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시 존치론, '개천의 용' 때문에?"..사시의 경제학

김태형 이코노미스트 2015. 8. 29.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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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생각 다른느낌]특정집단 이익 보호는 지대추구(rent-seeking) 행위..국가경제에 마이너스

[머니투데이 김태형 이코노미스트] [편집자주] 색다른 시각을 통해 모두가 행복해지는 세상을 만들고자 합니다.

[[같은생각 다른느낌]특정집단 이익 보호는 지대추구(rent-seeking) 행위…국가경제에 마이너스]

로또의 당첨확률은 800만분의1, 자연임신으로 일란성 세 쌍둥이를 낳을 확률은 100만분의1, 골프 아마추어의 홀인원 확률은 1만2000분의1 이다. 그럼 일반인이 사법시험에 합격할 확률은? 소위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어렵다.

최근 로스쿨을 졸업한 국회의원 자녀의 취업청탁 사건을 계기로 이미 폐지하기로 결정한 사법시험(이하 사시)을 존속시키자는 목소리가 다시 커지고 있다. 국회에선 지난 1년간 신림동 고시촌을 지역구로 둔 오신환 의원(관악구을)과 변호사 출신 김용남 의원(수원시병) 등이 앞다퉈 사시 존치 관련 법안을 발의했다. 지난 21일에는 변호사 출신 야당 박주선 의원(광주 동구) 주최로 사시존치 토론회까지 국회에서 열렸다.

사시 존치를 주장하는 사람은 사시가 희망의 사다리인데 반해 로스쿨은 부와 권력을 세습하는 황금사다리, 즉 현대판 '음서제'라고 비난한다. 로스쿨은 비용이 많이 들어 '돈스쿨'이라고 말하면서 사시는 가난한 사람이 붙을 수 있는 '개천에서 용나는' 시험이라고 옹호한다.

그렇다면 과연 사시가 로스쿨에 비해 가난한 사람에게 상대적으로 신분상승의 기회가 높거나 비용이 적게 드는 시험일까?

로스쿨의 학비를 살펴보자. 1년에 국공립대학 등록금은 약 1000만 원, 사립대학은 약 2000만 원으로 3년간 약 3000~6000만 원 정도 든다. 여기에 책값이나 생활비는 별도이다. 결국 그리 만만치 않은 비용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경제사정이 어려운 사람을 위한 5%이상 특별전형과 사립대의 경우 성적우수 장학금과 일반 장학금 명목으로 로스쿨 학생들은 보통 20%에서 많게는 100%의 장학금을 받고 있다.

그리고 로스쿨의 합격률을 보면, 2015년에 발표한 4회 변호사시험에서 졸업생 2000명, 응시자 2561명 기준으로 1565명이 합격해 입학정원 대비 78.25%, 응시자대비 61.1%가 합격의 기쁨을 맛보았다. 그리고 취업 후 6개월의 연수기간이 지나면 단독수임이 가능하다.

사시의 경우에는, 1000명까지 합격자수를 늘려오다가 2009년 로스쿨 제도 시행 후 차차 줄어들어 2014년에는 1차 4696명 중에서 471명(10%)이 합격하였고, 2차는 1002명 중 203명(20%)이 합격했다. 2012년 법률저널이 설문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사시 합격자의 평균 수험기간은 4년9개월이다. 포기한 수험생 숫자까지 포함하면 전체적으로는 더 많은 시간이 사시준비에 소요된다 하겠다. 사시 합격후 변호사가 되기 전까지 사법연수원에서 거쳐야 하는 연수기간은 2년이다.

사시는 수험기간 동안 신림동을 중심으로 원룸이나 고시원에서 생활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를 기준으로 비용을 계산해 보면, 원룸의 월세값(4~5평기준 30~40만원), 독서실비(9~12만원), 식대(40만원), 학원비(40만원), 책값 등으로 한달에 대략 150만 원 이상 들어간다. 일년이면 최소 1천800만 원이다. 여기에 평균합격기간을 곱하면 합격하기까지 총비용으로 약 8000만 원 이상이 필요하다. 사시도 돈이 없으면 어렵기는 매한가지다는 얘기다. 결코 구석방에 틀어박혀 책만 봐서는 그 좁은 합격의 문을 뚫을 수 없다.

이처럼 사시는 합격률도 낮고 평균수험기간이 길기 때문에 로스쿨과 단순 비교해도 결코 비용이 적게 들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거기에 합격하지 못한 잔여 수험생의 숫자와 기회비용까지 고려하면 전체 비용은 휠씬 늘어난다.

법대를 졸업하고 사시 준비를 하다 포기하고 5년간 자영업을 영위하다 최근 경기불황으로 사업을 접고 다시 수험의 길로 접어든 한 친구의 얘기를 보자. 그는 나이도 많은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도 모르고 비용부담이 되는 사시 대신 노무사 시험을 준비하다 사회취약계층 특별전형으로 로스쿨에 들어갔다.

기숙사 생활을 하니 기숙사비 22만 원에 식대 18만 원, 책값 5만 원해서 한달에 45만 원정도 비용이 든다. 물론 개인별로 약간의 추가 생활비가 더 든다. 사립대라 일년에 1천800만 원의 등록금이 들어가나 장학금 제도가 잘돼 있어서 실제 등록비는 절반도 안된다. 로스쿨 입학생 구성을 보면 경제형편이 좋지 않은 사람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들어온 나이 많은 수험생까지 다양하다.

그는 "사시는 아무리 형편이 안 좋아도 따로 수험비용을 지원받을 수 없다"면서 "사시 경험자로서 볼 때 왜 사시가 비용이 덜 든다고 말하는지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는 이제 1년반만 더 열심히 공부하면 그토록 원하던 변호사의 꿈을 이룰 수 있다.

사시의 근원적인 문제는 합격률이 1차 수험생 기준 5% 밖에 안되는 불확실성이 높은 시험이라는 것이다. 20대 초반에 시작해도 시험에 몇 번 떨어져 수험기간이 연장되면 사회진출이 막히고 장년실업을 고민해야 한다. 결국 이들은 통계에 잡히지 않는 잠재적 실업자가 된다.

현재와 같이 로스쿨과 사시 이원 체계가 유지된다면, 사시 준비생이 합격이 안 된 경우 로스쿨로 가게 되고 반대로 로스쿨의 변호사 자격시험을 5년 안에 합격하지 못하는 경우 사시를 준비하는 고시 쇼핑이 만연하게 되어 이중으로 시간과 비용낭비를 초래하게 된다. 현재 청년실업이 10%에 육박해 사회문제가 심각한 상황에서 사시 존치론을 주장하는 것은 잠재적 실업군을 조속히 사회에 복귀시키기보다 오히려 부추기는 꼴이 된다.

법집행 및 운용은 확실성과 예측가능성이 담보돼야 한다. 로스쿨 제도로 사법시험 제도를 일원화하고 사시를 2017년까지만 유지하기로 이미 결정했는데 그 후에 아무런 사정변경(事情變更)이 없는 상황에서 사시를 존치하자고 주장한다면 정책의 신뢰성은 추락하고 만다.

사정변경의 원칙을 주장하려면 법률행위 성립의 기초가 된 사정이 그 후에 당사자가 예견하지 못하거나 예견할 수 없었던 중대한 변경을 받게 되어, 당초에 정하여진 행위의 효과를 그대로 유지하거나 강제한다면 대단히 부당한 결과가 생길 정도가 돼야 한다. 그러나 최근 로스쿨 졸업생의 취업청탁 이슈만으로는 사정변경의 근거가 너무 희박하다. 이는 사법연수원생이 간통사건에 휘말렸다고 사시와 연수원 제도를 폐지하자는 것과 다름이 없다.

사시존치 주장은 독과점적 지위를 취득한 기존 법조인 등 기득권자들이 수험생을 볼모로 자신의 이권을 놓지 않으려는 이기적인 행위로 밖에 볼 수 없다. 사시를 준비하는 비용이 생각보다 많이 드는데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희망의 사다리로 둔갑시키는 배경에는 기득권자들의 지대추구행위(rent-seeking activity)가 숨어 있다.

특정 경제주체가 독과점적 지위를 확보하고 나면 별다른 노력없이 얻게 되는 추가 잉여이익을 위해 국가를 상대로 벌이는 활동을 경제학에선 지대추구행위라 부른다. 지대라는 것은 상당부분은 인위적인 진입장벽 구축으로 인한 잉여이익으로, 지대추구행위로 인해 자원배분을 왜곡하여 공평성과 효율성을 저하시키고 시장 기능을 저해하게 된다. 궁극적으로는 국가경쟁력을 약화시킨다. 대표적인 지대추구행위가 바로 의사·변호사 등과 같은 자격제·면허제를 통한 인원 통제와 독점기업이나 공기업의 지위를 이용한 진입장벽 쌓기이다.

그동안 법조인원 통제를 통한 진입장벽은 법조인의 공급을 비탄력적으로 만들어 법조인들의 초과이익을 생산해 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변호사수가 2만 명에 달하면서 수입이 줄고 초과이익, 즉 경제적 지대가 감소하고 있다. 사시존치를 주장하는 경제학적 이유는 현재의 로스쿨 제도하의 법조인력 증가로는 기존의 잉여이익을 더 이상 창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법조계를 이끌 인재선발은 당사자 뿐 아니라 온 국민의 이해관계가 걸린 문제이므로 사시 존치 여부는 국민경제 전체의 입장에서 손익을 따져 봐야 하고 특정 집단의 지대추구가 돼서는 안된다.

김태형 이코노미스트 zestth@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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