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캠퍼스서 지팡이 휘두르며 고함 지르는 '어르신'들

이원광 기자 2015. 11. 1. 09:15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취재여담]"국정화 행정고시 D-4, 찬·반 어르신을 바라보는 학생들의 '시선'

[머니투데이 이원광 기자] [[취재여담]"국정화 행정고시 D-4, 찬·반 어르신을 바라보는 학생들의 '시선']

고엽제전우회와 공교육살리기학부모연합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지난달 30일 오전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앞에서 전국역사학 대회 참석 역사학 정치교수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사진=뉴스1

"교수님…, 정말 멋있으셨어요."

지난달 28일 오전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우려하는 서울대 교수 모임'이 국정화 철회의 내용을 담은 성명서를 발표한 직후, 한 여학생이 유용태 역사교육과 교수 앞에 섰습니다. 이날 기자회견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이 여학생은 유 교수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이같이 말했습니다. 취재진 앞에서 심각한 모습으로 일관하던 유 교수도 그제서야 옅은 미소를 지어보였습니다.

이날 성명서 발표 후 질의응답에 나선 서울대 교수들의 목소리는 분명했습니다. 특히 2011년 이명박 정권 시절 교과서 검정심의위원회 위원으로 참여한 유 교수는 교과서 3권을 직접 보여주면서 "지금 교과서가 자랑스런 대한민국을 폄훼하고 부정하는 내용으로 서술됐다는데, 어느 부분이 그런지 되묻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특히 교수들은 이같은 발언에 대해 학자와 지식인, 그리고 교육자로서 양심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도리임을 강조했습니다. 교수들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걱정하며 역사 앞에 책임 있는 자세를 가진다"며 "만약 우리들에게 학문적 양심과 권위가 있다면, 이를 가지고 국민들께 호소드린다"고 말했습니다.

경솔한 행동을 경계하는 신중한 모습도 엿보였습니다. 성명서 발표 이후, 거리 투쟁 등 후속 대책을 묻는 질문에 "교육자로서 최소한 도리를 밝히기 위해 성명이라는 형식으로 뜻을 발표했다"며 "거리 나가고, 안 나가고는 개인 판단 문제이지 교수 모임의 입장으로 정리해 밝힐 수 없다"고 했습니다. 자신의 본분을 망각하지 않으면서도 학생들에게 나아갈 길을 몸소 보여주는, 교육자이자 어른의 모습이었습니다.

지난달 30일 오전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문화관에서 열린 제58회 전국역사학대회 오전 세션이 끝난 후 보수단체 회원들이 플래카드를 들고 항의에 나서고 있다. / 사진=뉴스1

반면 학생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어른들도 있었습니다. 지난달 30일 오전 서울대에서 열린 '제 58회 역사학대회'에서 28개 역사학회는 공동성명을 통해 역사교과서 국정화 철회를 요구했습니다. 그러자 공교육살리기학부모연합과 고엽제전우회 등 애국보수단체 회원들이 '교육망친 주범, 좌편향 교수들, 학부모가 용서않는다'는 손피켓을 들고 회견장으로 난입을 시도했습니다. 이들은 "좌편향 교수들은 물러가라"는 고성을 지르며 몸싸움을 벌였고, 한 어르신은 "빨갱이XX"라며 지팡이를 휘두르기도 했습니다. 백주대낮 학문의 요람이라는 대학 캠퍼스에서 벌이진 일입니다.

심지어 한 어르신이 현직 경찰서장을 폭행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지난 26일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TF를 놓고 야당 국회의원들과 경찰이 서울 종로구 국립국제교육원 앞에서 대치를 벌이는 가운데 인근에서 관련 집회를 열던 어버이연합 회원 어르신이 현직 혜화경찰서장인 정용근 총경을 폭행해 입건된 것입니다.

특히 이후 행동은 아이들로부터 존경받아야할 어른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어 보였습니다. 이들은 재차 혜화경찰서 앞에 집결해 "우리 회원 1명이 불미스럽게도 경찰을 폭행해 연행됐는데 맞은 경찰이 혜화서장이었다고 한다"며 "정복을 입고 있지 않아 경찰관인줄 몰랐다"는 씁쓸한 해명을 남겼습니다. 또 "우리 회원을 연행하고 우리를 '불법 단체'로 지칭한 혜화서장에게 면담을 요구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경찰들도 말릴 수 없는 '어버이'들의 행동에 혀를 내둘렀습니다.

"Years bring wisdom."(나이가 들면 지혜로워진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학생들은 어른들의 행동을 본받아 성장했고, 어른들은 책임 있는 모습으로 학생들의 존경을 받아왔습니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 여부는 어른들의 판단과 행동이 아이들의 교육관과 미래 모습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더 큰 의미를 가집니다.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행정고시 4일전. 어른들이 보다 무거운 책임감을 가지고 행동해야 할 이유입니다.

이원광 기자 demian@mt.co.kr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머니투데이 & mt.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