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에 총 맞았냐고? '맘충이'도 할 말 있다

신정임 2015. 9. 19.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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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취업 유무로 엄마 편 가르는 정부, 모든 책임 전업맘에 돌리나

[오마이뉴스 신정임 기자]

"뻔한 댓글인 줄 알면서 봤다가 '맘충이'란 말에 저도 모르게 신랑 앞에서 눈물을 보였네요.ㅜㅜ"

살고 있는 지역 맘카페(육아하는 엄마들이 모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댓글이다. '전업 주부, 어린이집 종일반 못 보낸다' 기사를 링크한 게시글에 달린 글이다. 해당 기사를 클릭해 들어가니 댓글이 가관이다.

"밖에서 일하기는 싫고 그렇다고 집에서 애 보는 것도 싫고 마냥 놀고만 싶은 맘충이들의 현실"
"엄마가 집에 있는데 0~2세 아이를 어린이집 보내는 부모도 있어요? 머리에 총 맞았나"
"개념없는 맘충들은 애나 봐라. 아기 던져놓고 카페에서 놀다가 맛집 가서 퍼먹고 놀지 말고"
...

우리도 할 말이 있다

졸지에 나도 '머리에 총 맞은 맘충이'가 돼버렸다. 현재 15개월인 둘째 아이를 어린이집 종일반에 보내고 있다. 글 쓰는 일을 한다. 어디 가면 번지르르하게 '프리랜서'라고 말하지만 4대 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은 나는 정부 기준 상 '무직'에 해당된다. 나뿐만 아니다. 많은 엄마가 생활비라도 보태보겠다고 아이들이 어린이집이나 학교에 가 있는 시간만 부업 등을 하고 있다. 그들 역시 '무직'으로 치부된다. 이번 정부 발표에 따르면, 우리는 아이를 어린이집 종일반에 보낼 수 없다.

어떤 댓글에선 이렇게도 몰아붙인다. "일하기 싫어서 집에 있으면 애나 잘 보라"고. 누가 엄마들이 일하기 싫다고 했나. 평생교육센터에서 독서 교육 관련 강좌를 여러 개 들었다. 독서논술지도사, 방과후지도사, 역사논술지도사, 수학지도사 등 자격증 강좌들은 교실마다 꽉꽉 찬다. 수강생들은 대부분 엄마들이다.

아이 교육 때문에 듣기도 하지만 경력 단절을 딛고 새로운 직업을 찾기 위해 수강하는 엄마들도 많다. 아이를 낳고 아이 육아가 엄마에게만 짐 지어지면서 자의반 타의 반 일을 그만둔 엄마들이 새로운 진로를 모색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교육의 수강은 정부에서 '구직 활동 중'으로 쳐주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낮 시간에 엄마들이 카페에 있는 것도 문제 삼는다. 초등학교 1학년인 아이의 학교 엄마들과 하는 책모임이 두 개다. 평생교육센터에서 만난 엄마들과 독서 교육 스터디 모임도 하고 있다. 나는 책이 좋아서 책 관련 모임을 하고 있지만 배드민턴, 수영 등 운동을 하면서 모임을 갖는 엄마도 많다. 엄마들이 모여서 갈 데는? 별로 없다. 그러니 가까운 카페라도 찾을 수밖에.

 맘충이? 엄마들도 할 말 있다.
ⓒ freeimages
"집에서 애나 보지 왜 밖으로 나도느냐"고 책망한다면 우리도 할 말이 있다. 반 책 모임을 제안한 엄마는 셋째를 낳고 휴직 중인 교사다. 첫 모임 때 그녀가 말했다.

"셋째를 낳고 집에만 있으니까 계속 우울해졌어요.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 책모임을 하자고 했는데 이렇게 응해줘서 정말 고마워요."

모임을 같이 하는 엄마들은 이 엄마에게 주말에 남편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카페에 가서 차라도 한 잔 마시면서 자기 시간을 가지라고 조언한다. 그만큼 엄마들에겐 온전한 '나'를 찾는 시간이 중요하다.

이번 정부의 발표에 엄마들이 상처받은 것도 '나를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는 허탈감'이 컸다. '전업 주부'를 국어사전은 '다른 직업에 종사하지 않고 집안일만 전문으로 하는 주부'로 정의한다. '집안일을 전문'으로 하는 전문가라는 것이다.

사회는 조금도 그렇게 보지 않는다. '전업주부'라고 하면 자연스럽게 "집에서 놀면서"가 따라붙는다. 밥하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아이들 돌보고, 밥하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아이들 챙기고…. 끝없이 되풀이되는 우리들의 노동은 '노는 것'으로 치부된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놀면서 애도 어린이집에 맡긴다고?"가 나온다. 육아가 온전히 엄마의 몫으로 맡기는 순간이다. 그 무게가 전업맘들을 힘들게 한다.

"막상 애 낳고 키우니까 힘 빠지네요"

지난해 한국아동학회지에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전업 유지 엄마의 양육 스트레스 계수가 취업유지 엄마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1월 27일 <뉴시스>는 해당 논문 분석 기사에서 "취업모는 전업맘에 비해 자녀 양육을 위한 사회적 지지를 받는 상황에서 양육에 따른 스트레스가 경감되고 양육 과제에 대한 부담을 덜 지각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사회적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전업맘이 더 육아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취업 유무로 엄마들을 나누면서 '어린이집 종일반 이용 제한'을 들고 나왔다. 정부가 나서서 엄마 사이의 갈등을 조장하고, 스리슬쩍 '0~5세 보육 및 유아 교육 국가 완전 책임제 실현'이라고 밝혔던 지난 대선 공약을 지키지 못하는 책임을 전업맘으로 돌리는 것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정부가 그렇게 가정 보육이 중요하다고 여겼다면 육아의 또 다른 축인 아빠들이 더 적극적으로 아이를 함께 키울 수 있도록 하는 노동 시간 단축 등의 정책을 먼저 제시했어야 한다. 하지만 정부 발표 어디에도 '아빠'는 언급돼 있지 않다. '아이는 엄마가 키우는 것'이라는 전제 하에 마련된 정책 같아 씁쓸하다.

그 사이 전업맘들은 '맘충이' 소리를 들으면서 끝 없이 추락하는 자존감을 부여잡고 있다. 지역 맘카페에 올라온 한 엄마의 하소연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결혼해서 아이 안 낳는 여자들을 보고 김치녀가 어쩌고 출산율이 어떻고 하더니 막상 애 낳고 키우니까 힘 빠지게 하네요. 이러면서 가정 경제를 위해 다시 직장에 나가면 집안일은 제대로 하면서 바깥일 하냐고 지적하겠죠. 여자로, 전업 주부로 사는 거 지치네요. 막말로 나도 출산 전까지 장장 10년 가까이 세금 내며 열심히 일했던 사람인데…. 마치 세금 축내는 벌레 취급을 받으니 화도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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