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받아 신혼집 해달라"..부모·자식 간 '결혼전쟁'

이원광 기자 입력 2015. 8. 31. 05:41 수정 2015. 8. 31. 0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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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전쟁①] 주거난 심화에 금가는 '천륜'

[머니투데이 이원광 기자] [편집자주] 우리 경제가 고도 성장을 멈추고 장기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었다. 20~30대 청년층의 경제적 독립은 갈수록 어려워져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 '삼포세대'가 그들의 또 다른 이름이 됐다. 간신히 바늘구멍 같은 취업문을 통과하고 가정을 이루려고 하면 주거불안이 또 다시 이들을 가로막는다. 노후준비를 미루고 자녀 교육에 아낌 없이 투자했던 부모들은 한숨 돌릴 새도 없이 결혼할 자녀의 '집 걱정'에 매달려야 한다. 사상 최악의 주거난에 결혼 보금자리를 마련해야 하는 자녀와 노후를 포기해야 하는 부모 간 '천륜싸움'으로 변질되는 슬픈 현실을 들여다봤다.

[[결혼전쟁①] 주거난 심화에 금가는 '천륜']

한 예비 신혼부부가 전시된 드레스를 보고 있다.(위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 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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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38)는 올해 결혼을 앞두고 고민에 빠졌다. 7년차 직장인이지만, 서울 시내 신혼집을 장만하기가 여의치 않아서다. 평생 대출 이자만 갚을 걱정에 섣불리 금융권을 찾을 수도 없었다.

결국 부모님께 도움을 요청했으나, 부모님은 "우리도 이 집밖에 남은 게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A씨는 현재 부모님이 사는 집을 담보로 대출 받아줄 것을 부탁했으나, 이마저도 거절당했다.

낙심한 A씨는 자기도 모르게 고성을 지르고 그릇을 집어던졌다. 충격을 받은 A씨 어머니는 아들을 피해 거실에 나오길 꺼려하고 있는 상태. A씨 어머니는 "나도 형편이 되면 왜 안 해주고 싶겠나"라며 한숨지었다.

#B씨(58·여)는 오는 10월 결혼할 아들(33)을 위해 소유 중인 경기 부천의 오피스텔을 건네기로 마음먹었다. 최근 신혼부부 결혼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소식을 들은 B씨는 "아들이 은행에 빚 지느니 차라리 빌려주자"고 판단한 것.

그러나 아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모 대학에서 근무하는 그는 "서울이 아니면 직장생활하기 어렵다"며 "미리 유산 준다고 생각하고 아파트를 해 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B씨는 결혼 문제를 앞두고 돌변한 아들을 바라보며 낙심했다. B씨는 "혹시 며느리가 시키는 건지 모르겠다"며 "아들도, 며느리도 좋게 보이지 않는다"고 고개를 떨궜다.

최근 신혼집을 둘러싸고 부모·자식 간 일명 '결혼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신접살림에 어려움을 겪는 자식들이 이를 부모에게 요구하면서, 과거 혼수와 예단 등을 두고 집안 간 벌어졌던 기 싸움이 집안 내 싸움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

이 같은 결혼 전쟁의 배경에는 임금 수준에 비해 턱 없이 높은 주거비용이 있다는 분석이다. 결혼컨설팅업체 듀오웨드에 따르면 최근 2년 사이 결혼한 부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평균 결혼자금은 2억3798만원(남성 1억5231만원·여성 8567만원)으로, 전체 70%에 달하는 1억6835만원이 주거비용으로 사용됐다.

이 비용은 20~30대 임금 수준과 비교하면 터무니없이 높다. 고용노동부의 임금근로시간 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013년 20대와 30~34세 남성 근로자 중위값 50%의 평균 연봉은 각각 2484만원과 3279만원으로 파악됐다. 여성 근로자 중위값 평균은 20대가 2352만원, 30~34세가 2922만원이었다.

결국 20대 남성의 경우 부모 도움 없이 신혼집을 포함한 결혼 비용을 충당하려면 한 푼도 쓰지 않고 평균 6.1년 동안 월급을 모아야 한다. 한국고용정보원 조사결과 2012년 남성 신입사원 평균연령이 33.2세(여성 28.6세)임을 고려하면, 39세가 돼야 결혼이 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정부는 하루가 멀다 하고 결혼·출산 대책을 발표하고 있지만 구조적으로 20대 결혼은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결혼전쟁은 개인적 문제를 넘어 '주거 절벽'이라는 사회적 문제로 봐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부모·자식 세대가 극복할 수 없는 한계 앞에서 서로를 열등생으로 만들고 갈등을 벌인다는 것.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청년들의 평균 임금에 비해 집값이 턱 없이 높아 어렵게 취직을 해도 번듯한 신혼집을 마련하려면 어려움을 겪는다"며 "결국 금융기관에 빚을 지거나, 이마저도 안 되는 이들은 부모에게 손을 벌리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황미구 전문심리상담센터 헬로스마일 원장은 "중산층 생활이 담보되지 않은 오늘날, 자식들은 계층 하락 걱정에 부모에게 손을 벌리고 과거 도움이 전무했던 부모 세대는 자신들의 트라우마를 전가하고 싶지 않아 도와주려는 것"이라며 "주거 문제가 부모 능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수준에 도달하게 되자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이 같은 '결혼 전쟁'이 자칫 가족 해체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고 우려했다. 임 교수는 "예단과 혼수, 결혼식 비용을 줄이는 '스몰웨딩'이 유행이지만, 결혼 전쟁의 핵심은 주거"라며 "주거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다투는 수준을 넘어선 가족 갈등이 사회적 문제로 비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신혼부부들을 위한 임대주택 보급을 늘리고 이에 대한 선입견을 개선하려는 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며 "동네나 평수 등 타인의 기준에 맞춰 결혼을 하는 '과시 사회'로부터 벗어나려는 노력도 동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원광 기자 demi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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