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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따라 멋따라> 함안 정자엔 생육신·의병 이야기

송고시간2015-10-1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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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안나들목 지나 무진정-채미정-악양루 등 갖가지 사연 담아

악양루
악양루

(함안=연합뉴스) 박정헌 기자 = 경남 함안군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정자들은 고단한 삶과 정란(政亂)에서 한 발치 떨어져 보고 싶은 소망을 담은 곳이다.

일찍부터 손님을 접대하고 학문을 토론하며 풍류를 즐기는 공간이 정자지만 함안에 산재한 정자는 사뭇 다르다.

폐위된 왕을 그리워하며 도망치듯 내려오거나 전란의 풍파를 잊고자 하는 마음으로 대들보를 놓고 서까래를 올렸다.

고즈넉한 풍경을 한 겹 걷어내면 촘촘하게 새겨진 역사의 나이테를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함안지역 정자를 돌아보면 눈은 즐거워도 지난한 세월 한 보따리를 어깨에 짊어진 느낌이다.

보따리 속 이야기를 들춰보면서 가을 바람에 일렁이는 함안의 황금색 들판을 걸어보는 것도 좋을 법하다.

◇무진정

함안나들목에서 나와 일자로 뻗은 함안대로를 따라 대사교 방향으로 가면 왼쪽으로 널따란 주차장 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

조선 초 소박한 건축양식을 확인할 수 있는 경남도 유형문화재 제158호 무진정(無盡亭) 주차장이다.

무진정은 조선 명종 22년(1567) 생육신 가운데 한 명인 어계 조려의 손자 조삼이 세운 정자다.

조삼의 호 무진(無盡)에서 이름을 따왔다. 그는 이곳에서 후진을 양성하며 여생을 보냈다고 한다.

주차장 옆에 자리한 무진정으로 발걸음을 돌리면 곧바로 인공호수(3천300여㎡)가 눈에 밟힌다.

채미정
채미정

언뜻 보면 잘 다듬은 잔디밭으로 착각할 만큼 낙엽과 수풀이 빼곡히 들어찼다.

놀란 마음에 눈을 비비고 다시 바라봐도 때아닌 녹조 같기도 하고 거대한 이끼 같기도 할 만큼 연초록으로 짙게 물들었다.

이 연못 한켠에 옆구리가 툭 터진 듯 자그마한 물길이 하나 만들어져 있다. 함안을 크게 끼고 흐르는 함안천으로 연결되는 물길이다.

연못 가운데 영송루(迎送樓)라는 누각 하나가 있다. 주위로 우뚝 솟아오른 왕버드나무 6그루가 누각 지붕 위로 가지를 기다랗게 늘어뜨리고 있다.

이 누각에서 돌다리 하나를 건너면 바로 무진정으로 이어진다.

무진정은 앞면 3칸, 옆면 2칸으로 만들어졌다.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의 팔작지붕이다.

앞면 가운데 칸은 마루방으로 정자 바닥과 땅 사이에 공간이 있는 누마루 형식이다.

기둥 위에 아무런 장식이나 조각물이 없어 화려한 정자 주변 경관과 대비된다.

정자 가장자리는 느티나무와 능수버드나무, 왕버드나무가 에워싸고 있어 세상에서 고립된 느낌을 준다.

◇채미정

무진정을 빠져나와 차를 몰고 군북면 방향으로 10여분 내달리면 봉림삼거리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다시 군북중학교 쪽으로 빠져 길을 따라가면 무진정과 마찬가지로 도로 한편에 정자 하나가 외롭게 서 있다.

생육신 가운데 한 명인 조려가 세조의 왕위 찬탈에 관직을 그만두고 여생을 보냈다는 채미정(菜薇亭 )이다.

영송루
영송루

이곳은 여러모로 무진정과 닮았다. 앞뜰에 작은 연못을 파 그 위로 돌다리를 올렸고 정자 형태는 단출한 겹처마 팔작지붕이다.

채미정이라는 이름은 옛날 중국 백이, 숙제가 고사리를 캐던 이야기에서 따왔다.

내친김에 들러봐야 할 장소가 2군데 더 있다. 서산서원과 어계생가다. 둘 모두 채미정 맞은편에 붙어있다.

서산서원은 조려 외 다른 생육신인 이맹전, 원호, 김시습, 남효온, 성담수의 위패를 봉안, 제향하기 위해 숙종29년(1703)에 지어졌다.

매년 음력 3월 3일과 9월 9일 생육신의 충절을 기리는 제사를 지낸다.

조려의 후손들이 1983년 한차례 복원해 현재의 모습이 됐다. 작년 도문화재로 지정됐다.

어계생가는 조려가 태어난 집이다. 어계(漁溪)는 조려의 호다.

조려는 영월에서 단종의 시신을 거두어 장례를 치르고 생가로 돌아와 낚시하며 지냈다고 한다.

대문채·재실·사당으로 구성됐으며 집 바로 옆 500년 된 은행나무 한 그루가 운치를 더한다.

이 나무는 높이 20m, 둘레 3.4m로 1982년 보호수로 지정됐다.

◇악양루

함안IC에서 법수방면 지방도 1011호선을 따라 5.5㎞를 가면 악양마을과 만난다.

마을에서 우회전해 대산 방면 군도 10호선으로 다시 1.5㎞ 달리면 악양루(岳陽樓)가 있다.

무진정
무진정

특이하게도 악양 마을 강 건너 절벽에 걸려 있다. 건너편에서 올려다보면 절벽에 솟아있는 누각이 이마에서 툭 튀어나온 뿔처럼 보인다.

악양루가든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전봇대 뒤로 내려가면 오솔길이 있다. 오솔길을 따라 30여m 오르면 악양루에 도착한다.

누각에 오르면 넓은 들판과 법수면 둑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 옆으로 함안천과 남강이 만나는 물길이 가을빛에 반사돼 반짝거렸다.

그 절경을 보고 있자면 '정자의 경치는 다함이 없고, 즐거움 또한 다함이 없다'는 조삼의 말을 절로 중얼거리게 된다.

해질녘 석양이 남강으로 지면 술잔에 이글거리는 태양을 집어삼킨 듯 붉게 물든 물결이 장관을 이룬다.

누각은 철종 때 세워 한국전쟁이 끝나고 복원했다.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로 무진정처럼 팔작지붕이다.

중국 명승지 '악양'에서 이름이 유래했다. 옛날엔 기두헌(倚斗軒)이라 쓰인 현판이 있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악양루라고 쓰인 현판만 남았다.

한편 악양루로 가는 길 한쪽엔 처녀뱃사공 노래비가 있다.

유랑악단 단장 윤부길이 악양 나루에서 여자 2명이 노를 저어 길손이 강을 건너게 하는 모습을 봤다고 한다.

그 애처로운 모습과 악양 나루의 아름다움을 잊지 못한 그는 작곡가 한복남에게 작곡을 의뢰했다.

'낙동강 강바람이 치마폭을 스~치~면~'으로 시작하는 국민애창곡은 그렇게 탄생했다.

노래비 앞면엔 '처녀뱃사공' 노랫말이, 뒷면엔 유래가 적혀 있다.

◇반구정

서산서원
서산서원

대산면 입사마을에서 용화산 임도를 따라가면 길 가장자리에 바위 표지석 하나를 볼 수 있다.

표지석 쪽으로 45m 정도 다시 내려가면 용화산 기슭에 똬리를 튼 소박한 정자 하나가 있다. 반구정(伴鷗亭)이다.

반구정은 임진왜란 당시 '홍의장군'(紅衣將軍) 곽재우 휘하에서 활약하기도 한 학자 조방이 전후 여생을 보내려 세웠다.

앞마당엔 650년 됐다는 느티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높이 15m, 둘레 5.5m로 그 너머 펼쳐진 남지 들판과 잔잔히 흐르는 낙동강이 한눈에 들어온다.

악양루와 정반대로 이곳은 일출이 아름답기로 소문났다.

느티나무 앞 육각정에 앉아 강과 들을 보고 있자면 세상 근심 모두 내려놓고 벌렁 드러누워 가을 햇살을 쬐며 낮잠이나 자고픈 생각이 절로 든다.

이곳엔 조방의 시 한 구절이 걸려 있다.

'事親當盡孝(사친당진효) 어버이를 섬김에 마땅히 효를 다하고/爲國亦當忠(위국역당충) 나라를 위해서는 마땅히 충이라/嗟我俱無及(차아구무급) 슬프다 이내몸은 모두 미치지 못하였으니/江湖恨不窮(강호한불궁) 세상에 한이 끝이 없도다'

이밖에도 함안엔 꼭 들러야 할 정자나 누각이 많다.

함안 대산면의 합강정, 칠북면 봉촌리의 광심정, 군북면 와룡정 등이 그곳이다.

유독 함안에 이토록 많은 정자가 몰려있는 이유가 궁금해진다.

넓게 뻗은 평야와 곡선을 그리며 유유히 흐르는 남강·낙동강의 넉넉한 품 때문일까.

옛사람들은 세상사 근심·걱정을 잊으려고 정자와 누각을 세워 도망치듯 그곳으로 갔다.

그곳을 스치는 행인은 그 근심과 걱정이 토해놓은 작은 정자를 보며 또다른 상념에 젖을 듯하다.

home1223@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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