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유히 커피 마시는 전업맘? 또 '편 가르기'인가

이희동 2015. 9. 18.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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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 칼럼] 직장맘 vs. 전업맘 대결 조장하는 정부

[오마이뉴스 이희동 기자]

무상보육의 포기

지난 13일 보건복지부는 내년 7월부터 0~2세 자녀를 둔 가정에서 어린이집 종일반을 이용할 경우 필요한 증명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는 직장맘이나 구직 중에 있는 여성이라도 보육 서비스가 반드시 필요한 사유를 증명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전업 주부의 경우에는 어린이집을 6~8시간 동안만 무상으로 이용할 수 있고, 그 이후로는 추가 비용을 부담하게 되었다. 

정부는 종일 보육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을 한부모 가정, 맞벌이 가정, 구직·취업 준비, 장애·질병, 자녀가 3명 이상 또는 영유아 자녀가 2명 이상, 임신, 생계급여 수급자, 매월 60시간 이상 자원봉사 실적이 있는 사람 등으로만 한정 지었다. 이는 지난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의 공약과 비교해 후퇴한 결과물이다. 결국 정부가 무상 보육 공약을 실질적으로 포기한 것이다(관련 기사 : 박근혜 정부의 일관된 무상보육 '분할통치').

정부가 이와 같은 결정을 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보인다. 이미 대선 당시에도 많은 이가 지적했듯 무상보육 등의 복지 확충을 위해서는 그만큼 세수를 확보해야 하는데, 정부는 그동안 거의 맹목적으로 증세 반대를 외쳐왔기 때문이다. 증세를 하느니 지하 경제를 양성화해 부족한 예산을 채우겠다던 그들.

결국 정부의 예상은 빗나갔고, 담배 가격 인상 등의 꼼수에도 현 정부는 재정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경기 부양만 되면 재정 건전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어쩔 수 없는 저성장 시대에 그것은 장밋빛 환상일 뿐이다.

그럼 이젠 정부가 증세를 할까? 아니,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 어쨌든 증세는 이 정권 핵심 지지 세력들의 이탈을 가져올 수 있으며, 이제는 감세 자체가 보수 정권의 철학이요, 이데올로기가 돼버렸기 때문이다. 증세를 말하기만 해도 정부는 '빨간색' 덧칠을 하지 않았던가.

따라서 이번 정부의 무상 보육 조정은 당연한 수순이다. 복지비야말로 현 기득권 세력의 이해관계에 있어서 가장 상관 없는, 하지만 포퓰리즘(대중 영합주의)으로 몰아갈 수 있는 만만한 항목이다. 그 중에서도 무상보육은 일부, 특히 현 정권에 비교적 우호적이지 않은 세대 일부에게 혜택이 가는 예산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정부가 공약 파기에 대한 사과 한 번 없이 이렇게 뻔뻔하게 정책을 밀어 붙일 수밖에.

임기 초 노인기초연금 철회를 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나와 사과했던 장면을 기억하는가? 현재 정부는 그 정도의 체면치레도 없이 무상보육 파기를 일방적으로 선언하고 나선 것이다.

편견을 재생산하는 정부

심각한 건 정부가 무상보육을 파기하는 방식이다. 차라리 예산이 부족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국민을 설득하면 그나마 나을 텐데, 정부는 그 대신 사회의 고정 관념에 기대 자신들을 합리화하고 있다.

"전업 주부가 불필요하게 어린이집을 이용하는 수요를 줄이겠다. 0~2세 영아는 엄마가 직접 돌보는 것이 좋다." -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

"(보육 서비스는) 필요한 곳에 (집중적으로) 제공하는 게 맞다... 아이들한테도 과잉(장시간 어린이집 보육)은 바람직하지 않다." - 이기일 보건복지부 보육정책관

위의 발언들은 결국 현 정부가 보육 문제를 그리고 여성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그들은 보육을 국가의 책임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가정과 개인의 몫이라 여기며, 그 중에서도 특히 '전업맘'이라 불리는 가정 주부의 몫으로 생각한다. 비록 대선 때는 보육을 국가의 의무라고 이야기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선거용일 뿐, 여자는 집에서 애만 보면 된다는 오랜 편견이 여전히 정부 정책의 기본이 되고 있다.

이 편견은 사회적으로 재생산 된다. 최근 온라인에서는 아이를 키우는 여성을 폄훼하는 의미로 '맘충'이라는 말이 확산돼 논란이 되고 있다. 보육비와 관련한 기사에 유독 '맘충'과 관련된 댓글이 넘쳐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여성과 보육에 대한 고정 관념이 정부의 정책과 맞물려 21세기 버전으로 새롭게 고착화 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그와 같은 편견에 기반을 둔 정부 정책이 과연 옳느냐는 것이다. 물론 많은 가정에서 여성들이 가사를 맡고 있지만, 그것이 '여성은 당연히 가사 전담을 해야 한다'는 당위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많은 여성이 사회 진출 대신 가사 일을 하는 것은 무엇보다 사회 구조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부 여성들은 정부가 요구하는 재직 증명서를 뗄 수 있는 여건도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소위 '꺾기(편집자 주 : 손님이 없다는 이유로 늦게 출근하거나 일찍 퇴근하는 강제조퇴를 일컫는 말)' 등의 편법이 횡행하는 사회에서 불규칙적으로 일하는 주부들도 많기 때문이다.

정부 담당자는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내 놓고 카페에서 유유히 커피를 마시며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는 전업 주부들을 상상했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일부일 뿐이다. 실제 많은 전업 주부는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낸 뒤에도 전쟁 같은 일상을 보낸다. 현재 한국 사회는 그렇게 여유롭지 않다.

직장맘 vs. 전업맘

정부의 이번 시책이 불편한 또 다른 이유는 그것이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는 편 가르기식으로 펼쳐졌기 때문이다.

결국 이번 사태는 정부가 쓸 데 없는 곳에 예산을 낭비하거나 혹은 예산 자체를 잘못 산정해서 벌어진 일이다. 하지만 오히려 정부는 마치 '전업맘'이 어린이집을 과잉 이용해서 '직장맘'이 피해를 본다는 식으로 전달해 화살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대통령의 대선 공약대로 국공립 어린이집을 확충하고 그만큼의 교육의 질을 담보했더라면 애초에 벌어질 수 없는 문제를 두 집단 간의 대립으로 귀결해버린 것이다.

덕분에 현재 직장맘과 전업맘으로 대표되는 두 집단의 찬반 논쟁이 온라인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지원의 차등화로 절감된 예산은 어린이집 보육의 질을 높인다며 정부의 시책을 지지하는 이들과 모든 국민은 평등하게 정책의 수혜를 받아야 한다는 이들이 팽팽히 맞섰다. 그 논쟁은 다분히 소모적이다.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정부의 이 같은 이간질이 이번 사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현 정부는 정권 초부터 불리한 정국을 타개할 때마다 편 가르기식의 방법을 구사해 왔다. 현 정부가 국정을 운영하는 것을 보면 마치 20세기 초 제국주의가 식민지를 지배할 때 내부를 분열해 자신에게 유리한 집단을 길러 냈던 모습이 떠오른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노동 개혁 역시 같은 맥락이다. 정부는 재벌 금고에 쌓인 유보금을 꺼내 새로운 일자리를 만드는 대신 40~50대의 일자리를 청년들에게 나눠 주라고 이야기한다. 노동 문제를 청년-장년 세대 갈등으로 몰아감으로써 '노동'이라는 단어를 선점하는 동시에, 자신들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두 집단 간의 갈등을 촉진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정부의 편 가르기는 사회적으로 적지 않은 문제를 일으킨다. 비록 민주주의가 다양한 계층이 다양한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이라고는 하지만 이렇게 일부 세력의 필요에 의해 작위적으로 조장된 갈등은 오히려 치유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우리는 극심한 지역 갈등을 통해 이미 그 폐해를 경험했다.

정부는 부디 더 이상의 편 가르기를 중단하기 바란다. 이번 무상보육을 둘러싼 문제에 대해서도 좀 더 본질적인 부분을 이야기하길 바란다. 수십 조가 강바닥에 처박히는 말도 안 되는 현실 앞에서 그 1%도 되지 않는 돈을 아끼기 위해 전업맘들이 무상보육을 포기해야 한다면 과연 누가 이 땅에서 마음 놓고 아이를 낳을 수 있겠는가. 저출산이야말로 현재 대한민국의 가장 시급한 문제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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