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 떠나 보수도 "국정화 안된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는 역사학자·교수·교사의 목소리에는 진보·보수의 구별이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진보·중도·보수 성향을 가리지 않고 대학·학회와 교원 모임 모두 국정화엔 압도적인 거부감을 보이고 있다.
정부·여당이 역사교과서에 붉은색을 칠하고 ‘이념전쟁’에 나서고 있지만, 교육현장과 학계에선 이념보다 국정화의 반역사적·비교육적 퇴행을 문제 삼는 공감대가 넓은 셈이다.
중·고교생들도 ‘거리로’ 주말인 17일 오후 ‘국정교과서 반대 청소년 거리행동’ 모임에 참여한 중·고교생 60여명이 역사교육의 죽음을 알리는 영정 모양 팻말을 들고 서울 종로구 인사동 거리를 행진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
오는 30~31일 서울대에서 열리는 국내 최대의 전국역사학대회에서는 20개 학회 대부분이 국정교과서 반대를 선언할 것으로 보인다. 16개 학회는 이미 지난해 역사학대회에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시도의 중단을 엄숙히 촉구한다’는 공동성명서를 발표했고, 서양사학회가 국정화를 반대하는 추가 성명을 냈다. 가장 역사가 길고 보수적으로 평가받고 있는 ‘역사학회’의 정연식 회장(서울여대 교수)은 “유영익 전 국사편찬위원장까지 종신회원으로 가입돼 있을 만큼 보수 색채가 강한 우리 학회 내에서도 국정화는 말도 안된다는 목소리가 지배적”이라며 “교과서에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국정화로 몰고 가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확고하다”고 전했다. 교수 770여명이 가입해 가장 큰 역사단체인 한국역사연구회와 한국근현대사학회는 지난 15~16일 집필·제작 참여 거부를 공개 선언했고, 집필 거부를 선언한 역사전공 교수만 18일까지 38개대 280명에 달하고 있다.지난 16일 기독교사들의 모임인 ‘좋은교사운동’ 소속 역사교사들이 ‘기독역사교사’라는 이름으로 국정화에 반대한다는 실명선언을 냈다. 이 단체에서 처음 이뤄진 실명선언에는 역사교사 80명 중 63명이 참여했다. 김영식 교사는 “우리 모임은 정치적 색채가 전혀 없는 모임이지만 교사들의 국정화 반대 의견은 압도적”이라고 전했다. 전공과 시대, 노·장·청을 막론하는 역사학계의 압도적인 반대는 국정화가 더 이상 이념 편향 문제가 아니라 반역사·비교육·반민주의 잣대로 매김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일부 국정화 추진 세력이 다수의 반대 목소리 속에 묻혀 있는 셈이다.
다급해진 교육부는 역사관련 학회와의 간담회를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용욱 한국역사연구회장(서울대 교수)은 18일 “교육부 측의 간담회 요청을 받고 불참하겠다고 했다. 9개 학회에 연락한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역사학회의 정연식 회장은 “저쪽 끝에서 보면 학계의 90%가 좌편향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소수가 주도하는 교과서를 누가 공정하다고 말하겠느냐”며 “결국 학계를 외면한 스스로의 덫에 걸릴 것”이라고 평가했다.
<송현숙·임아영 기자 so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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