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모계사회>'장가 오는' 시대.. "아이때문에 처가살이, 장모와 갈등 괴로워"

김다영 기자 2015. 10. 29.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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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 안은진 기자 eun0322@

서울 구로구에 사는 송모(38) 씨는 결혼 후 3년째 처가살이 아닌 처가살이를 하고 있다. 처가와 같은 아파트 같은 동 7층과 12층에 나란히 살고 있는데, 두 아이의 육아를 이유로 장모가 매일같이 송 씨 집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송 씨는 “가끔 회사에서 술을 마시고 들어올 때나 늦게까지 TV를 볼 때 눈치 보이는 게 있긴 하지만, 맞벌이하는 상황에서 육아를 맡아 주시니 아직은 고마운 마음이 크다”며 “아이 둘이 모두 예민해서 늘 끼고 있어야 하는데 둘 다 직장에 매여있는 우리 부부 상황에서는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처가하고 가깝게 지내다 보니 명절이나 양가 생신 등 중요한 날 늘 처가가 우선시되는 기분을 떨칠 수 없다고 송 씨는 말한다. 지난 7월에도 막내의 돌잔치가 있었는데 모든 준비를 장모가 주도했고, 송 씨의 친가는 잔칫날 초대된 ‘손님’ 같은 분위기가 형성됐다. 그는 “아이들도 친가보다는 외가 쪽을 더 따르면서 우리 부모님이 적지 않게 서운한 마음을 갖고 계신 듯하다”고 털어놨다.

그는 “아내에게 한번은 우리 어머니께 육아를 부탁해보면 어떠냐고 물어보니, 아내가 그건 자기가 불편해 싫다고 하더라”며 아쉬운 마음을 드러냈다.

송 씨도 이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고 싶었지만 쉽지 않았다. 바로 ‘경제권’ 때문이다. 송 씨는 “결혼할 당시 신혼집 마련과 혼수를 위한 비용을 아내와 정확하게 반반씩 했다”며 “사실 처가가 조금 더 여유가 있어 이런저런 사소한 비용을 충당해 준 것까지 따지면 아내가 더 많은 돈을 냈다”고 말했다.

그는 “옛날처럼 경제권이 일방적으로 남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보니, 집안의 가장이 내가 아닌 아내인 것 같은 생각이 들 때가 많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바야흐로 신(新)모계사회다. 과거에는 여성이 남자에게 ‘시집을 오는’ 구조였다면, 이제는 남성이 여성에게 ‘장가를 오는’ 형태로 결혼 구조가 변하고 있는 것이다. 맞벌이가 보편화되면서 대부분의 신혼부부가 육아를 위해 처가 근처에 신혼집을 마련하고, 아이를 외탁하는 경우가 크게 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 7월 통계청이 발표한 ‘2015년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에 따르면 2014년 10월 기준 배우자가 있는 1만1825가구 가운데 맞벌이 가구는 5186가구로 전체의 43.9%에 달했다. 통계청은 이들 맞벌이 부부의 50%가량이 조부모에게 육아를 위탁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맞벌이라도 양육에서의 역할이 남성보다는 여성이 높다 보니, 자연스레 여성 중심의 가족구조가 형성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가정 내 경제력 분화도 가족구조가 모계 중심으로 변화하는 데 한몫하고 있다. 과거에는 남성이 전적으로 결혼비용 및 생활비를 부담하면서 가부장적 가족구조가 유지됐지만, 경제활동을 하는 여성이 비용을 분담해 나가면서 조금씩 가족 내 경제권을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경제력이 향상되면서, 가족구조가 가부장적 구조에서 모계사회로 재편되는데 더욱 속도가 붙고 있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멀리 떨어져 사는 시댁과 며느리와의 ‘고부갈등’보다 가까운 곳에 사는 장모와 사위 사이 ‘장서(丈壻)갈등’이 새로운 가족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실제 경기 광명시에 사는 황모(40) 씨는 올해 초 결혼 9년 만에 처가에서 분가해 나왔다. 분가 명목은 아이들의 교육 문제로 인한 이사였지만 실제로는 장모와의 지속된 갈등이 더 큰 이유였다.

황 씨는 “장모님과 성격이 맞지 않다 보니 시집살이보다 더 독한 처가살이를 한 느낌”이라며 “장모가 하고 싶은 말은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 자존심 상하는 말을 듣고도 참은 게 수백 번”이라고 말했다. 분가를 결정하기 직전에도 장모가 황 씨 부모의 황혼 이혼 이야기를 꺼내 한바탕 말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 일을 계기로 장모와는 물론 장인과도 사이가 벌어지기 시작했고, 종종 부부싸움으로 번지기까지 했다.

황 씨가 처음 처가살이를 결정했던 이유도 육아였다. 본래 신혼집을 따로 마련했었으나 아내와 둘이 인테리어업체를 운영하다 보니 갓 태어난 딸에게 손이 가지 못 하는 게 미안해 합가를 결정했던 것.

황 씨는 “친구 중에도 일부가 처가 근처에 살거나 처가살이를 하는 경우가 있어 쉽게 생각했지만, 며느리가 딸이 될 수 없는 것처럼 사위도 아들이 될 수는 없더라”며 “아이도 클 만큼 컸으니 이제 처가와 거리를 두고 우리 가족만의 시간을 즐기고 싶다”고 말했다.

김다영 기자 dayoung817@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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