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마을서 무슨 일이?' 성추행 교장 6개월 처벌 無

이승호 2015. 10. 25. 17:1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피해 학부모는 '왕따'에 이사 삼중고

【수원=뉴시스】이승호 김도란 기자 = 경기도의 한 섬마을에서 발생한 초등학교 교장의 성추행 사건 피해 학부모가 이중 삼중으로 고초를 겪고 있다.

사건 발생 6개월이 지나도록 해당 학교장의 행정처분은 물론 처벌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 사이 소문이 일파만파하면서 학부모와 자녀는 따돌림에 섬 밖으로 밀려 났다.

하필 자녀가 전학한 초등학교 교장마저도 또 다른 성폭력 사건에 연루, 징계절차가 진행 중이라는 비극적인 교육현실에 땅을 치며 하소연을 하고 있다.

◇ 그날 무슨 일이 있었나?

25일 경기도교육청과 수원지검 등에 따르면 여성 A씨는 4월20일 자녀 둘이 다니는 초교 섬 분교 교직원 회식 자리에 다른 학부모 5명과 함께 참석했다.

A씨는 전교생이 11명인 이 분교에 5학년과 3학년생인 자녀 둘을 보냈다. 하지만 그동안 생업 때문에 회식 참석은 처음이었다. 이 자리에는 본교 교장 B(57)씨와 분교장 등 교직원 7명이 나왔다.

1차 횟집에서 술에 취한 B 교장은 A씨를 자녀의 이름과 "야"로 번갈아 부르면서 옆자리로 앉게 한 뒤 어깨를 감싼 채 계속해서 술을 권했다.

B교장은 이후 다른 학부모가 운전하던 이동 차량 안에서 A씨를 뒤에서 끌어안는 등의 추행을 했다. 반강제로 끌고 간 노래방에서도 다른 일행을 기다리면서 A씨를 끌어안고 신체를 더듬는 등의 강제추행을 했다.

이를 뿌리치고 나온 A씨는 다음 날 학부모 회의에 참석해 전날 있었던 일을 털어놓고 대응을 당부했다.

하지만 작은 섬에서 일어난 불미스러운 일에 힘을 실어 줄 학부모는 많지 않았다. 시끄럽지 않게 넘기자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A씨는 어찌할 줄 몰라 둘째 아이 담임 여교사에게 이런 일이 있었다고 상담했다. 그런데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갔다.

B 교장과 학교 교직원, 심지어 B씨의 아내까지 매일 A씨를 찾아와 선처해 달라고 용서를 구한 것이다. B 교장을 대신해 교감이 무릎을 꿇고 사죄하기까지 했다. 이런 모습은 다른 학부모에게 목격되기도 했다.

B 교장은 하지만 "용서해달라. 살려달라"고 하면서도 자신의 추행 사실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 일 없었다"고 인정하지 않았다.

이어 A씨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큰 아이의 승마 교육비를 대겠다며 관련 신청서를 보내기도 했다.

A씨는 "책임있는 사과는 고사하고 돈으로 사안을 마무리 지으려는 B 교장의 태도에 화가 났다"며 사건 발생 보름여만에 수원지검에 고소장을 냈다.

B 교장은 하지만 "당시에 아무런 일도 없었다. 지금도 A씨가 왜 그렇게 일을 만드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공직에 있으면 이런 불미스러운 일에 휘말리는 것 자체가 부담이어서 무조건 용서를 구한 것이지 잘못을 한 적은 없다"고 했다.

◇ 사건 발생 6개월…교장 처벌은 無

사건 배당을 받은 경찰은 관련자들을 불러 조사했고, 7월1일 기소의견으로 사건을 검찰로 넘겼다.

이후 담당 검사는 B씨가 범행을 부인하는 점을 고려해 경찰에 보강 수사를 지시, 경찰은 7월31일 다시 검찰로 사건을 넘겼다.

수사 과정에서 술에 취한 B 교장이 노래방 주인도 끌어안는 등의 추행을 했고, "평교사 시절부터 섬에 오래 근무했던 B 교장은 술버릇이 좋지 않고 여성 편력도 심했다"는 일부 주민의 증언도 나왔다.

하지만 검찰은 이후 3개월이 되도록 단 한 차례도 이 사건을 수사하지 않았다. 이 기간 담당 검사가 3명이나 바뀌었기 때문이다.

담당 검사가 8월 초 개인 사정으로 교체된 데 이어 20여 일만에 또다시 담당 검사가 정기 인사로 바뀌었다.

수원지검 관계자는 "담당 검사의 유학 문제로 한 차례 교체된 뒤 또다시 인사로 검사가 바뀌었다"며 "불가피한 사유로 사건 처리가 늦었다. 사건 처리에 차질 없게 하겠다"고 말했다.

이러는 동안 해당 교육지원청에도 익명의 진정서가 접수돼 교육청 차원의 자체 조사가 이뤄졌다. 익명의 진정은 A씨가 검찰에 고소하기 전에 접수됐다.

해당 교육지원청은 5월 초 회식에 참석했던 교직원들에게 경위서를 받은 뒤 일주일 뒤 B 교장을 상대로 대면 조사했다.

하지만 B 교장이 추행 사실을 부인하자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았다. 그러다 경찰 수사가 마무리되는 시점인 7월 기소 의견으로 사건이 검찰로 넘어간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하지만 교육청의 처분은 이후에도 없었다. B 교장은 올해가 해당 학교에 근무한 지 만 4년째로 인사 발령을 앞두고 있다.

해당 교육지원청 관계자는 "경찰 수사는 마무리됐지만 검찰이 기소 여부를 정하지 않아 징계 처분을 할 수 없다"며 "검찰이 기소 여부를 정하면 행정 처분하겠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이재정 경기도 교육감은 8월12일 교원 성범죄 근정책 가운데 하나로 "성범죄 수사대상자는 즉시 직위해제 조치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교육감의 이 발표 뒤 도 교육청은 도내 한 초교 교장이 교원을 상습 추행하고 성희롱했다며 징계했다.

문제의 학교장에 대한 경찰 수사가 진행되고 있었지만, 도 교육청은 해당 교장을 즉시 직위 해제한 뒤 징계했다.

문제가 불거지자마자 해당 교장을 업무에서 배제한 것인데, B 교장의 사건과 비교된다.

A씨는 "다른 학교장은 경찰 수사 와중에도 징계하면서 B 교장은 검찰 기소까지 기다리는 이유가 무엇인가"라며 "B 교장은 지금도 유유히 출근하면서 사건을 은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 학부모 피해는 아이에게까지…이중 삼중고

이러는 사이 작은 섬에서 A씨의 가족은 '왕따'가 됐다. "별일 아닌 것을 갖고 왜 문제를 키웠느냐"는 주변의 따가운 시선은 갈수록 심해졌다.

교사들도 더는 살가웠던 두 아이의 선생님이 아니었다. 교육청 감사와 경찰 수사가 이어지면서 "그 날 아무 일도 없었다"며 A씨를 외면했다.

A씨의 아이들도 자유롭지 않았다. 이 분교는 전교생이 11명뿐이어서 학년과 관계없이 방과 후에 서로 어울렸지만, 사건 이후 어느 새부터 A씨의 자녀들만 따로 떨어져 있었다.

결국 내성적인 큰 아이가 더 큰 상처를 입을까 우려해 A씨 부부는 이사를 결심했다. 큰 아이를 임신하고 섬에 들어온 지 12년 만이었다.

A씨 가족은 사건이 일어나고 2개월 만인 6월 말 섬을 나와 급히 월세 아파트로 이사하고, 아이들의 학교도 옮겼다.

그런데 하필 이 학교도 교장의 성폭력 사건이 불거져 시끌시끌한 와중이었다. 게다가 섬에서 있었던 A씨의 일이 교사들의 입소문을 타고 이 학교까지 전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A씨와 가족을 누구도 반길 리 없었다.

A씨는 "시간이 약"이라며 참았지만, 큰 아이가 학교에 적응하지 못했다. 하루는 아이가 온몸에 작은 알갱이 상처가 난 채 돌아왔다. 여러 아이가 장난감 총으로 A씨의 아이를 과녁 삼아 쏜 것이다.

A씨는 담임교사를 만나 큰 아이가 적응할 수 있게 관심을 가져달라고 부탁하려 했다. 학교 정문까지 갔지만, 차마 들어가지 못했다.

A씨는 "이미 섬에서 벌어진 일이 소문을 타고 교사와 학부모들에게까지 전해진 상태였다. 아이가 더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두려워 교문을 넘지 못했다"며 "가해자에게는 아무런 처벌도 없고 피해자는 가족까지 이런 피해를 입고 있다"고 흐느꼈다.

그는 또 "아이들이 전학한 학교도 교장의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다는 사실에 눈 앞이 캄캄했다. 누구를 믿고 아이들을 맡겨야 하나"라고 탄식했다.

jayoo2000@newsis.com

<저작권자ⓒ 공감언론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Copyright ©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