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도 아일란 2만명.. 보호 사각지대서 '소리없는 절규'

안아람 정지용 2015. 9. 6.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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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한국 & 한국인] 난민 사태로 본 우리의 슬픈 자화상

부모 불법체류자 신분 국적 취득 못해

건강보험·교육 등 기본 인권마저 배제

이자스민 '이주아동권리법' 대표 발의

일부 시민단체 "세금 낭비" 비난 쇄도

소위 상정도 못해 폐기 가능성 높아

해안가 모래에 얼굴을 파묻고 숨진 시리아 꼬마 난민 아일란 쿠르디(3)의 마지막 모습은 전 세계에 깊은 슬픔과 충격을 줬다. 우리나라에서도 수많은 이들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아일란의 사진을 공유했고 추모 글로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도 '아일란'은 있다. 6일 이주아동권리보장기본법제정 추진네트워크에 따르면 한국에 체류 중인 19세 이하 외국인은 9만727명으로 이 가운데 등록이 안 돼 무국적 상태인 청소년은 2만명에 이른다. 대부분 불법체류자나 난민신청자의 자녀로 이들은 부모의 국적도, 한국 국적도 갖지 못해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베트남인 A씨는 2013년 임신한 지 넉 달 만에 불법체류자가 됐다. 한국 국적 취득을 위해 아이를 등록하면 자신까지 강제 송환될 것이란 걱정에 아이만 베트남으로 돌려 보내려 했지만, 브로커가 요구하는 수백만원을 감당할 수 없어 결국 경기도의 한 아동보호소에 몰래 버렸다. 국내법상 고아에게는 한국 국적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A씨는 아이의 미래를 위해 지금도 만나지 않고 있다. 2007년 콩고 내전을 피해 한국에 온 난민신청자 B씨도 이 곳에서 두 자녀를 낳았으나 아이들은 '무국적 아동'으로 살고 있다. 천식을 앓는 아들의 병원비는 매달 100만원. 하지만 건강보험 혜택을 받지 못해 아예 치료를 포기했다. 안은주 이주노동희망센터 국제협력팀장은 "미등록 무국적 아동들은 취학 여부가 학교장 재량에 따라 결정되고 설령 학교를 졸업하더라도 공식 증명서를 받지 못한다"며 "부모가 미등록 외국인이라 각종 예방접종 등 의료 서비스에서 제외된다"고 설명했다.

새누리당 이자스민 의원은 지난해 12월 이들처럼 부모가 난민이거나 불법체류자 신분이어서 비참한 삶을 살아가는 아동들의 인권을 위해 '이주아동권리보장기본법'을 대표 발의했다. 한국에서 태어난 불법체류자ㆍ난민의 아이들을 출생 등록할 수 있도록 하고, 5년 이상 한국에서 거주한 경우 학교 교육과 최소한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내용이다. 단, 악의적으로 불법 체류하거나 범죄경력이 있는 불법체류자와 그 자녀는 이 법의 보호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법안을 발의하는 일조차 쉽지 않았다. 동료 의원들에게 발의 협조를 요청했지만 호응이 거의 없었다. 이 의원이 보름 동안 직접 발품을 팔며 법안 취지와 내용을 설명하고 동참을 호소한 끝에 22명을 겨우 끌어 모을 수 있었다. 법안이 발의된 뒤에도 일부 보수 시민단체는 일간지에 법안에 반대하는 전면광고를 실었다. 또 발의 명단에 이름을 올린 의원실에는 항의전화가 쇄도했다. 법안이 불법체류자를 양산하고 세금 한 푼 안 내는 외국인을 위해 혈세를 낭비한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힘겹게 발의된 법안은 현재 법제사법위원회 소위원회에 상정조차 안 돼 책상 서랍에서 먼지만 쌓이고 있다. 곧 다가올 국정감사와 내년 4월 총선을 감안하면 19대 국회가 일할 수 있는 기간은 올해 정기국회가 마지막이라 이대로라면 법안이 폐기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전문가들은 정작 한국 사회의 아일란들에게는 눈감는 씁쓸한 자화상이라고 꼬집는다. 이자스민 의원은 "정부가 미등록 이주아동을 관리하는 차원에서도 필요한 법안인데 무조건 외국인지원법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팽배하다"며 "아일란의 비극을 계기로 주변의 이주아동에게도 따뜻한 위로를 건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상학 한양대 사회학과 교수는 "자신과 직ㆍ간접적으로 연관이 없는 '아일란'에게는 감정이입을 하지만 이해관계가 겹치는 불법체류자ㆍ난민 문제에는 경계 심리가 작용하는 것"이라며 "우선 인도주의 명분을 내세워 법안을 만든 뒤 현실적 여건을 고려해 지원책을 개선해 나가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안아람기자 oneshot@hankookilbo.com

정지용기자 cdragon2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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