 양옆에 솟아 있는 봉우리를 표현한 것은 이전의 구석기 예술품에선 찾아볼 수 없는 사실적 표현 방법"이라고 했다. 단양 수양개 유적은 1980년 7월 충북대 박물관팀에 의해 발견된 국내 후기 구석기 유적이다. 수양개 6지구는 지난해 눈금을 새긴 돌이 발견돼 화제가 됐다. 당시 한국선사문화연구원은 "수양개 6지구에서 주먹도끼·찍개·긁개·찌르개 등 후기 구석기 유물 1만5000여점이 대거 출토됐다"며 "특히 가장 아래층인 3문화층에서 눈금을 새긴 돌 제품이 발견됐다"고 했다. 길쭉한 자갈돌(길이 20.6㎝, 너비 8.1㎝, 두께 4.2㎝)에 0.4㎝ 간격으로 23개의 눈금이 새겨져 있어 당시 사람들이 수학, 도량학, 기하학에 관한 기본적인 인식을 갖고 있었다는 증거로 추정됐다〈2014년 6월 17일자 A20면〉.

◇"현생 인류의 지적 능력 보여주는 획기적 발견"

얼굴 조각과 눈금돌은 같은 문화층에서 발견된 '형제 유물'이다. 한국선사문화연구원은 "두 유물을 따로 떼서 설명할 수 없다. 3만5000년 전 단양에 살았던 후기 구석기인의 지적 능력과 표현 능력이 드러난 흔적"이라고 했다.

눈금돌은 당시 구석기인들이 수(數)와 단위 등 숫자 개념을 기호화한 것으로 '세계 역사상 최초의 자(측량 도구)'라고 연구원은 설명했다. 이전에 가장 오래된 도량형 유물은 뿔로 만든 피리에 정밀한 간격으로 선을 그려넣은 정도였다. 얼굴 조각은 단순한 선이 아니라 인간의 얼굴을 새겼다는 점에서 현생 인류의 자의식과 표현력을 담고 있는 고고학적·인류문화사적 발견이라고 연구원은 덧붙였다.

구석기 연구자들은 현생 인류의 중요한 특징을 요즘 현대인과 같은 뇌 용량으로 인한 지적 능력의 발현, 자의식의 발생이라고 본다. 인간의 얼굴을 표현했다는 건 '나'와 '우리'라는 존재를 분명히 인식, 표현한 것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이경우 연구원은 2~3일 충북대에서 열리는 제20회 수양개국제학술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수양개 6지구 출토 새김 유물: 현생 인류 행위의 흔적'을 발표한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서호성 연구원은 '수양개 6지구 출토 눈금돌에 관한 계측치 분석'이라는 주제로 눈금돌에 대한 그간의 연구 성과를 발표한다.

유물 사진을 검토한 구석기 연구자들은 "얼굴처럼 보이는 선을 새긴 매우 중대한 발견"이라면서도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 얼굴이 아닌 다른 조각일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고 했다. 배기동 한양대 교수는 "새겨진 깊이와 모양으로 보아서 인위적으로 새긴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전체 몸돌의 깨어진 파편이어서 전체 문양의 일부일 가능성도 제기될 수 있다"고 했다. 마이클 조킴 미국 캘리포니아 샌타바버라 주립대 교수는 "체코에서 발견된 상아에 새긴 2만6000년 전 후기 구석기 예술품을 연상시킨다. 매우 놀랍다"고 했고, 이헌종 목포대 교수는 "단순히 3개의 선으로 인간의 얼굴을 표현했다고 보기엔 아직까지는 무리가 있다"고 했다.

◇"해외서도 돌에 새긴 유물 드물어"

구석기 고고학자들은 4만~3만5000년 전을 현생 인류의 특징이 나타나는 중요한 시기로 본다. 가장 중요한 특성이 "일정한 패턴이 있는 새김 유물"이라는 것. 하지만 해외에서도 돌에 새긴 유물이 발견된 사례는 많지 않다.

1만5000~1만2000년 전의 스페인 알타미라 동굴 벽화나 라스코 동굴 벽화에서는 소·사슴 등 동물 그림이 많지만 사람 얼굴을 그린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충북 청원군 두루봉 구석기 동굴 유적에서 "약 10만년 전 사슴 정강이뼈에 새긴 얼굴 조각"이 나왔다고 발표된 적 있다. 구석기 연구자인 고(故) 손보기 박사가 주장했으나 학계에선 "뼈는 돌과 달리 물러서 동물의 이빨 자국이거나 자연 발생적으로 생긴 우연한 흔적"이라는 반론이 만만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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