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리휴가 썼다고 해고 시킬 수 있는 홍콩..우리의 미래될까

입력 2015. 9. 19. 11:36 수정 2015. 9. 19.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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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정 대타협 통과 자유로운 상시 해고 홍콩 전철 밟을 수 있다 경고음

[미디어오늘 이재진 기자]

"한 여직원이 생리를 핑계로 꼭 한달에 하루씩 출근을 하지 않는다. 사장은 탐탁치 않게 여겨 해고를 하고 싶다. 고용계약서에는 이틀을 연달아 쉬어야 의사진단서를 제출하도록 되어 있다. 어떻게 법적 문제 없이 해고할 수 있는 방법이 있나?"

"홍콩은 한국과 달라 특별히 유급 생리휴가제도가 없다. 홍콩에서 생리통을 이유로 휴가를 받으려면 질병으로 간주받아 출근을 안 하는 방도는 있다. 하루를 쉬어도 의사진단서를 갖고 오도록 고용계약서를 바꾸기를 추천한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여자에게 생리휴가제도가 있다고 틀별히 광고할 필요가 없다. 고의적 습관적으로 한달에 하루씩 논다는 증거가 있기 전에는 해고할 수 없지만 정 의심이 나면 사설탐정이나 직원을 보내 조사해보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홍콩 내 한국의 기업 설립을 도와주는 한 회사의 가이드북에 문답형식으로 홍콩의 노동제도를 설명하는 글이다. 단순히 생리를 이유로 휴가를 가는 것을 사업주가 못마땅하게 여겨 해고를 하고 싶은데 고용계약서를 변경하고 탐정까지 고용해 증거를 잡으면 해고할 수 있다는 내용으로 홍콩의 노동현실이 적나라하게 담겨 있다.

노사정이 일반해고 가이드라인과 취업규칙 변경요건 완화를 골자로 한 '대타협안'을 내놓으면서 '자유로운' 해고가 허용된 홍콩 노동 현실을 닮아갈 것이라는 경고음이 나오고 있다.

정부와 경제계는 정당한 이유를 내세운 해고가 가능해지면서 노동유연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분위기다. 반면 노동계는 쉬운 해고를 강제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와 경제계는 일방적으로 강행하지 않고 충분한 협의를 거쳐 추진할 것이라는 단서를 달긴 했지만 노동계는 일반해고 가이드 라인 제정 자체로 사측이 해고 조치를 악용할 소지가 크다고 보고 있다.

MBC 무한도전 화면 갈무리

홍콩은 일반해고가 자유로운 데 반해 부당해고를 구제할 수 있는 장치가 충분치 않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홍콩의 역사를 보면 일반 해고가 가능하게 된 원인이 노동조합의 힘 부재가 원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1980년대 홍콩의 노동조합은 노동자문위원회를 통해 정책참여기회를 부여했지만 최종 결정은 정부의 몫으로 돼있었다. 1997년 이후에는 새 중국 정부가 노동조합의 단체협약권이나 자문권한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고 정부가 노동자를 보호하다는 명목 아래 추진했던 것이 해고나 임금삭감에 대한 가이드 라인이었다.

홍콩의 대표적인 민간 기업인 케세이퍼시픽 항공사의 경우 지난 1990년대 초만 해도 해고나 인원 감축을 하지 않고 재교육을 통해 노동자의 능력을 향상시키는 인사관리지침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를 폐기하고 해고를 단행해 임시직과 계약직으로 채우는 정책을 시행한 바 있다.

이상우 교수(경남대학교 경영학부)는 <거시적 및 기업차원에서의 홍콩 노사관계의 특징 및 변화>라는 글을 통해 "선진국가들의 유연화에 기반을 둔 관리기법은 홍콩 기업 외에도 많은 기업이 채택됐고 홍콩의 경쟁력을 유지하는 자산으로 작동했다"면서도 "하지만 이러한 움직임은 노동의 지위격하라는 비판에 노출되는데, 실제로 노동자 개개인의 직무로부터 높은 스트레스 경험이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홍콩의 노동시장은 사실상 정규직과 비정규직 개념이 없다. 대신 특정기간을 명시하는 형태로 고용계약이 이뤄지고 기간이 만료되면 고용계약이 종결된다.

특히 일반해고 시 노동관계과와 평등기회위원회라는 조직에서 고용계약과 해고 문제 등을 노동자가 문제를 제기하면 노사 합의를 유도하고 분쟁이 해결되지 않으면 노동재판소의 정식 재판소에 회부할 수 있는데 노동분쟁의 건수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주홍콩총영사관이 내놓은 <2015년 청년 해외취업 여건 및 전망>에 따르면 홍콩의 열악한 노동여건은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홍콩은 법적으로 근로시간이 존재하지 않고 평균 근로시간은 1주에 27~49시간이다. 홍콩의 최저임금은 시간당 30달러다. 홍콩은 국민연금과 건강보험 등 4대 보험이 없는 대신 고용주와 고용인이 매달 고용인 보수 5% 해당하는 금액을 납부해 은퇴 후나 개인적 사정에 따라 수령하는 퇴직연금보험과 비슷한 산재보험을 의무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주홍콩영사관은 "홍콩의 노동관련 법규는 1968년 제정된 고용조례이며 해고, 고용계약 종료, 유급휴가, 출산휴가, 장기근속수당 등의 기본적인 사항만 규정"돼 있고 "직원을 해고하자고 할 경우 1개월 사전 통지 또는 1개월분 급여를 사전 지급하면 상시 해고가 가능하고 인력공급이 부족하면 외국에서 쉽게 수입할 수 있기 때문에 홍콩의 근로자들은 해고의 위험에 항시 노출"돼 있다고 전했다. 적당한 이유를 들어 일반해고가 상시적으로 가능하기 때문에 이를 악용하는 사업장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례로 지난 2001년 8월 컨테이너 트럭 운수 노조 위원장은 컨테이너 운송 부문를 대표해 노사정 위원회의 노동자 측 대표로 선출됐는데 해당 부문 사용자 대표로 노조위원장의 사업장 대표가 참가한 뒤 노조위원장을 못마땅하게 여겨 해고 조치하는 일이 벌어졌다. 노동자를 대표해 나온 사람을 사업장 소속의 노동자라는 이유로 해고한 것은 명백한 부당해고로 볼 수 있지만 노동법원은 사용자의 손을 들어줬다.

▲ 14일 오후 2시 한국노총이 서울 여의도 노총회관 6층 대회의실에서 중앙집행위원회의를 진행하는 가운데 일부 산별 노조에서 노사정 합의에 반대하고 나섰다.이치열 기자 truth710@

홍콩의 고용 법령에 노조 차별 행위는 해고로만 정의돼 있어 전출, 진급 거부 등은 차별로 인정하지 않는다. 특히 부당 해고된 노동자가 복직할 때도 사용자와 노동자의 상호 동의가 있어야 하다는 규정 때문에 노조활동으로 인한 부당해고로 판정이 나더라도 사용자가 동의를 하지 않고 벌금만 내면 노동자는 복직할 수 없다고 한다.

노사정 대타협안이 홍콩과 같이 자유로운 해고의 결과로 나타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일반해고를 가능하게 한 지침을 정하는 순간 사용자가 해고시킬 수 있는 권한만 확대돼 무기로 악용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지난 8월 한국노동연구원이 발표한 '공정한 인사평가에 기초한 합리적인 인사관리'라는 자료를 보면 향후 일반해고 가이드라인의 윤곽을 예상할 수 있다. 노동연구원은 수년간 인사평가에서 낮은 등급을 받은 노동자가 업무능력 향상 프로그램을 이수했는데도 나아지지 않으면 해고가 적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노동계는 이에 대해 인사발령 권한을 가지고 있는 사측이 노조활동을 하는 등 눈엣가시같은 인물을 비숙련 업무에 맡기고 저성과자가 되면 해고하는 수순을 밟게 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현재 사용자는 근로자에게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 정직 등을 하지 못한다고 규정돼 있는데 노사정 대타협안이 법으로 개정되면서 사측이 일방적이고 주관적으로 '정당한 이유'를 만들어 해고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홍콩에서 부당해고로 볼 수 있는 사안인데도 손쉽게 해고를 시키는 것처럼 한국도 이번 노사정 대타협안 통과되면 사측이 해고 회피 노력을 기울이기보다 '정당한' 이유를 만드는데 골몰해 일단 해고부터 해버리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홍콩 사정에 밝은 전명윤씨는 "홍콩은 일반 해고제를 만든 다음 공공부문 노조에 대한 단체협약권을 해제했다. 경제 자유도 1위라고 자본과 조중동이 찬양하는 홍콩의 최저임금은 우리보다 낮다. 그게 경제 자유의 진실"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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