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교과서 집필 기준 연구진 전원 "국정화 안 된다"

"특정 역사 인식 제시하려는 것"새 기준 발표 공청회 도중 성명국사편찬위원장 "공식 입장 아니다"

새 한국사 교과서의 집필 기준을 만드는 학자와 교사들이 11일 ‘국정화 반대 입장’을 발표했다. 국가기관인 국사편찬위원회(국편)의 의뢰를 받아 한국사 교과서 집필 방향을 만들어온 이들이다.

교육부는 이달 말 발표하는 ‘2015 개정 교육과정’에 맞춰 집필 기준을 개발해줄 것을 지난 6월 국편에 의뢰했었다. 최근까지 역사 전공 교수·교사들이 ‘국정화 반대’ 성명을 내왔지만 교과서와 관련된 작업에 참여한 학자·교사가 공개적으로 입장을 낸 것은 처음이다.

　이날 의견을 낸 이들은 임기환(서울교대)·박재우(성균관대)·강석화(경인교대)·최병택(공주교대)·김수자(이화여대) 교수 등 5명과 중·고교 국사 교사 3명이다. ‘역사과 편찬 준거(집필 기준) 개발 연구진’ 13명 중에서 한국사를 담당하는 8명 전원이다.

　이들은 이날 경기도 과천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새 집필 기준을 발표하는 공청회의 휴식 시간에 ‘국정화 반대’ 의견서를 공개했다. 의견서에 “국정화에 반대한다. 역사 교과서가 국정 발행제로 회귀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에 걱정과 고심을 거듭했다. 검정 교과서 발행을 위한 기준점이라고 할 수 있는 집필 기준이 사실상 제 기능을 못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썼다. 이어 “국정화 논의를 돌아볼 때 아직 통설로 자리 잡지 못한 견해나 특정한 역사 인식을 교육 현장에 제시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국정 발행 체제를 고려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적지 않다”고 밝혔다.

또 “국정 발행 체제를 주장하는 입장에선 학생들에게 정확한 사실이 전달되지 못하거나 왜곡되고 편향된 해석을 강요받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이를 막기 위해 저희 연구진은 교육부·국사편찬위원회와 협조하면서 올바른 집필 기준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강석화 교수는 “우리가 집필 기준을 준비한 것은 검인정 교과서를 위해서였다. 교과서가 국정으로 전환되는 것을 예상했다면 처음부터 연구진에서 빠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병택 교수는 “우리가 만든 기준안이 검정 교과서에 제대로 쓰일 수 있게 하려고 입장을 낸 것”이라고 밝혔다.

　연구진이 이날 발표한 내용은 이전의 집필 기준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6·25전쟁이 북한의 불법 남침으로 일어났음을 밝힌다’ ‘대한민국 정부는 3·1운동·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신과 법통을 계승하였음을 설명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북한의 3대 세습, 핵문제, 군사 도발(천안함 피격사건, 연평도 포격 도발사건 등) 등 최근 북한의 동향에 대해 유의한다”는 내용을 넣어 천안함·연평도 사건 등을 교과서에 담을 것도 제시했다.

　국편이 뽑은 연구진이 ‘국정화 반대’ 의견을 명백히 밝힘에 따라 ‘교과서 국정화 반대’ 움직임이 더욱 힘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국편은 1946년 창설돼 사료 수집·편찬과 국사 보급을 주관해 오고 있다. 김정배 고려대 명예교수가 지난 3월에 위원장을 맡는 등 사학계의 원로가 책임자 자리를 지켜왔다.

　김 위원장은 공청회 직후 본지와의 통화에서 “위원장으로서 공청회 시작에 ‘국정화 여부 결정은 교육부 소관으로 국편과는 무관하다’고도 밝혔는데 일부 연구진이 의견을 발표해 당황스럽다. 일부 연구진의 의견은 국편의 공식적 입장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지난 10일 교육부 국정감사에서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하나의 교과서로 학생을 가르쳐야 한다는 게 소신”이라고 밝혔다.

성시윤·백민경 기자 sung.siy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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