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은 국감 성적 순 아니잖아요

윤호우 선임기자 2015. 9. 12.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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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감 우수 의원들 ‘생환율’이 평균 의원 ‘생환율’과 비슷

국정감사가 9월 10일 시작됐다. 하지만 여의도 국회의 분위기는 예년의 국감과 사뭇 다르다. 메르스, 롯데 사태, 역사교과서 국정화, 국정원 해킹 의혹, 노동개혁, 한·중 FTA 등 국감 이슈들이 잔뜩 쌓여 있지만 분위기는 첫날부터 이미 식어버렸다. 국감에 나서는 의원들의 마음은 콩밭에 가 있다. 콩밭은 바로 지역구다. 내년 4월 총선이 바로 코앞에 바싹 다가와 있기 때문이다.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새정치민주연합 국정감사종합상황실 현판식에서 참석자들이 박수를 치고 있다. 왼쪽부터 이춘석 원내수석부대표, 최재천 정책위의장, 이종걸 원내대표, 문재인 대표, 이석현 국회부의장, 안민석 의원, 이언주 원내대변인.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새정치민주연합 ㄱ의원실의 ㄴ보좌관은 올해 초부터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근무하지 않았다. ㄱ의원이 내년 총선에 출마하기로 점 찍은 지역구에서 활동을 하고 있었다. 국회 의원회관에는 일주일마다 한 번 열리는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올 뿐이었다. 그런데 국정감사를 앞두고 갑자기 국회 의원회관으로 호출됐다. 당장 국정감사를 준비하라는 ㄱ의원의 요청 때문이었다. ㄴ보좌관은 “정부 기관에 자료를 요청해야 하는데, 지역구에 있느라 현안을 챙기지 못한 탓에 어떤 자료를 요청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좋은 국감거리가 있으면 조언을 부탁한다”고 말했다.

예년 같으면 국감 성적을 내기 위해 몇달 동안 사전준비를 해왔지만 올해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 ㄴ보좌관의 하소연이다. 또 다른 새정치민주연합의 ㄷ의원실은 지난해 2명의 보좌관이 국정감사를 준비했지만 올해에는 한 명의 보좌관이 아예 지역구에 상주하고 있다. 한 명의 보좌관과 나머지 보좌진들이 국감을 준비하고 있다. 당연히 지난해보다 국정감사 준비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

국감 스타의 낙선 사례 비일비재국감철이 되면 기자들은 각 의원실에서 국감자료를 받아 단독기사를 만든다. 새정치민주연합 ㄹ의원실의 ㅁ보좌관을 만나 국감자료 중 기사가 될 만한 거리를 요청했다. ㅁ보좌관은 “이번 국감은 그런 거리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국감을 독려해야 할 ㄹ의원은 의원실에 없었다. 지역구에 내려가 있다고 했다. ㅁ보좌관은 “혁신위 안에 보면 당내 공천에서 현역의원의 의정활동과 공약 이행 평가점수를 35% 반영한다고 돼 있지만 국감에 국한해 보면 얼마 되지도 않는다”며 “국감을 제대로 해야 할지 아니면 지역구 활동에 힘을 쏟아야 할지 종잡을 수 없다”고 말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ㅂ보좌관은 “국감도 준비해야 하지만 당내 사정이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기 때문에 의원들은 물론 보좌진들도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국감이 시작되기 전날인 9일 문재인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재신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비주류인 비노 의원들은 이 같은 주장에 반발했다. 비노 의원들은 조기 전당대회를 통해 재신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새정치연합 의원들의 관심은 국감이 아니라 온통 당대표의 재신임 발언에 쏠렸다. 총선 때 당대표가 누구인지에 따라 현역의원의 공천이 사실상 결정될 수 있기 때문에 의원들로서는 당내문제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일부 의원이 국감에 집중해 민생을 챙기자는 말을 꺼냈지만 문 대표는 재신임 투표를 강행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9월 13~15일 사흘 동안 전 당원 ARS투표와 국민여론조사를 통해 재신임 투표를 실시한다고 11일 밝혔다. 이렇게 되면 친노와 비노 간의 일대 격돌로 국감 이슈는 자연스럽게 뒤로 밀리게 된다. 11일 확대간부회의에서 이종걸 원내대표는 “국감은 야당의 보물이자 일년 농사”라며 “야당 스스로 포기하는 듯한 행동은 자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올해 국감 분위기에 김이 빠진 것은 야당 때문만이 아니다. 여당도 거의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다. 새누리당 TK(대구·경북)지역 ㅅ의원실의 ㅇ보좌관은 국감이 아니라 TV에서 보도되는 뉴스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종편 뉴스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의 지난 7일 대구 방문에 대한 여러 가지 해석을 내놓았다. 박 대통령과 유승민 전 원내대표가 갈등을 일으키고 있을 때 청와대 편을 들지 않은 의원들의 이름이 거론됐다. ㅇ보좌관은 “국정감사를 해야 하는데 자료가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말했다. ㅇ보좌관은 “TK지역 의원들이 배신자로 낙인 찍힌 데다 청와대에서 누구 누구가 TK지역구로 출마한다고 하는 마당에 국감이 제대로 눈에 들어오겠느냐”고 하소연했다.

그나마 국감에 진력하고 있는 의원실에서도 국감이 과연 내년 총선에 도움이 될까라는 질문에는 의문부호를 달았다. 새누리당의 ㅈ의원은 국정감사가 시작되기도 전에 한 건을 올렸다. ㅈ의원실의 ㅊ보좌관이 한 제보자의 이야기를 토대로 해당 기관에 국정감사 자료를 요청했다. 제보는 사실로 드러났고, ㅈ의원은 그 자료를 방송에 제공해 ㅈ의원의 인터뷰가 실렸다. 방송에 나가자마자 이 기사는 다른 언론사에서도 받아 보도할 정도로 파급력이 컸다. “국감에서 한 건 했으니 당내 공천에 유리하겠다”는 이야기에 ㅊ보좌관은 “공천과는 아무 관련이 없을 것”이라며 고개를 흔들었다. 새누리당의 내년 총선 공천안은 국민공천제(오픈 프라이머리)다. 올해 국감의 성적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국감은 국회에서는 한 해 농사에 비유된다. 의원들이나 보좌진들의 능력이 국감에서 어떤 실적을 거두느냐는 것으로 평가된다. 의원들은 국감 성적에 민감해진다. 때문에 국감 우수의원으로 선정되기를 고대한다. 당 원내대표실에서 주는 상뿐만 아니라 시민단체에서 우수의원으로 선정되면 지역구에 뿌리는 의정활동 보고서에 이 사실을 명기해 자랑거리로 내놓는다.

하지만 국감 성적이 총선 결과와 비례하지 않는다. 2008~2012년까지 18대 국회의원 299명 가운데 4년 연속 경실련의 국감 우수의원으로 뽑힌 의원은 이용섭(민주당)·최영희(민주당)·강기갑(민주노동당) 전 의원 등 3명이었다. 이들 세 명 모두는 현직 의원이 아니다. 19대 총선에서는 이용섭 전 의원만이 당선됐으나 이 전 의원은 지자체 단체장에 출마하기 위해 의원직을 사임했다. 18대 국회의 마지막 국감인 2011년 국감에서 경실련 선정 우수의원으로 선정된 의원은 모두 18명이었다. 이 중 8명(44.4%)만이 19대 국회에 당선됐다.

의정보고서 쓸 때만 자랑거리로 필요법률소비자연맹 총본부가 펴낸 <제18대 국회 국회의정 총백서>에 따르면 18대 국회의원 기간 내내 4년 연속 국감NGO모니터단의 우수의원상을 수상한 의원은 모두 17명이었다. 김성식·김옥이·김재윤·김충조·김효석·박병석·박선숙·이명수·이성헌·이용섭·이진복·장윤석·전병헌·전현희·정희수·최연희·최인기 당시 의원(가나다순)이 4년 연속 국감 우수의원상을 받았다. 이 중 19대 총선에서 다시 당선된 의원은 8명(47.0%)에 그쳤고, 이용섭 전 의원이 지자체 단체장 출마로 의원직을 사퇴하면서 지금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의원은 7명에 불과하다. 국감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쳐도 절반 이하만 총선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18대 전체 국회의원 중 19대 국회에 살아 돌아온 의원은 116명으로, 38.8%의 ‘생환율’을 보였다. 국감 우수의원들의 ‘생환율’이 평균 의원의 ‘생환율’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 홍영표 의원(재선)은 “시민단체로부터 훌륭한 국감 성적을 받는 것은 의정보고서를 쓰는 데 도움이 될 뿐 당내 공천이나 총선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홍 의원은 “지난해 산자위 국감에서 야당 의원들이 자원외교 문제를 집중적으로 부각해 국정조사특위까지 이끌어낸 것과 같이 올해 국감에서 메가 이슈를 꺼낸다면 모를까, 국감 성적이 의원들의 총선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윤호우 선임기자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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