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우리가 김치녀? 그럼 너네 남자들은 '한남충'

곽아람 기자 입력 2015. 10. 24. 03:02 수정 2015. 10. 24.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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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혐오'에 대항 온라인 연대 '메갈리아' 일베 여성 비하에 거울처럼 그대로 갚아 "性 평등사회로 가기위한 과도기적 상황"

'여자는 3일에 한 번 때려야 한다고? 남자는 숨 쉴 때마다 한 번씩 때려야 하거든!'

온라인상 여성 혐오에 대해 여성들이 반격에 나섰다. 이른바 '여혐혐(女嫌嫌)', 즉 '여성 혐오에 대한 혐오'다. 온라인 연대 '메갈리아' 는 '여혐혐'을 기치로 내세운 여성들의 대표적인 집결지다. '메갈리아'란 '메르스'와 '이갈리아'의 합성어다. '이갈리아'란 노르웨이 작가 게르드 브란튼베르그의 소설 '이갈리아의 딸들'의 배경으로, 남녀 성역할이 뒤바뀐 가상의 세계다. 이 책은 대표적인 여성학 입문서로 꼽힌다.

메갈리아는 지난 6월 메르스 사태 때 인터넷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의 메르스 갤러리에서 탄생했다. 메갈리아 운영진은 본지와 이메일 인터뷰에서 "메갈리아는 '만약 메르스의 최초 유포자가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었다면 반응은 어땠을까'라는 질문에서 시작되었다"고 밝혔다.

당시 디시인사이드에서는 홍콩행 비행기에서 메르스 확진자와 동승했으나 격리를 거부한 한국 여성들에 대해 여성 혐오성 비난이 쏟아지고 있었다. 메갈리아는 지난 8월 디시인사이드를 벗어나 별도의 인터넷 사이트(www.megalian.com)를 만들었다. 회원들은 철저히 익명성을 지향한다. 이메일 인증만 하면 누구나 가입할 수 있으나 정확한 회원 수는 알려지지 않았다. 메갈리아의 페이스북 페이지 '메갈리아4'에는 22일 현재 1만2800여명이 '좋아요'를 눌렀다.

온라인상에서 벌어지는 여성 혐오의 중심에는 보수 성향 사이트 '일베'가 있다. 메갈리아는 일베의 대항마를 자처하며 이들이 '여혐혐' 전략으로 택한 '미러링(mirroring)'은 상대의 언행을 거울처럼 따라 하며 되돌려주는 행위를 뜻한다.

일베를 중심으로 각종 여성 혐오 용어들이 퍼져 나가는 양상을 메갈리아는 '반사'한다. 허영심 많은 여성을 일컫는 '김치녀'에 대항해서는 '김치남' '한남충'(벌레 같은 한국 남자) 등의 용어를 만들었다. '여자는 삼일에 한 번 때려야 한다'는 말을 줄인 '삼일한'에 대항해 '숨쉴한'이라는 단어가 탄생했다. '남자는 숨 쉴 때마다 한 번씩 때려야 한다'는 뜻이다.

'순종적인' 일본 여성을 찬양하는 말인 '스시녀'에 대항해서는 '갓(god)양남'이라는 단어가 생겨났다. 메갈리아의 '용어 사전'에 따르면 '김치남에 비해 외모와 성격, 성적 능력 등 어느 것 하나 뛰어나지 않은 것이 없는 서양남을 일컫는 단어'다.

'용어'들로 뒤덮인 메갈리아의 게시물은 일견 폭력적으로 보인다. '여혐혐'을 표방하지만 결국 남성 혐오로 귀결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메갈리아 운영진은 "만일 '미러링'이 폭력적이라면 미러링의 원본인 여성 혐오 발언들도 똑같이 폭력적이었음을 알아야 한다. 이곳은 한국 사회에서 갈수록 높아지는 여성 혐오 발언의 수위에 견디다 못한 여성들이 소리 지르고 있는 공간"이라고 했다.

여성학자인 조주은 국회입법조사관은 메갈리아의 탄생을 '젠더 전쟁'의 한 양상으로 해석했다. "온전한 성 평등 사회로 가기 위한 과도기적 상황으로 보인다."

노명우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 사회 전체는 여전히 가부장적이지만 대학 입시나 취업 같은 '출발점'의 퍼포먼스는 여성이 남성을 압도한다. 여성이 더 이상 약자가 아닌데도 보호받는 것처럼 보이는 착시현상이 여성 혐오를 낳았고, 그 반작용으로 '여혐혐'이 등장했다"고 말했다.

메갈리아의 '미러링 전략'에 대한 우려도 있다. 혐오를 혐오로 되갚는 방식은 혐오의 재생산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안이환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교수는 "미러링을 하는 심정은 이해하지만 여성 혐오의 해결책은 될 수 없다. 조롱을 당한 여성혐오론자들이 반성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심한 욕을 퍼붓는 방식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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