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원 박사의 CSI 파일]성(姓)도 주소도 같았던 성폭행 피해자와 용의자

박기원 입력 2015. 9. 12. 11:39 수정 2015. 9. 12.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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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간 사건 피해자와 용의자 남성 1명의 구강상피세포를 각각 채취한 면봉, 그리고 낙태시킨 후 채취한 태아의 조직이 의뢰되었다. 성폭행 범인을 밝히기 위해, 피해자와 용의자 남성 그리고 태아의 조직 사이에 친생자 관계가 성립되는지 밝혀달라는 것이었다. 피해자는 정신지체 장애인으로, 강간당한 후 임신한 것으로 밝혀졌다. 자신이 임신한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가 배가 불러오자 임신 사실을 알고 낙태했다.

처음에는 일반 성폭행 사건인 것으로 알았다. 한데, 감정 의뢰서를 읽어 내려가면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피해자와 용의자의 성씨가 같을 뿐만 아니라 주소도 같은 것이었다. 성씨는 우연히 같을 수도 있지만 주소가 같다는 것은 이상하지 않은가? 피해자와 같은 곳에 사는 사람?

너무나 이상하여 서류를 작성하다가 실수로 주소를 잘못 복사하여 붙인 것으로 생각했다. 확실하게 할 필요가 있어 해당 경찰서 사건 담당자에게 전화를 했다. 하지만 담당 수사관의 대답은 나의 귀를 의심하게 했다. 주소도 같은 것이 맞고 성씨도 같은 것이 맞다고 했다. 확인 결과 용의자는 다름아닌 피해자의 아버지였다. 그럼 아버지가 딸을 강간? 도대체 무슨 사건일까? 가늠이 되지 않았다. 정신지체 장애인인 딸을 아버지가 어떻게 강간할 수 있단 말인가!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머리가 얼얼하여 실험에 들어가기 전부터 혼란스러웠다.

피해자에 대한 수사도 이루어졌다. 피해자는 정확하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진술의 일관성도 떨어졌다. 수사관의 물음에 처음에는 다른 사람이 몰래 집으로 들어와 ‘그 짓’을 해서 자신도 좋아서 했다는 등 횡설수설했다. 하지만 수사관의 설득 끝에 피해자는 하나하나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그가 지능이 떨어져서 횡설수설하거나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진술은 충격적이었다. 결국 참았던 눈물을 흘리며 어눌한 말로 과거에 있었던 사실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이 자신을 그렇게 했다는 것은 다 거짓말이고, 오래 전부터 아버지가 자신을 계속 성폭행했다는 것이었다. 자신은 아버지의 강압에 못 이겨 그 짓을 계속했다고 했다. 그래서 아기도 아버지와 자신 사이에서 생긴 것 같다는 얘기였다. 아버지가 자신이 낳은 정신지체 장애인 딸을 성폭행한 것이었다.

증거물이 의뢰되고 얼마 후 유전자분석 결과가 나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진술과는 달리 피해자 아버지와 태아 사이에는 친자관계가 성립되지 않았다. 피해자와 태아는 친자관계가 성립했다. 이게 어떻게 된 것일까? 한편으로는 다행스럽기도 했다. 즉, 딸이 임신했던 것은 맞지만 아버지와의 사이에서 임신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지. 설마 아버지가 딸을, 그것도 정신지체인 딸을 강간했으려고.” 이렇게 생각하며 결과를 통보했다. 결과를 통보받은 수사관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피해자의 인지 능력이 떨어짐을 감안하더라도 일관성 있게 진술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된 것일까?

사건이 미궁에 빠지는 듯했다. 처음부터 다시 수사가 진행됐다. 아버지는 처음과는 달리 자신의 범행을 완강하게 부인했다. 주변 인물이 범인일 가능성을 열어 두고 차분하게 주변에 대한 조사를 진행해 나갔다. 우선, 용의자였던 아버지의 아들이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아들을 조사했다.

수사관은 아들에게 아버지가 그런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아들은 아버지가 그런 것을 본 적도 없고, 자신도 그런 적이 없다고 했다. 자신의 범행에 대해서는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아들이 “내가 안 했다”고 부인하는 모습을 보며 수사관은 이상하게 생각했다. 조사를 하는 내내 그의 행동을 눈여겨봤다. 조사가 끝난 뒤 아들을 돌려보내고, 혹시 몰라 그가 썼던 종이컵을 연구원에 보내 친자관계가 성립되는지 분석을 의뢰했다.

컵에서 검출된 유전자형과 태아 사이에 친자관계가 성립되는지 검사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아들의 유전자형과 태아 사이의 친자관계가 성립되는 것이었다. 이 결과를 담당자에게 통보하고, 정식으로 아들의 구강 세포를 채취해 의뢰하라고 했다. 아들의 구강상피세포를 분석한 결과도 당연히 마찬가지였다.

태아의 아버지는 피해자의 오빠였던 것이었다. 정말로 이게 있을 수 있는 일인가? 너무나 기가 막혔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수사 결과 아버지도 성폭행을 했다는 사실이 나중에 밝혀진 것이었다. 아버지와 아들이 번갈아 가며 성폭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피해자는 처음엔 반항했으나 점차 자포자기 상태에 빠졌던 것으로 밝혀졌다. 가족을 보호해야 할 사람들이 짐승이 되어 성폭행을 한 것이다. 생각하기도 싫을 만큼 너무나 가슴아픈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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