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정윤회 국정농단 의혹 '지금은 말할 수 없다'

2015. 10. 20.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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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무죄 판결 받은 조응천 “이제 시작… 고난은 계속될 것 같습니다”

“1심 판결이 나왔을 뿐입니다. 저와 제 주변 분에 대한 고난은 계속될 것 같습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준비된 멘트다. 10월 15일, 서울 중앙지법 앞에서 한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실장의 발언이다.

심경을 묻는 질문과 후배 검사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없느냐는 물음에는 중국 당나라의 시인 유종원의 시 ‘강설(江雪)’을 인용했다. “온 산에 새는 날지 않고 모든 길엔 사람 발길 끊어졌다(千山鳥飛絶 萬徑人?滅)”로 시작하는 시다. 정치개혁을 꾀하다 좌천되어 지방 변경으로 쫓겨나 고독감을 표현한 대목이다. 기자는 그에게 “합정동에 연 해산물집은 계속 운영할 것이냐”고 물었다. 그는 다시 시 ‘강설’의 후반부를 인용했다. “외로운 배에 삿갓 쓴 노인이 눈 내려 차가운 강에서 홀로 낚시질을 한다(孤舟蓑笠翁 獨釣寒江雪).”

재판을 앞둔 일주일 전, 기자는 조 전 비서관이 지난 4월 연 합정동 해물탕집을 방문했다. 검은색 치마를 입고 머리에 수건을 두른 그는 바삐 테이블을 오가며 주문을 받았다. “바쁘게 일하면서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것이 차라리 낫다”고 했다. 그는 스스럼없이 테이블에 앉아 소주잔을 함께 기울였다. 청와대 시절과 사건을 회상하는 그의 말에는 짙은 회한과 분노가 서려 있었다. 그와 같이 피의자로 법정에 섰던 박관천 전 경정이 받은 형량에 대한 질문이나,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박지만 EG그룹 회장에게 하고 싶은 말이 없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미리 답을 준비하지 못한 것으로 보였다.

‘청와대 문건유출’ 사건으로 기소된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이 10월 15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 뒤 법정을 나서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강윤중 기자

기자 : 박관천 경정한테 한 말씀 해주세요.

조응천: 딱하네요. 인간적으로… 7년….

기자 : 아까 두 분이서 이야기를 나누시는 것 같은데, 어떤 이야기를 나누셨는지.

조응천: (한숨)…제 부하인데요. 뭐 저 친구가 어쨌건간에. 역지사지해 보십시오. 7년을 받았습니다. 7년….

기자 : 박지만 EG 회장이나 김기춘 전 비서실장에게 할 말 없습니까.

조응천: 할 말 없습니다…. 다만…(뜸 들이다) 없습니다.

‘찌라시’와 대통령 기록물 사이

사건의 발단은 지난해 11월 24일 세계일보가 청와대 비서실장 교체설 등을 담은 VIP 측근 동향 보고서를 단독 보도하며 시작됐다. ‘VIP 측근’이란 대통령이 되기 이전 오랫동안 비서실장을 역임한 정윤회씨를 말한다. 항간에 도는 소문 속에 등장하는 ‘비선의 실체’가 청와대 공식문서에서 언급된 사안이다. 3일 뒤 박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청와대 문건유출은 결코 있을 수 없는 국기문란행위”라고 발언했다. 검찰의 수사는 신속했다. 이틀 뒤인 12월 3일, 경찰청 정보과 형사 최모, 한모 경위를 임의동행해 수사한 뒤 다음날엔 문건 작성자인 박관천 경정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조사했다. 이튿날에는 조응천 전 비서관을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했다. 이번 재판 결과가 보여준 것은 검찰이 기소했던 대통령기록물 관리법 위반 혐의는 무죄라는 것이다. 법원은 “이미 생산완료한 원본 문서의 추가 출력본 내지는 복사본을 전달한 것은 애초에 기록물 보호를 취지로 하는 대통령기록물 관리법에 위반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선고 취지를 밝혔다.

박관천 경정이 박지만씨 측근 전인식씨에게 박지만씨 주변인사 등의 비위가 적힌 첩보문서를 전달한 것은 ‘공직기강비서실’이 해야 하는 원래의 정상적 임무를 수행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다만 애초 세계일보가 보도한 정윤회 동향이 들어간 비서실장 교체설 문건의 경우 박지만씨와 관련된 내용이 들어있지 않을 뿐 아니라 다른 문건이 문서 작성의 근거자료로 사용되었다면 공직기강비서실의 문서라는 점에서 ‘공무상 비밀누설’ 부분은 유죄가 되었다. 박 경정은 검찰 조사와 재판에서 해당 문건의 전달이 조 전 비서관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한때 주장했지만 이와 관련한 혐의는 입증되지 않아 조 전 비서관은 이 부분도 무죄를 받았다.

당사자 이해관계를 떠나 관심이 가는 대목은 문건에서 담고 있는 내용의 ‘실체적 진실’이 뭐냐는 것이다. 윤태곤 의제와전략그룹 ‘더 모아’ 이사는 “처음부터 대통령까지 나서서 그 문건을 ‘찌라시’로 규정한 마당에 다시 이것을 두고 대통령기록물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자가당착적 모순”이라고 말했다.

법원은 이에 대한 판단은 피해갔다. 재판에서 변호인들은 “문건에 기재된 내용이 진실임을 뒷받침할 자료는 없다”며 문건의 공식성을 부인하는 방향으로 변론을 진행했다. 재판부는 이날 판결에서 “문건에 기재된 내용의 진위 여부를 불문하고 대통령비서실에서 위 문건의 내용에 관한 확인 및 조치를 마치지 않은 단계에서는 위 문건의 내용뿐만 아니라 공직기강비서관실 차원에서 위와 같은 내용의 정보를 수집,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까지도 외부에 알려지지 않는 것에 상당한 이익이 있고, 실질적으로 비밀로 보호될 가치도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밝혔다. 설령 확인되지 않은 정보라도 보호 받을 ‘공무상 비밀’로 본 것이다.

판결문을 보면 눈에 띄는 대목이 있다. 박관천 경정에게 선고된 징역 7년과 4340만원의 추징금의 산출 근거는 이 사건이 아니다. 이 사건과 무관하게 병합된 룸살롱 황제 이경백 사건과 관련해 반대편에서 서서 사건 무마의 대가로 받은 ‘골드바’가 문제가 된 것이다. 2007년 사건이다.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 이른바 뇌물죄의 결과다. 애초의 문건유출과 관련해 그에게 유죄선고가 내려진 공무상비밀누설죄는 양형기준이 설정되지 않은 범죄인 데 비해 1억 이상 5억 미만 뇌물수수의 권고형 범위가 7년에서 10년인데, ‘다수 범죄의 처리’ 원칙상 형량범위의 하한에 따른다는 원칙으로 7년이 적용된 것이다. 재판장이 선고문을 읽는 동안 고개를 들고 재판장을 쳐다보고 있던 박 전 경정은 7년 선고 주문이 내려지자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선고문이 낭독되는 동안 눈을 질끈 감고 듣고 있던 조 전 비서관은 무죄 선고가 내려지자 주머니에서 냅킨을 꺼내 눈 주위를 훔쳤다.

법정 판단과 무관하게 이 사건에는 두 가지 네이밍이 있다. ‘정윤회 국정농단 의혹사건’과 ‘청와대 문건 불법유출사건’이다. 박관천 경정의 자리에서 문건을 빼내 세계일보와 기업 등에 전달한 경찰청 정보과 경위들의 경우를 논외로 한다면 법원은 조 전 비서관과 박 전 경정의 손을 들어줬다. 즉 1심 판결은 “맡은 바 직무를 충실히 했을 뿐”이라고 말한 두 사람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그렇다면 앞의 정윤회 부분은?

“처음부터 조응천과 3인방, 딱히 안봉근과 사이가 나빴던 것은 아니다. 벌어진 것은 윤창중 사건(박 대통령 방미 중 성추행 사건) 때였다. 언론에 청와대 관계자 멘트가 나간 것을 두고 당사자가 누군지 색출하는 과정에서 마치 검찰 수사처럼 고압적 분위기가 조성됐다. 공직기강 쪽에서 안봉근 뒷조사에 들어가면서 전면대결 구도가 펼쳐졌다. (조응천은) 3인방 뒤에 정윤회가 있었다고 생각했다. 결과를 봐라, 과대망상이 아니었나.” 이 사건에 깊숙이 관계돼 있던 전 청와대 관계자의 말이다. ‘정윤회의 김기춘 비서실장 흔들기’라는 ‘망상’이 만들어진 것이라는 주장이다. 재판에서 관심이 집중된 부분은 결국 박관천 경정이 유죄를 받았던 ‘비서실장 교체설’ 문건이 만들어진 경위를 둘러싼 것이었다. 박 경정은 조 전 비서관이 “해당 문서 작성과 내용에 여러 차례 관여를 했다”고 진술했다. 재판 결과만 놓고 보면 그렇게 문건은 만들어졌지만 정작 조 전 비서관은 해당 문서를 박지만 측에게 전달하라는 지시는 하지 않은 셈이 된다.

끊이지 않는 비선개입 의혹

조 전 비서관은 2012년 대선 당시 네거티브 대응팀 소속이었다. 총괄은 역시 박근혜 대통령의 개인사를 잘 알고 있는 최외출 영남대 교수가 맡았다. 네거티브 대응팀에서 조 전 비서관의 주임무는 대통령의 가족관계, 구체적으로 박지만씨와 관련한 부분이었다. 흥미로운 부분은 박지만씨를 대리하여 박 경정을 통해 문건을 전달받은 전씨 역시 대선 당시 네거티브 대응팀이었다는 점이었다. 재판 기록을 보면, 전씨는 그 뒤 청와대에 합류하지 않았다. 대신 청와대로부터 1.4㎞ 떨어진 내자동에 사무실을 마련해 사무실 인근에서 박 경정을 만나 문서를 수발한 것으로 되어 있다. 사건이 한창 진행되던 중 ‘역 7인회’ 이야기가 잠시 나왔다가 들어갔다. 사건의 핵심에는 이른바 압구정동 중식당에서 모임을 가진 십상시가 아니라 조 전 비서관의 이른바 ‘양천 7인회’가 있다는 주장이었다.

“박 대통령의 주요 의사결정 과정에 석연찮은 그림자가 어른거린다”는 이야기는 정권 초기, 인수위 시절부터 끈질기게 나오던 이야기다. 과거 어떤 정권이든 소위 비선(秘線) 논란은 항상 따라다니는 사안이었다. 보통 인수위가 끝나고 정부 주요 인사가 임명되면 논란은 사그라진다. MB 정부 시기 이른바 박영준 비선 논란 역시 그가 국무총리실 차관에 안착하면서 사그라졌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에서는 양상이 달랐다. 비선 논란은 끝없이 확산되는 양상을 띠었다. 박관천 경정이 구속되고 재판이 시작되면서 유통되던 ‘설(說)’들은 사라졌지만 최근 들어 의혹은 다시 고개를 드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지난 9월 중순 군 인사를 두고 뒷말이 나왔다. 군 내부 역학관계의 디테일을 꿰뚫어 볼 수 없는 박 대통령이 인사의 주요 후보군 중 동생 박지만씨 관련 인사들을 솎아낸 것을 두고 ‘공식라인 이외에 외부 그룹으로부터 자문받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는 것이 바로 그 경우다.

이른바 ‘정윤회 실세설’과 관련한 재판은 또 있다.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신문 지국장 재판이다. 정윤회씨는 가토 다쓰야 명예훼손 재판에 출석해 논란이 되었던 2014년 4월 16일 당일 행적에 대해 밝혔다. 그런데 정씨가 “당일 평창동의 역술인 이세민씨의 집에 갔다”고 한 것은 정씨가 먼저 밝힌 것이 아니다. 정씨가 제출한 휴대폰 기록에서 평창동에서 발신된 기록을 두고 검찰의 문의과정에서 밝혀진 것이다. 이씨의 집 역시 청와대로부터 약 4.1㎞에 불과한 거리에 있다.

정윤회 문건은 세계일보 이외에도 한 유력 보수일간지도 입수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재판에서 밝혀진 유출경위에는 이 매체에 문건들이 흘러간 경위는 규명되지 않았다. 앞으로도 거론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1980년대부터 박 대통령과 정윤회씨의 장인 고 최태민 목사, 그리고 정씨의 전처 최순실씨와 알고 지냈다는 한 언론인은 끊이지 않는 이 논란과 관련해 “지금은 말할 수 있는 때가 아니지 않느냐. 나중에 정권이 끝나면 엄청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라며 말을 아꼈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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