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91세 '샹송의 전설'은 흔들림 없었다

2015. 9. 21.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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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9월 20일 맑음. 구순. #176 Charles Aznavour 'Les Deux Guitares'(1960)
[동아일보]
17일 밤 프랑스 파리 ‘르 돔 드 파리’ 무대에서 노래하는 샤를 아즈나부르. 샤를 아즈나부르 홈페이지
17일 밤 프랑스 파리 ‘팔레 데 스포르’의 돔 공연장에서 샹송의 살아있는 전설, 샤를 아즈나부르의 공연을 봤다. 올해 91세. 음악 한 지 70년 넘은 그는 에디트 피아프의 눈에 띄어 스타가 됐다. 아름다운 노랫말과 악곡으로 프랑스에서 가장 존경받는 이 가수 겸 작곡가는 말런 브랜도랑 동갑, 송해 선생보다 세 살 위다.

15일부터 27일까지 열리는 이번 파리 콘서트는 그가 4년 만에 자국에서 여는 공연이어서 현지에서도 화제다. 영화 ‘노팅힐’에 실려 유명해진 ‘She’의 원곡 가수 겸 작곡가, 샹송의 고전으로 ‘고엽’과 어깨동무하는 ‘La Mamma’ ‘La Boh‘eme’을 부른 이.

관객의 대다수는 은발이었다. 그랜드피아노와 현악 4중주, 밴드까지 13명의 연주자 가운데로 걸어 나온 그는 은발에 검은 정장 차림이었고, 왼손을 바지춤에 찌른 채 시작한 첫 곡이 ‘Les ´emigrants’(이민자)였다. 포화를 피해 아르메니아에서 파리로 이주한 부모를 둔 아즈나부르는 최근 인터뷰에서 “이 노래를 만든 지 30년이 넘었는데 지금도 현실”이라면서 난민 이주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

‘옹’은 2시간 동안 27곡이나 불렀다. 무용수 한 명 없이 노래와 연주만으로 승부했다. 전성기에 비해 성량과 음역은 떨어졌지만 목소리는 노승의 검처럼 안 흔들렸다.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Sa Jeuness’(그의 젊음). “제게 음악의 시작점은 가사입니다. 재즈건 보사노바건 리듬을 붙이는 건 그 다음이죠.” 그는 먼저 노랫말을 랩처럼 무반주로 암송했다. 이윽고 그랜드피아노의 코드가 세월의 심판처럼 ‘쿵!’ 당도하자 말의 잎사귀들은 서둘러 악보의 고목에 걸터앉았다. ‘그의 젊음… 약속으로 가득했지/사랑이 품에 있을 땐/잠 못 드는 밤들을 선사하던….’

‘Les deux guitares’(두 대의 기타)만 한 자기 파괴의 권주가가 있을까. 죽을 만큼 아픈 기억을 지우려 만취한 주인공은 불꽃같은 집시 기타 듀오를 향해 외친다. ‘과음으로 내 숨이 멎을 때까지, 그 소리를 들을 수 없을 때까지 계속, 더, 더! 연주를!’ 파국을 향하듯 아첼레란도(점점 빠르게)로 치닫는 악곡. 아즈나부르는 비틀대며 마이크로부터 멀어졌다.

이어 ‘La Boh’eme’이 시작되자 관객들은 무대 바로 앞쪽으로 몰려나갔다. 노래가 끝난 뒤 아즈나부르는 그들을 향해 땀을 닦은 흰 손수건을 던졌다.― 파리에서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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